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한 ‘사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궜다. 경북 김천에 있는 사찰인 개운사 법당에 60대의 개신교인이 무단침입해 각목을 휘두르며 불상과 법구(불교 의식에 쓰는 기구)를 훼손한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서울기독대 신학과에 재직하고 있던 손원영 교수(52)는 SNS를 통해 개신교계를 대신해 사과한다는 뜻을 밝히는 한편 법당 회복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듬해 서울기독대는 되레 징계위원회를 열고 18년간 재직한 손 교수를 파면했다. 그리스도교회협의회의 신앙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했다는 것이 파면 이유였다. 이 소식은 사회적 공분을 불렀고 지난해 6월 손 교수는 부당징계를 철회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1년. 지난 8월 30일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1심에서 승소한 손 교수를 9월 3일 만났다. 손 교수는 “종교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없어지고 종교 간 갈등이 잦아들면 좋겠다”면서 “한국 교회가 이성을 되찾고 복음과 상식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학교로 바로 돌아가는 건가요.
“학교 측이 항소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니 지금은 지켜봐야겠지요. 하지만 상식적인 분들이라면 이 상황을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고등법원으로, 대법원으로 간다고 해도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학교만 상처받을 가능성이 크지요. 한국 기독교와 복음에도 상처를 주는 것이고요. 한편으론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학교인데 소송비를 낭비하게 되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어찌보면 종교계에 한정된 소식일 수 있는데 시민사회단체의 관심과 호응이 컸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승소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포털 사이트에 보니 댓글 가장 많은 뉴스로 뜨더라고요. 개인적인 작은 투쟁이 생각지도 못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결실을 얻었거든요. 감사하지만 한편으론 아팠어요. 한국 교회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많은 실망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어떤 결실입니까.
“처음엔 제 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어요. 종교계 인사와 시민들이 참여해서 시작된 이 모임이 점차 발전하더니 아예 개신교, 가톨릭, 불교, 천도교, 유교까지 뜻을 모아 ‘종교개혁연대’로 발전했지요. 지난해 12월 30일 발족했습니다.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평화와 개혁을 추구하자는 취지로 말입니다. 내년 3·1절에 맞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어요. 내년이면 3·1운동 100주년이거든요. 당시 기독교와 불교, 천도교가 힘을 합쳐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평화와 희생을 실천했던 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매달 학술대회도 열고 있어요. 개인의 보잘것없는 작은 날갯짓이 마치 태풍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은 감동입니다. 사표를 내라는 회유를 버텨내길 잘한 것 같아요.”
-그건 무슨 말씀인가요.
“학교에서도, 주변에서도 처음엔 사표를 권유했어요. 파면을 당하면 수년간 다른 학교로 갈 수도 없으니까요. 사표를 내고 다른 학교로 옮기면 모든 것을 조용히 끝낼 수 있고 생활인으로서도 편할 수 있지요. 가장으로서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물러날 수는 없더라고요.”
-파면을 자청한 거네요.
“이건 예수 정신과는 반대된 것이라는 걸 한국 교회에 분명히 전하고 싶었거든요.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이 배척하던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들을 사랑으로 대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른다는 후대가 오히려 이를 허물어뜨리고 있습니다. 제가 조용히 사표를 냈다면 훼손된 법당 복구를 위해 모금운동을 했던 제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학교의 설립 이념이 왜곡되는 것을 방조하는 결과이기도 했고요. 학생들에게 나쁜 뒷모습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어요.”
-학교에 대한 사랑이 큰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의 설립 이념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에요. 환원주의(Restoration)라고도 하는데, 교회의 부패상에 맞서 미국에서 일었던 교회개혁운동이기도 하지요. 예수님의 정신, 기독교의 본질 회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리더십을 갖고 있는 몇몇 분 때문에 학교가 상처입는 것이 가슴 아파요.”
-당시 모금운동으로 마련한 성금은 어떻게 사용됐나요.
“각계에서 많은 분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주셨어요. 그 돈을 개운사에 전달하려 했는데 오히려 개운사 쪽에서 종교 간 평화를 위해 사용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종교 간 평화를 위한 토론 모임인 ‘레페스 포럼’에 기부했습니다.”
연세대 신학과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보스턴칼리지,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감리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목회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학생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목회활동을 해온 그는 지난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일명 ‘가나안 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적 대안 목회를 시작했다. ‘가나안 교인’은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교계의 통계를 보면 국내 개신교의 가나안 교인은 190만명 정도로 집계된다. 손 교수는 “기존 교회는 안타깝다는 말만 할 뿐 그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에 대한 실천적 고민은 없다”면서 “목사로서 그분들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마침 시간도 많아져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나안 교인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적·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교회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증이 큰 것 같아요. 그래서 개별 교회가 윤리적 회복운동을 하는 동시에 현대신학의 논쟁거리를 비롯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시대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됩니까.
“이웃 종교인들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예술을 통한 영성수련을 하기도 합니다. 혹은 서울의 골목길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예배를 드리는 모임도 있지요. 다섯 가지 주제별로 모임을 매주 갖고 있습니다. 장소도 시간도 그때마다 페이스북을 통해 공지해요. 멤버십도 아니고 강제성도 없지요. 그래서 매번 조마조마해요. 누가, 몇 명이나 올지, 아무도 안 와서 예배가 무산되지나 않을지. 신기하게도 매번 10~15분씩 찾아오세요.”
-새로운 형태의 신앙 공동체인 거네요.
“계속 무언가를 시도하고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기본적인 개념은 제도권 교회에서 상처입은 분들이 치유받고 회복되는 쉼터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전 이게 선교이고 복음이라고 생각해요. 먼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는 식은 이 시대에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나와 다른 타자를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헌금은 있습니까.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일반 교회와는 다릅니다. 건물도, 헌금도, 목사 사례비도 없어요. 예배 공간은 뜻 있는 분들이 매번 제공해 주십니다.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하는 분들도 있긴 한데 다시 돌려드립니다. 직접 선한 일에 사용하실 것을 권하지요. 저 역시 사례비를 받지 않습니다. 교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자발적 가난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목회자가 자비량을 실천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이 같은 운동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처음엔 모임 장소를 구하느라 애먹었어요. 기존 교회에 두어 시간 정도 공간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의외로 배타적이더라고요.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사찰음식 전문점인 ‘마지’ 대표님께서 장소를 선뜻 제공하시겠다며 전화를 해 오셨어요. 어떻게 제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단골손님들 중에서도 가나안 신자가 있다면서요. 얼마나 부끄럽고 감사하던지요. 매달 이곳에서 이웃 종교인과의 대화 모임을 갖고 있어요. 제 생각에 마지는 주어사급의 역사적 장소가 될 것 같아요. 18세기 후반 한국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올 당시 유학자들이 여주 주어사에 모여 천주교 강학을 했습니다. 사찰에서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지요. 우리의 가나안 교회 역시 한국 기독교가 회복되는 역사의 시작이기를 바랍니다.”
-이웃 종교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얼마 전 한 신부님을 만났더니 갈수록 늘어나는 냉담자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위로할지 고민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가톨릭에서도 가나안 교회의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불교 개혁운동에 힘쓰는 우희종 서울대 교수 역시 불교의 가나안 신자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면서 농담반 진담반 말씀하셨고요. 저는 이런 건강한 실험들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편에선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고 있지만 저는 시민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종교가 감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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