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전남 장성 백암산의 작은 산사 천진암. 3평 남짓한 이 사찰의 작은 부엌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넓은 부엌인지도 모른다. 이곳의 주지는 정관 스님(62). 자그마한 체구의 스님이 쉼없이 만들어내는 소박한 음식들에는 자연과 세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스님의 음식을 맛보고 삶을 배우려는 열망에서다.




천진암은 고불총림 백양사의 말사(교구 본사에 딸린 작은 절)다. 백양사에서 비자나무 숲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아담하게 나타난다. 백제시대에 세워진 유서 깊은 백양사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찾는 사찰이다. 백양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1박2일, 혹은 2박3일 일정의 템플스테이를 구성하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것은 정관 스님과 함께하는 ‘사찰음식 체험’이다. 



“음식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방편이다”. 평생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스님의 이야기가 몇 년 전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그리고 세계 최대 동영상 채널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소개되면서 스님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됐다. 스님이 요리하는 비법에 대한 궁금증, 스님의 음식을 맛보고 싶은 호기심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 작은 사찰이 북적이게 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스님은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은 손님을 맞게 됐다. 그래도 매일 아침 예불을 드린 뒤 부엌에서 죽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김치를 내어 밥상을 차리는 일상은 반복된다.



지난 8월 말 휴가를 맞아 천진암을 찾았다. 스님의 삶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설거지, 청소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만 갖고 스님의 부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점심을 준비하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부엌은 벌써부터 북적거렸다. 이날 오후 한식진흥원에서 스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30명이 찾아오는 행사 때문이었다. 부엌에서는 스님과 여러 사람들이 그때 사용할 재료와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스님은 일주일에도 몇 차례나 이 같은 대규모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이 가지는 손질을 새로 해야겠네요. 만져보면 껍질이 꽤 두꺼운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벗겨내야 먹는 데 불편하지 않아요.” 



“감자를 그렇게 믹서에 갈면 안 되는데. 강판에 갈아야 원래의 결을 살릴 수 있다니까.”



“나물은 만져봐서 충분히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으면 됩니다. 같은 재료라도 나오는 계절에 따라 상태가 다르니까 정해진 건 없어요.” 



스님은 조리를 하는 틈틈이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고 시범을 보였다. 그 와중에 불쑥 찾아간 낯선 ‘식객’에게 막 쪄낸 감자떡이며 지진 열무를 찢어 맛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스님의 부엌에 함께한 사람들이다. 처음엔 언뜻 스님을 돕는 신도들인가 했다. 그런데 흔히 떠올릴 법한 중년의 신도가 아니라 20~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다. 스님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손놀림이 그저 돕겠다는 열심만으로 찾아온 ‘일반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알고 보니 현직 셰프거나 셰프를 꿈꾸며 공부하는 이들이다. 길게는 6개월 이상, 짧게는 일주일째 스님 곁에 머무르며 스님의 일상을 통해 배움을 얻기 위해 모인 인연들이다. 



이들의 일상 역시 스님과 같다. 아침 6시 예불로 시작해 삼시세끼를 스님과 함께 준비하고 먹으며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는다. 스님의 외부 강연에도 동행해 음식을 만들고 나눈다. 음식으로 대중들과 소통한다는 점은 바깥세상과 비슷할지 몰라도 이들이 얻고 깨닫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것들이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 재료를 존중하는 마음,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무엇보다 ‘왜 음식을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다. 



셰프 경력 10년이 넘는 김창훈씨(36)는 “이제야 ‘비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다”고 말한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셰프로 활동했던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1년간의 안식년을 맞아 전세계를 여행 중이다. 북유럽에서부터 남미 끝까지 발길 닿는대로 다니며 각 지역의 음식을 맛보고 때로는 그곳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을 이어온 그가 천진암을 찾은 것은 지난 3월이다. 막연히 한식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그가 정관 스님을 찾아오게 된 것은 치열한 현장에서 앞만 보고 달리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우려던 삶에 피로감을 느낀 이유가 컸다. 내려놓음, 비움에 대한 갈망은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물론 천진암에서 보낸 지난 시간들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형 레스토랑의 주방 시스템에 익숙하던 셰프에게 스님의 부엌은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일정한 레시피나 계량 대신 스님의 양념은 즉석에서 달라졌고 새로운 재료가 나타날 때도 많았다. 그는 “처음엔 저렇게 해서 가능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모든 상황을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스님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자연과 본질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나오는 내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리 작은 존재도 의미가 있고 그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 큰 가르침이 됐다”는 그는 9월 말 다시 호주로 떠난다. 그곳에서 새로운 개념의 한식 레스토랑을 선보일 계획이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서 통역을 하고 있는 강승완씨(28)는 올 초 미국 요리학교 CIA를 졸업하고 이곳에 왔다. 서양요리를 공부한 그에게 지난 6개월은 밥상에 우주가 담기는 원리를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사찰 주변 텃밭에서 얼갈이 배추와 열무를 거둬 김치를 담그고 참나무에서 자라는 표고버섯으로 반찬을 만들었다. 산기슭에서 자라나는 머위를 쪄서 쌈으로 먹기도 했다. 가파른 비탈길의 옥잠화 잎은 훌륭한 그릇이 됐다. 지난해에도 몇 차례 스님을 찾아왔다는 그는 “처음엔 스님에게서 요리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지만 ‘요리를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라는 근본문제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권유로 같은 학교를 졸업한 류원석(26)·송영수씨(21)도 이곳에 함께 머무르고 있다. 



최나용씨(24)는 한 달 전 천진암에 올 때만 해도 연말까지 있을 예정이었다. 몇 주를 이곳에서 보낸 그는 “최소한 사계절의 변화는 이곳에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그만두고 요리를 시작한 그는 뉴욕과 시드니의 캐주얼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다 돌아와 작은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천진암을 찾았다는 그는 “스님이 해내는 일이 엄청나게 많고 옆에서 지켜보고 돕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간다”면서 “일머리는 확실히 생길 것 같다”며 웃었다. 



막내 허준영씨(21)는 국제한식조리학교에서 스님에게 수업을 받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곳으로 왔다. 그는 “스님은 식재료를 활용하는 면에서 고정관념을 깨뜨리게 한다”면서 “그런 부분이 늘 감탄스럽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퓨전 한식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임희원 셰프는 주말마다 천진암을 찾는다. 2015년 <올리브 쇼>에도 출연했던 그 역시 “비워냄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저마다의 계획에 따라 천진암을 찾았던 이들은 많다. 재미있는 인연으로 얽힌, 산사의 셰프 학교가 된 셈이다. 최근 몇 년 새 미국 LA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컨템포러리 한식 레스토랑 ‘바루’의 어광 셰프도 지난해 몇 달간 이곳에 머물렀다. 이 레스토랑은 미국 유명 미식잡지 <보나페티>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뉴 레스토랑 톱 5에 선정되기도 했다. ‘바루’라는 이름 역시 발우공양에서 따온 것이다. 올 초에는 스페인 출신의 셰프가 3개월간 머물며 스님과 함께 겨울을 났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에게 가르침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들고 나는 것이 수행의 삶에 불편하지 않을까. 스님에게 우문을 던졌더니 스님은 “배우겠다는 마음이고 다 귀한 인연 아니냐”고 말했다. 내친 김에 더 한심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 옆에서 계속 보고 따라하면 요리를 잘하게 될까요.” 그러자 스님은 “무엇이든 본질과 원리를 알면 통하게 된다”고 답했다. 



“모든 개체가 다 자기만의 본질과 고유의 특성을 갖고 있어요. 거기서 저마다의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걸 인정하고 놔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산과 들에 자라는 자연을 놔두나요. 인간이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더 빨리, 많이, 치열하게 얻겠다며 욕심을 부려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본질을 인정하며 놔두지 않잖아요. 부모 자식 간에도 옭아매려 하고. 자연을 대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일생을 사는 것이 다 그래요.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요.”



정관 스님의 요리가 세계 무대에서 각광 받는 이유 역시 존재의 본질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비움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 



쉴새 없이 찾아드는 손님을 맞이하는 스님에게는 해외에 나가 사찰음식을 알리는 일정도 숨가쁘게 차 있다. 당장 9월 말에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슬로푸드 대회에 참가해 사찰음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북새통을 이룬 행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곧바로 저녁 시간이다. 메뉴는 그날 남은 재료에 따라 결정된다. 감자를 갈아 전을 부치고 밀가루와 비트를 섞어 연보랏빛 수제비 반죽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수제비와 감자전이 뚝딱 만들어졌다. 소금과 간장으로만 간을 하는 스님의 수제비 국물은 깊고 시원하다. 비트의 구수한 향이 감도는 수제비와 담백한 국물은 오장육부를 상쾌하게 데워준다. 특유의 고소하고 감칠맛이 감도는 감자전은 두세 개씩 집어 ‘폭풍흡입’을 했다. 스님은 오미자청과 감식초, 얼음물을 섞은 오미자에이드를 디저트로 내놓았다. 그릇이 모자라 국사발에 담아 마시는 오미자에이드지만 맛은 여느 디저트 카페 부럽지 않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후닥닥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를 삶아 걸어 놓는다. 말끔히 쓰레기를 치우고 싱크대 물기까지 닦아내면 대략 하루가 마무리된다. 선반 위에는 찌그러지고 긁힌 솥과 냄비, 손잡이 빠진 국자, 한쪽이 눌어붙은 플라스틱 소쿠리가 깔끔하고 정갈하게 정돈돼 있다. 고단했던 스님의 부엌도 휴식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