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정체성이다. 특정한 문화집단 뿐 아니라 제각각 개성을 가진 개인들까지 설명하고 표현한다. 그래서 음식은 소통의 물리적 언어가 된다. 연대와 추억, 혹은 구별짓기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영화 <세상의 모든 디저트:러브 사라>는 음식이 갖는 이 전형적인 기능과 미덕을 보여주는 영화다. 제목에서도 충분히 그 전개가 짐작이 된다. 실제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밍밍할만큼 뻔하고 잔잔한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좋다. 음식이 비슷한 기능을 했던 영화 <케이크 메이커>에 비해 훨씬 가볍고 말랑한 동화같은 이 작품에서 생소한 세계 각국의 디저트를 만날 수 있다. 달콤하고 따뜻하고 포근하다.
처음 들어본 디저트들이 꽤 많이 나오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리속은 여느 때처럼 두갈래로 움직였다. 하나는 영화를 좇아가고, 또 하나는 저건 무슨 맛일지, 어떻게 하면 먹어볼 수 있을지 궁리하면서 말이다.
영화가 끝난 직후 집에 돌아오며 그 디저트들을 구글에서 열심히 찾아봤다. 하나씩 정리하며 도장깨기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먼저 라트비아의 크링글(Kringle).
영화속에서 라트비아 택배 기사가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디저트로 ‘크링글’을 언급했다. 처음 들어본 이 디저트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스칸디나비아, 덴마크 등 북유럽 쪽에서 먹는 패스트리라고 나온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도 언급되어 있는 걸 보니 아마 발트해 연안 국가들까지, 대체로 북부유럽 전역에서 즐기는 간식인 것 같다. 프레첼 모양에서 파생된 것으로 달콤한 크림 따위를 채워 먹기도 한다.
크링글/ 위키피디아
‘Latvian Birthday Cake / Klingeris’
라트비아 생일 케이크라는 이름으로 구글에 레시피가 꽤 많이 나와 있다. 라트비아에서는 생일에 프레첼 모양의 달콤한 빵을 구워먹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이 빵 위에 초를 꽂아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다. 라트비아 스타일의 크링글은 밀가루에 샤프란, 오렌지와 레몬 껍질, 설탕, 크림 따위를 넣고 반죽해 아몬드를 뿌려 구워낸다.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온 엄마가 찾은 디저트다. 이들 모자의 고향은 리스본. 포르투갈의 디저트 ‘파스텔 드 나타’는 이름만 들어서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찾아보니 바로 나온다. 우리에게 익숙한 에그타르트다.
이 상호를 가진 에그타르트 가게도 서울에 여러곳 있다. 마카오가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것도 이곳이 포르투갈 식민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카오에 가면 에그타르트 맛집으로 유명한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치는데 당연히 원조인 포르투갈 리스본에도 그런 맛집이 없을 수 없다. 검색해보니 리스본 벨렘지역의 ‘Pasteis de Belem’. 영어로는 Cake of Belem. ‘파스텔’이라고 썼지만 포르투갈어로는 ‘Pasteis’라고 쓴다. 1837년에 문을 연 이곳은 2017년에만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1만건 넘는 리뷰가 몰렸다고 한다. 이 기사는 2018년 1월자. 아마 지난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이곳도 힘들지 않았을까.
절친 사라와 이사벨라. 영화는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런던에 함께 빵집을 열기로 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라의 죽음으로 꿈은 좌절...되는가 싶다. 하지만 사라의 딸 클라리스의 의지는 이사벨라를 일으켜세우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할머니 미미를 설득한다. 셋은 의기투합해 '러브 사라'를 열고 꿈을 이뤄간다. 세계 최대의 다문화 도시인 런던의 베이커리 ‘러브 사라’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맛을 찾아주겠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간판을 내건다.
스트루델부터 셈라까지 다 만들어 드립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스트루델(Strudel). 위키백과의 설명은 이렇다. 층을 이룬 패스트리 과자의 종류. 18세기 합스부르크 군주국 시대부터 알려졌으며 오스트리아 요리로 취급된다. 스트루델은 소용돌이라는 뜻의 중세 독일어에서 나왔다고 하니 아마도 범독일권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간식일 듯하다. 실제로 여행 블로그에는 독일에서 애플 스트루델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꽤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소개되는 레시피의 대부분이 패스트리 반죽 속에 사과를 넣어 구운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아는 애플파이를 생각하면 되겠다.
그럼 셈라(Semla)는 또 뭔가. 역시 위키피디아 설명은 이렇다. 북유럽의 전통적인 디저트로, 스웨덴에서는 번 안에 달콤한 생크림을 듬뿍 넣어 먹는 디저트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찾아보니 스웨덴 뿐 아니라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에서 먹는 달콤한 롤이다.
원래는 사순절에 먹었던 다소 심심하고 밍밍한 빵이었다. 결코 달지 않은. 하지만 이 단조롭고 무미한 맛에 지친 스웨덴 사람들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날, 즉 카니발의 마지막 날인 참회의 화요일(Shrove Tuesday)에 크림과 아몬드 페이스트를 듬뿍 넣어 달콤하게 만든 이 빵을 먹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 달콤함을 탐하는 마음을 흠뻑 채웠던 것이다. 뚱뚱한 화요일(fat Tuesday)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스웨덴 말로는 페티스다겐(Fettisdagen), 프랑스어로는 마르디그라(Mardi Gras). 팻 튜스데이, 페티스다겐 다 생소한데 마르디그라는 좀 낯익다. 뉴올리언즈의 카니발 축제 마르디그라가 바로 뚱뚱한 화요일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부활절 전까지 겨울철 스웨덴에서는 웬만한 카페나 베이커리에선 이 셈라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사순절 기간에 주로 판다고 하니 아마 송편처럼 시즌 음식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5월에 스웨덴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 기간에 파는지 안 파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에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소한 디저트들은 계속 이어진다. 레밍턴, 판포르테, 페르시안 러브 케이크... 일본의 말차 밀크레이프는 국내에서도 흔한 것이니 패스.
레밍턴(Lamington)은 호주의 케이크다. 겉면에 초콜릿 소스를 바르고 코코넛 가루를 뿌린 스펀지 케이크.
다음은 호주의 유명한 레밍턴케이크 맛집 6곳.
시드니와 멜번에 2곳씩, 퍼스와 브리즈번에 1곳씩 꼽았다.
판포르테(Panforte)는 계피향이 강한 이탈리아식 과일 케이크다. 이탈리아에서도 그 기원은 시에나라고 하는데 웬만한 서구권 디저트가 들어와 있는 우리나라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도 많이 먹는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탈리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하면 파네토네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이건 국내에서도 많이 팔지만 판포르테는 파는 모습을 못봤다. 어디 파는 지 아시는 분!!! 이탈리아에서도 먹어본 적이 없다. 아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몰랐던 단어다.
페르시안 러브 케이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이란에 이런 전통 케이크가 있는지 어떤지는 확인하지 못했고 구글로 검색한 결과 영국의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어머니가 이란인이다)인 야스민 칸(Yasmin Khan)이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이란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등 중동 지역의 요리와 음식 등 이 지역에 관한 문화를 알리고 공유하는 책을 써왔는데 그가 늦봄의 페르시아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케이크라고 표현했다. 장미수와 레몬, 피스타치오, 장미꽃잎 등으로 풍미를 살린 이 케이크 이름이며 설명이며 너무나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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