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던 걸스데이 멤버 혜리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덕선이’로 혜리시대를 열었다. 고만고만한 걸그룹에서 그닥 눈에 띄지 않던 멤버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5년만에 CF로 한꺼번에 60억원을 벌어들이는 톱스타가 됐다.
걸스데이의 한 멤버에서 ‘혜리’로 우뚝 서기까지의 성장기, 그리고 드라마가 끝난 뒤 나누었던 그와의 대화를 정리했다.
경향신문 김기남기자
■엄정화 꿈꾸던 소녀
경기도 광주에서 나고 자란 혜리는 어릴 때부터 활동적이었다. 나서길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반장, 전교회장을 지냈고 공부도 잘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육상부 활동까지 했다. 덕분에 그의 공식 프로필에 적힌 특기는 ‘마라톤’이다. 하지만 드라마속 덕선이네 집처럼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았다. 아빠와 엄마는 1971년생으로 드라마 속 덕선이와 동갑이다. 덕선이와 달리 혜리는 맏딸이고 2살 아래 여동생 하나가 있다.
중학교때 서울로 전학을 온 뒤에는 댄스 동아리 활동도 열심이었다. 그저 좋아서 했을 뿐, 구체적으로 연예인의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우연히 대형 연기학원에서 주최하던 한 대회에 나갔다가 덥석 상을 받게 됐다. 그게 걸스데이와 이어진 계기가 됐다. 당초 걸스데이는 5인체제로 활동하고 있던 그룹이었지만 중간에 2명이 탈퇴하면서 대타로 투입됐다. 2010년 9월이었고 고1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걸그룹 막내는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엄정화처럼 되겠다는 목표와 꿈으로 힘든 시절을 버텼다.
■열애소식으로 유명세
걸스데이의 무명시절은 길지 않았다. 장병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리며 ‘군통령’으로 불리면서 인지도를 높여갔다. 당시엔 리드보컬 민아가 팀을 이끄는 핵심 전력이었다. 막내 혜리가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13년이었다. H.O.T. 출신 토니안과의 열애소식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16살이라는 점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8개월만에 이들 커플의 결별소식이 전해졌다.
■진짜 기회 <진짜사나이>
‘혜리’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알릴 진짜 기회는 2014년 찾아왔다.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였다. 여군특집으로 마련된 이 프로그램에서 혜리는 고된 훈련 끝에 눈물을 흘렸고, 울음을 그치라는 교관에게 ‘이이잉’하고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줬던 이 장면은 말 그대로 ‘한 방’이 됐다. ‘혜리 애교’ ‘앙탈 혜리’ 등의 이름이 붙은 ‘동영상클립’으로 편집돼 유통됐고 단숨에 그를 스타덤에 올렸다. 이후 그는 CF에 단독으로 출연하며 존재감을 키워갔다. <선암여고 탐정단> <하이드 지킬 나> 등 드라마에도 출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가 <응답하라 1988>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누리꾼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나도 모르던 내 모습
신원호 PD가 혜리에게 설명한 ‘덕선’ 캐릭터는 이랬다. 눈치도 많이 보고 어리보기이면서 덤벙거리는 스타일. 그 이야기를 듣고 혜리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외쳤다. “어, 전혀 아닌데, 아닌데요. 저 바보같지 않은데요”. 그러자 신 PD는 “그런 반응조차도 덕선이 같다”고 했다.
“평소에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런거죠. 감독님이 ‘네가 했던 예능을 다시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했던 예능을 찬찬히 보는데 전에는 전혀 안보이는게 보이더라고요. 나도 몰랐던 나의 행동거지나 디테일한 부분들 말예요. 그게 내 무의식에 있던 거였죠. 감독님은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려고 하셨던거예요.”
■덕선이의 남편찾기
드라마가 끝나고 열흘이 지난 뒤 만난 그의 얼굴엔 그간 피로와 긴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덕선이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지만 시원함도 크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주된 동력 중 하나였던 덕선이 남편찾기. 시청자들만큼이나 그 역시 그 부분이 궁금했다. 남편의 정체를 알게된 것은 16회때였다.
-남편 문제에 관한한 덕선이의 감정선이 설득력 없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많았다.
=덕선이가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인데 그것 때문에 미워하는 분들이 있는게 속상하긴 하더라. 선우와 정환이, 그리고 택이에 대한 감정의 차이를 표현하는 계기가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세밀하게 살려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그럼 덕선이는 왜 택이를 선택한걸까?
=선우와 정환이는 먼저 나를 좋아한다는 점 때문에 ‘나도 좋아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면 택이는 내가 먼저 신경써주고 마음쓰고 싶은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는게 다르다. 그걸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했어야 한다고 본다. 나중에 사랑의 감정으로 가도 설득력이 있도록 표현했어야 하는데 덕선이의 감정은 동정에 가깝게 표현이 됐다. 뒤늦게 결말을 알고 나니 그 부분이 정말 아쉽더라. 초반에 더 풍부한 감정선을 쌓아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언니 보라와의 케미도 주요 포인트였다.
=사실 친구들보다 언니와의 케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많이 붙어 있었고 실제로도 러브라인 이상으로 중요한 관계였다. 언니랑은 촬영기간 내내 정이 많이 들어서 촬영이 끝났을 때 정말 많이 울었다. 언니도 나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하더라. 실제로 보라 언니는 막내고 나는 맏이라서 서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 많이 했다. 내 동생은 나보고 그러더라. 언니는 성보라랑 너무 똑같다고. 그러면서 언니가 성보라를 했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보라와 덕선이의 생일이 비슷해서 보라의 생일만 차려주는 장면이 있다. 그때 덕선이가 ‘나한테는 왜 계란 후라이 안해주냐’고 소리치며 우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감정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기 때문에 촬영전에 밤잠을 못잘 정도로 걱정하고 준비를 많이 했었다.
-다음 연기에 대한 부담도 크겠다.
=난 이제 첫발을 뗀 것일 뿐인데 기대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마냥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직 차기작에 대한 고민은 이른 것 같다. 섣부르게 생각하기 보다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준비하고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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