경복궁 담을 따라 이어지는 서울 종로구 효자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르는 이 거리에서 이곳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서 있는 건물이다. 콘크리트와 나무로 꾸며진 외벽은 라인이 똑 떨어지는 단아한 한복 같다. 벽면 중간에 뚫린 공간은 건물 내부로 연결된 통로라기보다는 조형미를 살린 장식물 정도로 느껴진다. 1층이 아늑하고 현대적인 공간이라면 2층과 3층은 멋스러운 한옥으로 꾸며졌다.
이곳은 아름지기라는 이름의 전시공간이다. 아름지기는 아름다운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라는 뜻. 전통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살려 현대적·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것을 취지로 삼고 있는 재단법인이다. 옷공방, 맛공방, 집공방이라는 소모임으로 구성된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은 이를 실천하는 장인그룹이다. 한복, 그릇, 차양, 장신구, 가구 등 의식주와 관련한 전시회를 종종 연다. 독창적인 멋과 세련된 감각을 버무려낸 솜씨가 상당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때문에 패션 디자이너, 셰프, 건축가, 작가 등 예술가들 사이에는 창작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주한 외국 사절들 사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를 가리다’(11월10일까지)는 해를 가리고 비를 피하던 차양과 천막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다. 온지음 집공방 장인들과 건축가 이승택, 임미정, 최춘웅, 건축가그룹 SoA, stpmj 등이 참여했다.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가 찾아와 전시회를 둘러봤고 그 전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도 다녀갔다. 정조의 화성행차를 그린 ‘화성원행의궤도’에서 모티브를 딴 어막차, ‘민영환의 국장례식 행렬’ 사진을 보고 재현한 차일, 18세기 풍속화 ‘김매는 풍속도병’을 통해 고증한 해가리개, 19세기 그림 ‘경기감영도 12곡병’에서 응용한 처마형 차일 등을 볼 수 있다. 차일과 처마형 차일은 야외 결혼식장이나 카페에 그대로 옮겨도 잘 어울릴 만큼 우아하다. 마리 관장은 해가리개를 두고 “지금 당장 이비사 해변에 갖다 놓아도 좋겠다”며 관심을 보였다.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한 공예작품 전시회에는 전통 방짜기술을 사용한 식기류를 선보여 현지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사진제공 /아름지기
전시회도 볼만하지만 이곳의 ‘비장의 무기’는 지하 1층에 있는 특별한 한식당 ‘온지음’이다. 엄밀히 말하면 일반 식당은 아닌, 음식 연구소다. 원한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루 동안 점심·저녁 각 1팀씩만 받는다. 당연히 예약이 쉽지 않다. 이름난 셰프들도 공부와 연구를 위해 찾는다. 맛도 정평이 나 있다. 메뉴는 한식 코스. 아름지기의 신혜선 선임은 “제철에 나는 재료로 최선의 맛을 내는 요리를 선보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구성도 매번 바뀌기 때문에 특별한 대표 메뉴가 뭐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070)4816-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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