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차 문화는 시대별로 다른데 송나라 때는 가루차를 저어 마시는 점다법이 유행했어요. 이때 일본으로도 전해진 점다법은 더 정교해져 지금의 일본 말차 다도가 되었지요.”
서울 한남동 티하우스 산수화. 정혜주 대표가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열고 있는 티 클래스다. 차의 역사와 종류, 시음법, 다구 사용법 등 차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공부하며 차를 우리고 마시는 법을 실습할 수 있는 자리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7주간의 ‘티 클래스’는 개설되자마자 일찌감치 마감된다. 수강생 중 다수는 20~30대 여성. 3층짜리 공간 곳곳엔 다구와 차가 진열되어 있다. 정 대표가 국내 차 산지와 중국, 일본, 대만 등 현지를 다니며 골라온 것들이다. 녹차, 백차, 청차 등 차의 종류별로 구성된 두툼한 메뉴판에는 유기농 한국 자닮황차, 유기농 한국 하동 자닮녹차, 밀향오룡, 정총철관음 등 낯선 명칭이 한가득이다.
티 클래스에서 다기 사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산수화 제공
2014년 산수화를 열었던 정 대표는 “초창기에는 들어왔다가 커피가 없다고 나가는 분들도 있을 정도였다”며 “그런데 최근 2, 3년 전부터는 바리스타나 바텐더 등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음료 맛에 민감한 젊은 전문가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힙한’ 감성보다는 정통에 충실한 스타일의 찻집인데도 고객의 상당수는 20~30대가 차지하고 있다.
차가 젊어지고 있다. 시내 곳곳에는 요즘 ‘핫플’이라는 차 전문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상당수는 젊은층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다구(茶具)나 다과(茶菓)가 차려진 찻상을 감각적으로 찍은 사진도 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차는 그동안 고리타분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음료였다. 커피나 달콤한 맛이 나는 다른 음료만큼 익숙하지 않은 데다 차를 마시는 데 사용하는 도구나 사용법도 복잡하다. 종류도 워낙 많고 격식과 예법도 필요해 젊은이들에게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음료였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 전문점일 만큼 커피가 음료시장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차가 뿌리내릴 틈이 충분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통 방식을 유지하면서 세련미를 더해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자극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현대적 스타일과 실험적 문화를 혼합해 감각적으로 호소하는 곳들도 있다.
오설록 북촌점 티클래스 오설록 제공
오설록 북촌점에서 다양한 재료로 블렌딩 티를 만들고 있다. 오설록 제공
서울 북촌에 있는 ‘오설록’은 차를 기반으로 한 신개념 음료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2021년 11월 개점한 이곳은 문을 여는 오전 11시 이전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지역 명소가 됐다. 3개 층으로 이뤄진 공간은 옛 양옥을 개조한 곳으로, 시원한 통창이 앞뒤로 나 있어서 북촌의 한옥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제주의 차밭에서 생산한 여러 종류의 녹차를 비롯해 찻잎을 허브나 꽃잎과 섞은 ‘블렌딩티’, 차를 기반으로 한 논알코올 ‘티 칵테일’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1층 매장에서는 차 제품을 확인하고 향을 맡아보며 고를 수 있는 ‘티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본격적으로 차를 마시기 전 이곳에서 향과 맛을 골라보는 고객도 많다. 3층에 마련된 ‘바 설록’에서는 차 칵테일을 내놓는다. 북촌 슬링, 한라티니 등이 인기 메뉴다. 일일 ‘티 클래스’에서는 원하는 차를 직접 만들어 맛볼 수 있다. 주 3일, 하루에 2회씩 열리는 이 수업에는 외국인도 많이 참여한다. 찻잎과 장미꽃잎, 히비스커스, 레몬그라스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조합해 각 차의 맛과 향을 비교하며 즐길 수 있다.
기와 모양의 와플 오설록 제공
차와 함께 맛볼 수 있는 디저트 세트 메뉴도 있다. 떡과 4가지 디핑 소스를 곁들인 ‘북촌의 색동’, 기와 모양의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북촌의 기와’가 대표 메뉴다. ‘북촌의 색동’에 나오는 소스 중 하나인 홍고추잼은 친숙하면서도 이색적인 맛이 난다.
‘티 클래스’ 젊은 여성에 인기...블렌딩티, 티칵테일, 티 오마카세 등 차에 대한 관심
색다른 음료 만들거나 음식 조합 찾기로 확장
북촌의 ‘델픽’은 외관부터가 미술관 같은 느낌을 풍기는 데다 매장 안에서도 다양한 다기를 감상할 수 있다. 차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도록 꾸며졌다. 소위 ‘티 오마카세’라고 불리는 곳들도 있다. 차와 어울리는 음식이 코스별로 나오는 방식인데, 제법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때에 따라서는 다과가 아니라 식사가 될 만한 음식과 차를 함께 내기도 한다. 북촌의 ‘갤러리 더 스퀘어’는 3가지 티 오마카세 코스를 판매한다. 청담동의 ‘바 티센트’는 차와 술을 조합한 칵테일을 선보인다. 보이차와 라이 위스키, 우롱차와 럼, 호지녹차와 버번위스키가 각기 어우러져 새로운 풍미를 만들어낸다. 서초동 ‘티 팔레트’는 티 클래스로 유명하다. 차를 우리는 방법과 차와 커피, 차와 와인 등을 접목해 새로운 음료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양한 재료로 블렌딩 체험을 해볼 수 있어서 인근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클래스를 운영하는 정지연 티 소믈리에는 “건강과 미용에 관심이 높고 자신이 무언가를 직접 해보는 데 의의를 두고 있는 20~30대들이 많이 찾는다”며 “최근에 관심이 늘고 인기도 많아지면서 원데이 클래스, 티마스터 과정, 티칵테일 과정 등의 수강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티하우스 산수화 매장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차에 대한 관심은 전통 차를 마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구 사용법이나 차를 우리는 방법에 따른 맛의 차이에 대한 관심도 높다. 차를 바탕으로 해 색다른 음료를 만들거나 차와 어울리는 음식 조합을 찾는데도 열심이다. 오설록 북촌점 신연희 점장은 “차는 건강에도 좋고 명상과 힐링, 안정감 등과 관계가 깊은 문화인데 이를 젊은 세대에서는 재미있고 친숙하게 즐기는 것 같다”면서 “음료 한잔을 마셔도 자신을 위한 소중한 경험으로 활용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구와 다기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차의 향을 맡아보며 마실 차를 선택하는 것, 우리는 시간을 달리해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것, 차에 따라 우려낸 찻물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것들이 모두 색다르고 흥미로운 체험이 된다. 번거롭고 복잡하게 느껴지던 방대한 차의 세계가 다양성과 체험을 추구하는 젊은 감성과 맞아떨어지면서 ‘힙한’ 문화가 되고 있는 셈이다.
정영경 한국소믈리에협회 사무국장은 “매년 개최되는 티소믈리에 대회에도 대학생들이 많이 도전하고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차 문화가 젊은층에게 익숙해지며 트렌디한 문화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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