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카잔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손연재 선수가 은메달을 따는 것을 기쁘게 지켜본 분들 많으시겠지요.  세계 리듬체조 무대에서 변방의 ‘듣보잡’이었을 우리나라를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끌어준 손연재 선수!!. 그의 기량이 매 대회마다 성장하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모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손선수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그것과 비례해 종주국이라 불리는 곳의 위력에 압도되며 위축되는 마음도 커져가네요. 
 올 초였던가, 모스크바인지 리스본인지 어딘지 정확하진 않지만 손연재 선수가 출전한 대회에서 처음 봤던 마가리타 마문이라는 러시아 선수를 이번 대회에서 다시 보게 됐는데 솔직히 전율이 이는 느낌이더라구요. 카나예바를 이어, 좀 있으면 그를 뛰어넘는 기량으로 왕좌를 차지하겠구나... 하는 예감이 뙇...

 

 

 

 


 불과 몇개월 사이에 기량이 쑥쑥 늘어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이고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량을 펼치고 있더군요. 물론 우리 손연재 선수가 이번에 볼에서 은메달을 따긴 했지만 그 타이밍에 마문선수가 볼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살짝 찜찜함으로 남습니다. 손선수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자 넘어야 할 산이지요. 우리나라보다 자원 풀이 방대하고 기량과 인프라가 발달해 있는 곳이니만큼 이런 선수들이 쑥쑥 나오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만큼 얼마나 손선수가 대단히 잘 하고 있는지도 느끼겠고요. 여튼 다음 올림픽 왕좌와는 마문이 가장 가까워 보입니다.

 

 

 

 현재 세계 리듬체조 최강국은 러시아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왕으로 등극했던 카나예바는 런던까지 휩쓸며 대적불가 여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그전에는 ‘푸틴의 여자’라는 스캔들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카바예바가 있습니다. 엽기적일 정도의 유연성이 인상적인 카바예바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리듬체조계에서 적수 없는 1인자로 군림했습니다. 카바예바 출연 이전과 이후로 리듬체조의 기량과 기술이 한단계 올라갔다고 할만큼 그는 새로운 기술과 묘기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두장은 카나예바 입니다

 

후프연기를 하는 카바예바

 

카바예바의 가공할만한 유연성

 

푸틴과 함께 있는 카바예바

 

알리나 카바예바라고 러시아어로 씌여 있습니다

 

 카바예바, 카나예바 모두 시대를 풍미한 리듬체조의 전설로 꼽힐만한 인물이긴 합니다만 제가 꼽는 최고의 전설은 20세기를 주름잡았던 불가리아의 비앙카 파노바입니다. 리듬체조는 1984년 LA올림픽에  첫 정식종목이 됐기 때문에  대중적인 스타급 선수들을 배출한 역사는 짧습니다. 당시 올림픽은 동구권이 불참했던 올림픽이라 누가 금메달을 땄는지 기억도 안나네요. 그런데 올림픽 이후 열렸던 세계 선수권 대회, 85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 대회는 시각적 충격이었습니다. 여성의 몸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최절정과 결정만을 모아놓은 듯 했지요. 그들의 몸과 움직임 하나하나는 마치 사람이 아닌 마성의 어떤 생명체인 듯 보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리듬체조 강국이 불가리아라는 것도 알게 됐지요. 릴리아 이그나토바라는 선수가 현역 최강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는데 그 대회에서 이그나토바 보다는 못 미치는 성적이었지만 혜성처럼 나타났던 비앙카 파노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가녀린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량도 놀랍지만 칙칙하던 세상을 환하게 밝히기라도 하는 듯 청초하고 고혹적인 미모도 놀라웠지요. 코마네치가 기계체조에서 만점을 받으며 세상을 놀래켰었다면 비앙카 파노바 역시 리듬체조에서 전종목 10점 만점을 처음 받으며 전설을 써가기 시작했습니다. 미모에서도 기량에서도 역대 최강이었던 그는 88서울올림픽 전까지 의심의 여지 없는 금메달리스트였습니다. 그가 입국했을 때도 언론의 관심은 그에게 모아졌고 올림픽 전 국내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는 그가 훈련하는 모습을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고혹적이지 않나요? 비앙카 파노바

 

 

 

 모든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리듬체조 경기가 시작됐지요. 그런데 곤봉연기에선가 이 수구를 떨어뜨리는 뼈아픈 실수를 하며 그만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메달이 아니라 4위에 그쳤지요. 워낙 감점이 큰 실수라. 다른 종목들은 다 완벽했지만 전체 점수를 평균해 개인 종합으로 금메달을 하나만 줬던 터라 결과는 노메달이었습니다.

 올림픽의 가슴아픈 실수에도 불구하고 이후 세계 선수권은 다 그의 차지였습니다. 싹쓸이 행진을 해가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예약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코치와 불화가 있었는지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불가리아 선수단 엔트리에서 그는 빠지고 맙니다. 이후 결혼하며 그는 현역 선수생활에서 은퇴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르셀로나 이후 세계 리듬체조계를 장악했던 불가리아의 세력은 급속히 쇠퇴하며 이렇다할 선수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국 잡지에 실렸던 그의 결혼 사진

 


 
 얼마전 유튜브 검색을 하다가 불가리아 TV 방송에 나오는 비앙카 파노바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식의 <댄싱위드더 스타>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스포츠 댄스를 추고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처음 봤을땐 추억과 전설로 박제된 스타의 모습만을 간직할 걸,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타까웠던 전성기, 선수로서 너무 짧았던 시간 등을 생각하면 아쉽고 아팠기 때문이죠. 그런데 세월과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얹어낸 그의 모습, 활짝 웃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을 보다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불가리아의 한 스포츠 잡지에 실린 최근 몇년새 그의 모습이라는데...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습니다..

 

 

 

 전성기의 요정같은 모습을, 최소한 그에 가까운 모습을 인위적 노력으로 유지하지도 않았고, 또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은둔하는 '전직 스타'처럼 숨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불가리아어로 이야기해서 뭔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모습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고작 열 다섯, 열여섯이던 십대 소녀의 기억속에 남아 있던 리듬체조의 전설적 요정은 이제 같은 추억을 간직한 40대의 동시대인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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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이맘 2015.09.29 02:21  링크  수정/삭제  답글

    파노바 비앙카는 우연히 중계에서 보고 홀딱 반했었네요 어릴 때. 그야말로 다른 선수는 운동. 본인은 예술가 느낌을 주는 선수였어요. 은퇴를 앞둔 올림픽에선 운이 안따라 가장 선수가 자신있어하던 곤봉에서 수구를 놓치다못해 라인밖으로 나가면서 망했지만요. 그때 참 안타까웠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서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또 우연하게 보면서 전 비앙카 파노바를 떠올렸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