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지난 주말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보신분 많으시죠.

펑퍼짐한 30, 40대 아줌마 아저씨들 상당수가

그 프로그램 덕분에 순식간에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는

놀라운 시간여행 경험을 하셨을텐데요

저 역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련하고 즐거운 시간여행을 했습니다.

중딩인 제 딸은 제가 그 노래 가사들을 알고 따라부르는게 신기했나봅니다.

어차피 20년후에 너도 똑같아. 그때 엑소가 배나오고 주름 자글자글 생긴채로 TV 나오면

너 역시 내 기분 이해할걸?

그랬더니 뭔지 알겠다며 수긍하더라고요.

 

오래된 영화, 책, 음악  혹은 첫사랑의 추억까지

예전의 여릿하고 예민하던 감수성으로 즐겼던 추억의 대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전에 그렇게 가슴앓이 하며 좋아했던 사람도

막상 오랜 시간이 흐른뒤 만나면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후회에 휩싸이기도 하고

그렇게 재미있었던 드라마와 책

유치찬란하기 이를 데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의 그 음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귀로 듣기에는 걸리는게 있을지라도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쿵쾅거립니다.

그 시대를, 그 때의 감성을 몸이 느끼는 거지요.

 

같은 시대를 살며 같은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을

전세계 어디에 흩어 놓더라도

음악 한 곡만으로

마치 모래속의 쇳가루가 자석에 달라붙듯 

사람들을 묶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라도

공유했던 음악만으로

비슷한 감정과 색깔로 하나가 되는,

그런 마법같은 경험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습니다.

 

 

터보, 김현정 지누션 등 반가운 이름들과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리고 그들의 복받치는 눈물과 감정들을 보면서

그것이 제 마음에도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자막을 통해, 무한도전 멤버들을 통해

그들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반복적으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자막이 채워주지 못하는 그 무엇을

다른 세대에게 설명해주지 못하는데서 오는

안타까움도 느껴졌습니다.

 

 

지난 주 3팀의 90년대 가수들이 소개됐습니다.

조금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당시 그들의 이야기를 다뤘던 기사들을 소개해보려합니다.

 

 

터보는 2집까지 김종국 김정남씨 체제로 활동하다가

3집부터 김정남씨 대신 마이키로 멤버가 바뀌었습니다.

이후 터보가 해체하고 김종국씨가 솔로가수 활동을 했습니다.

무도에서 보니 김종국, 김정남씨 두분도 정말 오랜만에 만난 듯 하더라고요.

심지어 김종국씨는 "난 정남이 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몰랐다"고 할 정도였으니

이들의 반가움이 얼마나 컸을지 조금은 짐작이 되네요.

 

 1995년 8월29일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1996년 2월 1일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1996년 3월7일 경향신문입니다.

 

 

 

 

 

 

 

 

다음은 가수 김현정입니다.

 

1998년 9월 18일 한국경제 기사 입니다.

 

가수 김현정(20)은 가요계의 신데렐라다.“그녀와의 이별” 단 한곡으로 하루 아침에 스타덤에 올라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요즘엔 하루 7~8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만큼 그의 스케줄은 빡빡하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만도 5개.
이른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그를 찾는 곳이 줄을 잇고 있다.
당연히 몸이 배겨나질 못한다.
벌써 4번이나 응급실 신세를 졌다.
평소같으면 가기 싫어했을 병원이지만 이젠 오히려 가고 싶을 정도다.
“영양주사 맞으며 편안히 누워있다보면 응급실이 마치 안식처같이 느껴져요.
너무 힘들다 싶기도 하지만 팬들이 저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뿐이죠”
인기 질주중인 그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녀와의 이별”이 담긴 그의 데뷔앨범이 나온 것은 올해 초.
꿈에 그리던 음반을 들고 사방으로 뛰었지만 홍보부족과 시행착오로 노래 한번 제대로 부르지 못한채 활동을 접어야했다.
방송에서 간혹 나오던 그의 노래도 3월이 지나자 아예 자취를 감췄다.
절망적이었다.그러던중 전환점이 찾아왔다.
한 프로덕션 대표가 그의 노래에 관심을 갖고 함께 일할것을 제의해온 것.
이때부터 그는 다시 태어났다.
새롭게 손질 한 그의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자마자 그는 “떴다”.
본격적인 활동을 한지 한달만에 30만장 이상의 음반이 팔렸다.
너무 빨리 성공하면 자만에 빠지기 쉽지만 그는 다르다.
방송가에서 그는 예의바르고 인사성 밝기로 소문나 있다.
방송국에선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할 정도다.
“이젠 제 얼굴이 알려졌잖아요.
비록 저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상대방은 절 분명히 알아볼테니까 인사하는게 좋죠”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집에 돌아가면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꼼꼼히 모니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라디오도 일일이 녹음해 다시 들어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낸다.
2집 준비에 들어간 그는 이제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1집의 성공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을 생각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오랫동안 부르고 싶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인기는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니까. 

 

 

 

 

 

1999년 1월5일   국민일보 입니다.

 

지난해 가요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여자가수들의 활동이었다.99년에도 이같은 ‘펨 붐’은 힘차게 이어질 전망이다.

98년이 낳은 여성 루키 김현정,언더그라운드 출신으로 지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자우림의 리드싱어 김윤아의 신년 계획과 소망을 들어본다.

◇ 김현정 … 이달말 2집내고 싱어송라이터로 변신
1998년 1월과 1999년 1월.1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가수 김현정에게는 세상이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수가 되고 싶다며 쫓아다니던 갓 스무살의 스타 지망생은 그 사이 ‘가요계 최대의 수확’이니 ‘대형 여가수의 발굴’이니 하는 극찬 속에

연말 시상식에 불려다니느라 새 앨범 녹음에 차질을 빚을 만큼 바쁜 스타로 ‘신분 상승’했다.

신년을 맞는 그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현정이 이달 말 2집 앨범 ‘늦은 거야’(가제)를 내고 발돋움을 시도한다.

김현정은 다운타운과 ‘길보드’의 인기를 업고 묻혀 있던 앨범을 히트시킨 행운의 주인공.

2집을 통해 가요계 신데렐라에서 진짜 가수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시험대에 선다.
2집 앨범은 ‘그녀와의 이별’풍 댄스곡부터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할 수 있는 발라드와 스캣송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을 골고루 섞어 반찬 많은 한정식 같다.

노이즈의 천성일과 ‘애인이 생겼어요’ ‘애상’ 등을 히트시킨 윤일상,‘포이즌’의 주영훈 최규성 등

앨범제작에 힘을 보탠 작곡가의 면면도 화려하다.

“내 곡을 불러달라”는 작곡가들의 아우성은 99년을 바라보는 김현정의 가능성에 보내는 가요계의 신뢰라고 보면 된다.
자작곡도 실었다.

자작곡 수록은 싱어송 라이터가 되겠다는 장기 계획을 처음 드러내보인 것.

작사 작곡에 랩까지 시도한 퓨전블루스곡 하나를 만들어 앨범 끝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20대 초반의 발랄한 감수성에 맞게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후회하는 여자의 마음을 그렸다.

다섯손가락의 박강영이 편곡을 돕긴 했지만 곡을 만드는 과정에 전문가의 도움은 전혀 받지 않았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김현정의 색깔을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내 느낌을 곡으로 만들어 불러보고 싶어 자작곡을 넣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싱어송 라이터로 성장하겠다는 선언 정도로 받아들여주면 좋겠습니다”
김현정은 음악 마니아를 겨냥한 가수가 아니다.

“노래방에서든 레크리에이션 자리에서든 내 노래를 듣고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즐겁다”는 말은 진심으로 들린다.

새 앨범도 그 말만큼 부담 없이 대중적이다.
“올해 계획이요? 팬들이 새 앨범에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으니 계획도 세울 수가 없어요.

팬들의 뜻을 철저하게 따른다는 게 유일한 계획이라고 할까요”

 

 

1999년 3월 9일 경향신문입니다.

 

김현정(21)은 다리가 예쁜 가수다.데뷔당시 「다리모델출신」이라는 유머에 가까운 루머(?)까지 돌았다.

그녀는 요즘 다리품을 너무 팔아 다리가 굵어질 지경이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스케줄.

특히 2집앨범 「갈매기의 꿈(A seagull of dream)」을 내놓은 뒤부터는 더욱 바빠졌다.
2집의 타이틀곡은 「되돌아온 이별」. 지난해 최고의 히트곡 「그녀와의 이별」을 작사.작곡한 최규성.유유진 콤비의 곡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김현정의 장점으로 꼽히는 파워풀한 창법을 잘 살린 록적인 느낌의 터치가 인상적이다.

간주에서 만나는 메탈적인 기타리프도 돋보인다.
총 12곡이 수록된 2집은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발라드곡 「훈련소 앞에서」는 남자 친구를 군에 보내는 애절함을 담았다.

「벽」에서는 힙합을 구사했고 「한 번 웃어봐」에서는 모던록을 구사했다.

여기에 70년대 디스코풍의 곡인 「늦은 거야」, 블루스풍의 「비포 앤 애프터」 등 음악백화점을 연상케 한다.
『 마음껏 욕심을 부려봤다』는 그녀의 말 뒤에는 데뷔앨범의 성공으로

많은 히트작곡자들로부터 다양한 곡을 받을 수 있었다는 배경이 숨어있다.

주영훈 윤일상 김형석 천성일 박기영 등 더이상 바랄게 없는 라인업이다. 이들 곡중 일부는 그녀가 직접 가사를 붙여 글재주를 뽐내고 있다.
2집의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데뷔앨범이 『 편곡 덕을 봤다』는 시샘을 불식시키면서 이미 30만장을 넘어섰다.

소녀팬은 물론 군인아저씨에서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팬레터도 다양하다.

『 일일이 답장을 못해주는 것이 미안하다』는 그녀는 『 그들이 있어 더욱 행복하다』고 말한다.

 

 

원종요정 SES의 모습도 변함이 없습니다.

유진씨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움은 좀 남습니다.

 

 

1997년 12월 22일 경향신문입니다.

 

 

 

 

1999년 11월29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