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먹기의 사회학
데버러 럽텁 지음/ 한울
23쪽. 발전된 나라의 주민들은 개발도상국의 생태계와 경제에 피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그러한 나라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소비하기 때문에 그들의 음식 소비 관행은 착취적이라고 주장된다.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가 로빈 젠킨스의 저작 <부를 위한 먹을거리인가 아니면 건강을 위한 먹을거리인가: 건강의 ㅍ여등을 향하여> 이다. 이 책에서 그는 서구 국가의 농업 정책은 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야생생물을 해치고 오염과 불건강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젠킨스는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먹는 음식은 먹을거리 생산자와 제조업자의 탐욕, 그리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국가 개입과 규제의 결여 때문에 과잉 가공되고 과도하게 비싸다고 주장한다.
25쪽. 한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고기의 생산과 먹기를 가부장제 내의 여성의 낮은 지위와 연계시킨다 캐롤 아담스는 자신의 책 <고기의 성정치>에서 고기가 몸에 좋다는 가정은 고기를 남성의 역할과 연계시키는 본질적으로 가부장제적인 담론이라고 주장한다. 아담스가 볼 때 고기 생산이라는 명목으로 동물을 객체화하고 그것에 대한 폭력을 영속화하려는 관념은 남성주의적이다. 그녀는 남성의 동물에 대한 취급과 여성에 대한 취급 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동물과 여성 모두가 객체화되고 나성의 폭력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성폭행 희생자들과 매맞는 여성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동물이 겪는 죽음 경험이 여성이 겪는 살아 있는 경험을 설명해준다. 따라서 그녀는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윤리적 채식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33쪽. 음식은 문화적으로 쾌락의 한 원천을 구성하는 것이자, 상징적으로는 한 사람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상품으로 작용한다.
몸을 통제하는 방식 중의 하나가 먹기 습관을 규율하는 것이다. 이것은 음식 섭취의 양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먹는 음식의 종류를 통제하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현재 자기 규율의 가치가 강조되고 있는 서구 사회의 상황에서 몸은 그 소유자가 자기 통제력을 소유하고 있는 정도를 보여주는 유력한 신체적 상징이 된다.
우리는 음식을 몸으로 흡수함으로써 세계를 받아들인다.
현대 그리스정교회 수녀원의 음식과 음료 관행에 대한 한 인류학적 연구는 음식을 둘러싼 의례들이 먹기를 몸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위허한 행위로 제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수녀들은 먹는 동안에 몸의 열림과 닫힘과 연관된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각각의 식사를 전후하여 관례에 따라 신의 축복을 빈다.
음식은 하나의 경계물질이다. 그것은 자연과 문화, 인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외부와 내부간을 이어주는 물질이다.
37쪽. 실제로 말하기와 먹기 간에는 강력한 연계 관계가 존재한다. 혀가 말하고 혀가 맛을 본다. 단어들도 음식처럼 입을 채우고, 그것들은 그것들 나름의 맛과 질감을 가진다. 단어들도 얼얼하고 맵고 달콤하고 거칠고 부드럽고 달고 시큼할 수 있다. 단어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 음식에 관한 형용사가 있는가.
입과 혀는 또한 유아가 그것들을 통해 처음으로 가슴과 접촉하고 즐거움을 느낀다는 점에서 에로틱한 기능도 가지고 있다. 프로이트에게서 유아가 처음으로 가슴과 감각적으로 만나고 음식을 체내화하는 구강기는 섹슈얼리티의 발전에서 원초적인 경험이다. 음식의 섭취를 통해 처음으로 자극받은 입은 그 자체로 에로틱한 쾌락의 한 원천이 된다(Coward 1984). 나중의 성적 활동에서 입은 키스하기, 핥기, 빨기 행위에서 느끼는 에로틱한 쾌락의 필수적 구성요소이다. 따라서 입속에서 음식의 감각은 에로틱한 욕망, 즉 일본영화 담뽀뽀에서 날달걀을 입에서 입으로 주고받는 에로틱한 열정에 몸부림치는 한 커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현상, 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48쪽.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음식은 단지 그것의 영양이나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또는 배고픔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 가치 때문에 소비된다. 그러한 가치들은 상품으로서의 음식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자아로 전이된다. 음식은 개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또는 자신이 어떻게 인식되기를 바라는지르 ㄹ스스로와 타인들에게 투영하기 위해 선택된다. 이를테면 빅맥을 사서 먹는 행위는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를 좋아하는 문화집단의 성원과는 다른 어떤 문화 집단의 성원임을 증명한다. 이것은 동일한 개인이 두 가지 먹기 활동 중 하나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각각의 경우에 제시되는 페르소나가 다르다는 것만을 지적할 뿐이다. 그와 같은 상품의 사용이 주체성의 발전과 표현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음식이 상징적으로 소비될 때 그것의 맛은 자주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음식물을 둘러싼 이미지이다.
사용가치에 대한 교환 가치의 지배. 수년간 페리에나 에비앙이라는 이름이 물을 마시는 행위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해 ㅘㅆ다. 상품으로서의 음식물은 판매되기 위해 그것과 그것의 경쟁자들을 차별화한다.
코워드가 음식 포르노그라피 또는 음식 시물라크룸이라고 칭한 것으로, 먹는 즐거움은 음식의 맛 또는 질감보다는 음식의 심미적 형태와 그것이 불러내는 감정 상태에서 파생한다.
50쪽. 각국과 각 지역은 그러한 음식을 가지고 자신을 확인하고 다른 나라 및 지역과 자신을 구분한다. 이를테면 기호학자 롤랑바르트는 프랑스의 대중문화를 분석한 에세이 모음집 <신화>에서 특정 음식의 국민주의적 속성에 주목하여 스테이크의 공통적인 파트너인 감자튀김을 '프랑스임의 음식기호'라고 지적한다. 와인 역시 프랑스인들에 의해 프랑스임의 토템술, 즉 360종의 치즈와 그 문화처럼 자신들만의 소유물로 간주된다.
영국의 피시앤 칩스, 호주의 베지마이트는 다 영국임의, 혹은 호주임의 요리 기호다.
북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추수감사절 정찬은 가족, 이웃, 역사를 찬양하는 하나의 의례이다.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17세기 건국자들, 필그림들, 그리고 그들의 첫 수확을 찬양하는데서 파생한 크랜베리 소스, 달콤한 감자, 호박 파이를 곁들인 전통적인 칠면조 정찬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들이 환영받고 동화되어 성공을 거둔 이주민들의 나라에서 미국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확인한다.
181쪽. 피에르 부르디외는 개인들이 자신의 자회적 지위를 통해 사회화되면서 특정한 좋아함 또는 성향을 발전시키는 방식을 논의하는데 취향 개념을 사용해 온 탁월한 사회학자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는 용어를 이용하여 취향과 성향이 표현되고 육체화되는 방식을 요약한다. 그는 어떤 사람의 취향은 상품 소비에서 이루어지는 일시적인 선택, 예를들면 옷 입는 방식, 집을 장식하는 스타일 등을 통해 표현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육체화를 통해 훨씬 더 항구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몸은 계급 취향을 가장 확실하게 물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개인들의 걷는 방식 자체, 그들이 나이프와 포크를 잡는 방식, 그들의 몸의 근육 조직과 체구 모두가 그들의 음식에 대한 선호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회적 지위의 사회화의 산물이자 기표이다. 부르디외는 음식 선택을 포함하여 올바르게 처신하는 방법과 관련한 지식을 하나의 문화자본으로 언급한다.
부르디외는 자신의 책 <구별짓기. 취향 평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에서 취향과 아비투스를 논의하면서 그거소가 함께 계급에 기초한 음식 선호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음식 습관과 음식 선호에서 독특한 사회 계급별 차이를 발견했다. 높은 경제자본을 소유하지만 문화자본은 비천한 벼락부자 집단의 성원들이 사냥해서 잡은 고기와 푸아그라 같은 아주 느끼하고 값비싼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더 큰 반면 문화자본과 경제자본 모두를 가진 보수가 많은 전문직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소화가 잘 되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그리고 조악하고 지방이 많은 음식을 거부하고 고상한 음식을 먹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교사와 같은 덜 부유하지만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과시적 소비보다는 금욕적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고 값이 비싸지 않은 색다르고 이국적인 음식과 전통적인 농민요리를 선호했다.
취향 구별짓기는 다른 사회집단이나 다른 계급의 성원들을 폄하하는 수단으로 빈번히 이용된다.
254쪽. 유대교와 기독교 윤리의 기저에는 먹기와 단식의 관행이 깔려 있고 그러한 관행 자체는 식이욥버에 대한 고대의 저술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규율과 위생의 교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식생활 특히 고기와 같은 것들의 통제는 식욕과 성욕 모두를 포함하는 살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열성적 종교 신도들이 즐겨 이용한 전형적인 금욕 관행이다. 식욕을 극복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단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자신을 바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몸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영적 음식으로 개념화되고 성찬식 의례에서 성체로 찬양된다. 성체는 빵과 포도주.
음식이 희소하던, 그리고 풍부한 음식이 부와 귀족의 표시였던 중세 시대에 대식은 욕망의 주요한 형태로 간주되었고 남과 빈약한 음식창고를 나누는 것은 영웅적 아량의 표시였다. 빈번하고 강렬한 배고픔 때문에 의도적으로 스스로 음식을 끊는 것은 성적 욕망이나 허세를 통제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으로 고려되는 최고의 자기 규율 테스트로 간주되었다. 진정한 신성과 신앙심을 획득하고자 시도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육욕을 초월하고 영혼을 정화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매우 검소하게 먹었다. 초기 기독교 사상에서 대식을 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5세기 수도사를 위해 쓰인 한 문건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위의 욕망을 억제함이 없이 육욕의 불을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Bynum. 1987. 중세의 종교 텍스트에서는 성인들이 음식으로 유혹당하거나 고문당하는 것 또는 그들에게 고기를 다지고 삶고 구워 요리를 제공하게 하는 것을 그들으 ㅣ수난의 일부로 크게 다루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악마, 사탄, 마녀는 음식과 관련한 기괴한 의례를 사랑했다.
식욕의 유혹을 참는 것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여전히 기독교 사상의 강력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존 웨슬리는 1774년 한 성직자에게 쓴 편지에서 만약 당신 앞에 두 접시의 요리가 차려져 있다면 극기의 규율을 따라 당신은 당신이 가장 덜 좋아하는 것을 먹어야만 한다고 지시했다.
유대교와 기독교사상은 역사적으로 음식의 욕구와 성적쾌락의 욕구를 결부지어왔다 무식욕증을 가진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욕망만이 아니라 성적 욕망을 퐇마하여 모든 육욕적인 욕망을 거부하거나 억압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268쪽. 비만은 젠더에 따라 다소 다른 의미로 부호화된다. 특히 여성은 비만일 경우 낙인찍기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비만인 여성은 지위가 높은 일자리에 고용될 가능성이 더 낮을 정도이다. 슈워츠는 서구사회에서 매우 뚱뚱한 남성이 대식가나 거대한 사람으로 활기차게 묘사되고 능력을 부여받아왔다면 매우 뚱뚱한 여성은 환자 또는 기형적인간으로 , 즉 두려움의 대상보다는 동정의 대상으로 훨씬 더 무력하게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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