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계에서 가장 '핫'한 뮤지션은 김동률인 것 같습니다.
서태지가 컴백했고 인기 힙합 뮤지션이 차트를 휩쓸며 그 틈새를 아이돌그룹이 촘촘히 메우고 있는 정글같은 상황인데
방송에 얼굴한번 내미는 법이 없는, 심지어 10대들은 얼굴조차도 모를
김동률이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가요 담당 기자를 하면서 표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김동률은 "제발 사게 해달라"는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드는 가수입니다.
그만큼 그의 공연에 열광하는 팬들이 많다는 거지요.
전에 방송됐던 <꽃보다 청춘>에서 윤상, 유희열, 이적 등이 김동률을 언급하면서
동률이는 절대로 방송에 안나온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죠.
그정도로 김동률은 오직 공연으로만 대중들을 만나고 있는, 드문 뮤지션이긴 합니다.
예전엔 그도 라디오를 진행했고 TV에서 <김동률의 포 유>라는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전 앨범까지는 발매후 인터뷰도 했는데
최근 내놓은 6집부터는 인터뷰조차 하지 않으니
좀 서운하긴 하네요.
저는 대중음악 담당 기자가 된 뒤 그와는 2차례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번은 이상순과 함께 했던 베란다 프로젝트 앨범 발매 뒤,
또 한번은 크리스마스 앨범 김동률을 발매한 뒤 입니다.
그때의 인터뷰를 뒤적여 봅니다.
2010년 5월 19일
가요계에서 김동률(37)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는 좀 특별하다. 1993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해 올해로 17년차인 ‘중견가수’.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문화적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의 음반은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나는 기분으로 기다리기 일쑤이고 그의 공연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앨범은 음악적 완성도는 물론이고 불황에도 10만장 이상을 거뜬히 팔아치우는 상업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새 음반을 냈다. 이번엔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 이상순(37)과 함께다. ‘베란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음반 <데이 오프>가 그것. 1997년 이적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로 활동한 이후 13년 만에 내놓는 듀오앨범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은 ‘데이 오프’라는 제목처럼 두 남자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와 가벼운 일상들을 음악으로 엮어냈다. 음악도 보사노바, 포크, 라틴, 록 등이 절묘하게 혼합돼 있으며 어쿠스틱한 연주가 따뜻함과 담백함을 배가한다. 클래식과 재즈, 건반 중심으로 비장미 등이 강하게 느껴지던 기존 김동률의 음악색은 좀체 찾기 힘들다. 깔끔하고 감각적인 음악으로 단단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상순과의 작업이 빚어낸 화학적 결과물일 터.
첫번째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Bike Riding’은 앨범 전체의 성격을 웅변해준다. 포크와 재즈적인 스타일이 흥겨운 리듬에 버무려진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햇살과 바람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동갑내기인 두 남자를 만난 곳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 커피 한 잔을 두고 담배를 피워 문 이들은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후 햇살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날씨가 좋았더라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음반이에요.” 무심하게 웃으며 건넨 김동률의 말이다.
2008년. 상반기 공연을 끝낸 김동률은 당시 암스테르담에서 유학 중이던 이상순에게 날아갔다. 순전히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함께 여행도 했지만 날씨는 이내 종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1주일 내내 비가 오더라고요. 방에 널어놓은 빨래도 안 마르고, 딱히 할 일도 없고…, 옆에서 기타줄을 퉁기며 연습하던 상순씨를 보면서 ‘같이 곡이나 써볼까’하고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한 달간 이상순의 기타에 맞춰 곡을 쓰고 함께 작업하며 밑그림을 그렸다. 1년 뒤 김동률은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이상순과 함께 한 달여를 보내면서 곡을 마무리했다. 돌아올 땐 2년간 해온 공부를 잠시 중단한 이상순도 함께였다. 지난 8개월간 두 사람은 완성된 곡에 가사를 붙이고 편곡과 녹음을 마무리했다.
가사는 주로 김동률이 맡았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녹여낸 음악이다 보니 솔로음반을 낼 때와 같은 감정을 배제하고 한껏 가볍고 담담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는 “장르나 음악적인 성격에 맞춰 최대한 멋부리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일상 이야기 역시 쉽지는 않더라”면서 “5집 음반의 ‘아이처럼’을 쓸 때는 지금과 정반대로 이 나이에 이렇게 닭살스러운 가사를 써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난 떠는 나 때문에 상순씨가 고생이 많았다”는 김동률의 말에 이상순은 “동률씨가 자신의 색깔을 많이 비워냈기 때문에 그의 음악적 스타일을 기대하는 팬들의 실망을 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동률은 “상순씨 성격이 부처님 같다”고 되받았다. 당분간 ‘베란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통해 대중과의 만남을 이어갈 이들은 공연계획도 세웠지만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다.
데뷔 시기와 활동 영역이 달랐던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된 것은 2004년. “사진을 좋아하던 동률씨가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음악 쪽에 연관된 일을 하던 주변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가입하게 됐고 저도 사진을 좋아하던 터라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죠. 그전엔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평소 서로의 음악 스타일에 호감을 가졌다는 것도 그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됐어요.”
음악적 취향이 비슷했지만 당시만 해도 둘은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후 이상순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음대로 유학을 떠났고 김동률은 솔로 5집 음반에 매달렸다.
문득, 대중적 이미지가 까칠하고 예민한 것으로 알려진 김동률과 ‘부처님’ 같다는 이상순의 암스테르담 생활이 궁금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함께 운동하고 산책하고 장을 봐와서 음식해 먹고, 음악 듣고, 맥주 마시고, 공연보러 다니는 그런 생활이었어요. 현지 사람처럼 살았죠. 그래서 음악 작업에도 도움이 많이 됐고….”(김동률)
“동률씨는 일할 땐 완벽주의자이지만 일상생활은 여유롭고 재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자유인이에요. 요리도 잘하고, 놀러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구기종목만 못하는 줄 알았더니 자전거도 못 타더라고요. 타이틀곡도 자전거 타기인데…. 힘들게 담가놓은 김치로 찌개 해먹자고 할 땐 속이 정말 많이 쓰렸죠. 하하.”(이상순)
2011년 11월 24일
데뷔 18년차 가수 김동률(37·사진)이 얼마 전 트위터에 남긴 글. ‘집 앞 편의점의 작은 전광판에 리플레이 뮤비 내 얼굴이 나오는 걸 보고 흠칫 놀라, 재빨리 방향을 꺾어 조금 더 먼 편의점으로. 죄진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난 뭔가. 아직 연예인이 되려면 멀었나보다.’
수년 전 공중파 TV 음악방송 MC를 맡았던 그에겐 지금도 방송사의 러브콜이 이어진다.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그룹으로 묶일 만한 동료 뮤지션들 상당수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각자의 재능과 자질을 발휘하며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혀가고 있는 데 반해 그는 “나는 TV에 자질이 없는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고 싶거든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좋은 척하며 멘트를 읽는 게 너무 싫었어요. MC자리를 맡아놓고도 늘 부끄러웠죠. 모든 사람이 제 얼굴을 아는 그런 자리는 욕심나지 않아요.”
음악으로 인정받고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이 뮤지션의 본질. 이 때문에 수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을 전달하는 방법이 음악이 아닌 것에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해왔다.
어쨌든 세상은 변했고 이제는 음악을 전달하는 방법이 음악만일 필요는 없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유일하다고 꼽을 만한, 음악이라는 방법만으로 대중을 만나고 대중을 열광시키는 뮤지션이다. 그의 음반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는 팬들이 넘쳐나고, 공연소식만 알려지면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된다. 그런데 이 ‘복 많은’ 뮤지션은 핑핑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에는 무심한 듯하다. 트렌드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그에겐 시간이 따로 흐르고, 결과물을 내놓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3년10개월 만에 그는 정규 음반
10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의 차이가 무색할 만큼 2011년 겨울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감성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타이틀곡 ‘리플레이’는 1993년 그가 ‘기억의 습작’으로 대중에게 던졌던 충격을 재현하고 있다. 그는 “아마 지금 감성으로라면 절대 못 썼을 곡들”이라며 “멜로디와 사운드가 갖는 특정한 시대적 분위기를 알아보고 반가워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5분이 훌쩍 넘는 길이의 ‘리플레이’는 요즘 생산되는 발라드와는 사뭇 다르다. 스케일 크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수차례의 전조를 거치며 펼쳐지고, 절규하듯 토해내는 그의 목소리는 잊고 있던 추억을 끄집어낸다.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하며 성가분위기를 낸 첫 트랙 ‘Prayer’는 유학 시절 대위법 숙제로 썼던 곡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이 곡은 그런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킨 셈”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한겨울밤의 꿈’은 2000년 발표했던 <희망>에 수록했던 곡이며, 박새별과 함께 부른 ‘새로운 시작’이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이다. 유희열, 이적, 박정현 등 18명의 선후배들과 함께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1998년 만들어진 곡.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의 ‘캠페인 송’ 분위기로, 연말을 훈훈하게 데울 만하다.
“크리스마스에 들을 만한 국내 창작앨범이 그다지 없잖아요. 90년대 후반부터 그런 아쉬움을 막연히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겨울 분위기의 곡이 써지면 모아놓았죠. 또 더 잘 만들 수 있을 때 내놓자고 미뤄놨던 것들인데 이번에 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실 그는 올 초만 해도 도쿄에 홀로 머무르며 철저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을 덮쳤던 대지진 여파로 계획을 취소하면서 자연스레 앨범 작업으로 이어졌다. 다음달에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2년 만에 단독콘서트도 연다.
“뭔가를 내놓고 반응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인데, 항상 안될 수 있다는 각오를 하죠.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저 다행이다 싶고요. 제가 뭘 하든 시간이 좀 걸리고 소심하거든요. 따지고 보면 그런 소심함이 제 발전의 원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그러잖습니까.
유명한 특정인에 대해 실제 모습은 이럴 것이다 상상을 하며
취향까지도 마음대로 규정지어버리기 일쑤인데
저 역시 그런 선입견을 가졌다가 뒤늦게 놀라기도 하고 오해를 풀기도 하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많이 합니다.
김동률씨를 봤을 때 예상과 달리 놀랐던 점은
굉장히 잘 웃으신다는 것.
정말로, 진심으로 웃겨서 우러나서 웃는다는 것입니다.
소녀처럼 낙엽이 굴러가는 걸 보고도 깔깔거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이 웃었습니다.
말하는 저도 덩달아 기분 좋아져서
봉인 풀린듯 헛소리를 많이 하기도 했죠...
누군가에게 말했더니
"그건 그가 웃음이 많아서가 아니라
니가 하는 짓꺼리나 말투가 너무 웃기고 어이없어서 그랬을 것"
이라며 핀잔을 하더라고요.
뭔들 어떻겠습니까.
즐겁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만남이었다는 것만으로도
떠올리면 즐거운 추억이 되는걸요.
그리고 또 하나는 생각보다 담배를 많이 피우신다는 것.
편견이긴 한데 왠지 그의 목소리와 담배는 좀 안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냥 혼자서 헉 했었다는...
그가 방송에, 대중앞에 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불만아닌 불만도 가져봤는데
2011년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니
충분히 이해도 됩니다.
성격이라는데, 그런 소심함이 발전의 원천이라는데
그를 괴롭히지 말아야겠다고 말이죠. ㅋㅋ
1994년 버스를 타고 가다 신호에 멈춰서서 기다리는데
길가 레코드가게에서 나오던 '기억의 습작'에 완전히 꽂혀
기사 아저씨한테 욕 한바가지 들어먹고 겨우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듣고나니 말 못할 감동과 전율이 밀려오는 것이...
김동률 음악과의 강렬한 첫 만남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의 변치 않는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방출합니다
이 사진은 김호진, 김지호 부부 결혼식에서 이소은과 함께 축가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둘이 함께 불렀던 곡이 '기적'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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