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1대왕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장희빈 만큼이나 드라마, 영화로 많이 다뤄진 소재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조선 왕조에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지요.
이준익 감독의 신작 <사도>는 이 참혹한 운명에 맞닥뜨린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아는 사건이지만 어쩌다 그 지경까지 가게 됐는지에 대한 절절한 사연은
그다지 대중적으로 익숙하진 않습니다.
영화는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아들 사도세자(유아인) 사이를 채우고 있던 갈등과 그 내막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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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주.
사건의 상징인 이 뒤주는 영화 초반부터 등장합니다.
아버지인 영조에게 분노를 폭발시킨 사도는 노발대발한 아버지의 명에 의해 뒤주에 갇히고 말지요
그 속에서 몸부림치고 절망하는 사도의 하루하루와 과거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영화는 진행됩니다.
문제를 던져주고 답을 풀이하는 듯한 이같은 과정을 통해 두 사람 사이 갈등의 실체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왜 영조가 그토록 사도를 미워하게 됐는지,
자기 파괴적인 어깃장을 반복하게 된 사도의 ‘울화’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말입니다.
생후 두돌도 되지 않았을 때 세자로 책봉할만큼 영조는 사도를 사랑했습니다.
영특하고 총명한 사도에 대한 영조의 기대감은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왕상은 달랐습니다.
어린 사도는 뙤약볕 아래서 뛰어놀며 전쟁놀이하는 것을 즐겼고
귀여운 강아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세자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틀에 비추었을 때
게다가 컴플렉스를 지닌 아버지 영조가 원했던 완벽한 세자의 틀에 머물러 있기에
사도는 너무 열정적이고 뜨겁고 자유로웠습니다.
자연히 아버지는 기대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들에 대한 실망감이 더해갔고
아들은 진심을 몰라주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정치적 프레임 대신 아버지와 아들의 시각과 심리에서 바라본 두 사람의 갈등은
조선시대 궁중이 아닌 현대사회 어느 가정에서도 일어날 법합니다.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애비가 산다”며 질책하는 영조의 대사에선
마치 공부를 놓고 채근하는 학부모의 모습도 연상됐습니다.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이런 대사들은 자칫 흐름상 튈 수 있지만
송강호의 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영조가 아들이 갇힌 뒤주를 바라보며 나누는 9분간의 대화는 압권입니다.
아들에 대한 애정과 회한을 털어놓는 이 장면에서
아무런 영화적 장치나 효과 없이 배우 송강호의 연기만으로 스크린이 채워집니다.
주눅들고 짓눌렸다가 광기에 사로잡히는 등
극한을 오가는 감정을 표출한 유아인의 연기도 팽팽히 날이 서 있습니다.
<베테랑>에 이어 <사도>까지 내쳐 달린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더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해지게 만든 것도 이 작품의 성과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맨 마지막 부분에 가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터져나옵니다.
제작진 입장에서 ‘깜짝 카드’로 빼들었음직한 후반부는 차라리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아쉽습니다.
사도세자의 무덤 앞에서 정조(소지섭)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흐느끼는데서 끝냈어야 했다고 봅니다.
정조와 혜경궁 홍씨가 이어가는 후반부를 통해
3대에 걸친 비극과 아픔을 씻어내는 의미를 담아내는 씻김굿 같은 효과를 노렸을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과유불급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파란만장한 세월을 버텨낸 혜경궁 홍씨(문근영)가 아들을 지켜보는 장면 말입니다.
우는 듯, 웃는듯 그의 표정을 과도하게 클로즈업한 장면은
솔직히 말하면 목불인견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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