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에서 사고 차량을 조사하고 있는 현지 경찰/ 로이터 연합뉴스
얼마전 국제 뉴스에서 인셀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차량을 몰고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살해했던 사건의 용의자가 '인셀'이라는 것.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로, 여성과 성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남성들을 일컫는다고 기사에 설명이 돼 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났던 것이 미셀 우엘벡의 소설 <투쟁 영역의 확장> 이었다.
이 책의 중간 부분엔 소위 '인셀'이 어떻게 범죄에 이르게 되는지(책에서 범죄를 저지르는데까지는 가지 않는다) 여러 요인의 추동과정과 그 심리상태의 변화가 묘사돼 있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동료 라파엘 티스랑은 말하자면 '모태 인셀'이다. 스물 여덟살의, 성경험은 커녕 여자친구를 한번도 사귀어보지 못했다. 책에서 묘사한 그의 외모는 '한마디로 전혀 매력이 없다'. 다른 설명도 없이 바로 직설적으로 너무나 못생겨서 여자들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는 여자들은 어쩔 수 없는 혐오감으로 얼굴이 구겨진다. 그건 거의 역겨움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할 정도다.
자연히 그런 외적 조건 때문에 그는 모든 시도에서 실패하고 누군가에게 진정성을 보일 기회 조차 얻을 수 없다. 티스랑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전문직 가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 치를 확보했지만 연애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주인공은 서른살로, 역시 정보기술자라는 잘나가는 전문직이다. 2년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연애를 하지 못했고 우울증을 앓고 있다. 지극히 무기력하고 냉소와 고통, 찌꺼기같은 분노가 남아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자신과 티스랑의 상황을 놓고 이런 넋두리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히 섹스도 차별화의 또 다른 체계를 보여 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돈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또한 냉혹한 차별 체계인 것이다. 무제한적인 경제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섹스의 자유주의는 '절대 빈곤' 현상을 낳는다.
주인공의 설명에 따르면 자유주의 섹스 체제에서 티스랑은 '절대빈곤' 층이다.
-어떤 이들은 매일 사랑을 하는데 어떤 이들은 평생에 대여섯 번 뿐이다. 어떤 이들은 열댓명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여자가 한명도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시장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완전히 자유로운 경제 체계에서 어떤 이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는가 하면 도 다른 이들은 실업과 가난에 허덕인다. 완전 자유 섹스 체계에서 어떤 이들은 정말로 다양하고 짜릿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다른 이들은 자위행위와 외로움 속에 늙어 간다. 자유주의 경제는 투쟁 영역의 확장이다. 그 사회의 모든 연령층, 각계각층으로의 확장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섹스는 투쟁 영역의 확장이다. 그 사회의 모든 연령층과 각계각층으로 자신의 투쟁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경제적 차원에서 라파엘 티스랑은 승자이지만 섹스 차원에서는 패자이다. /기업들은 학위나 자격증을 가진 젊은이들을 놓고 다툰다. 여자들은 일부 젊은 남자들을 차지하려 한다. 남자들은 일부 절은 여자들을 차지하려 한다. 그 와중에 일어나는 동요와 혼란은 심각하다. (책 140쪽)
그런 두 사람은 함께 출장을 다니며 술을 마신다. 물론 여자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볼까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주인공은 그저 생각과 냉소뿐이고 티스랑은 무언가를 시도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매몰찬 모멸감. 티스랑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절망에서 오는 에너지'다. 주인공은 절망에 빠진 그에게 제안한다. 그들의 인생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인을 하라고. 주인이 되라고. 그리곤 칼을 쥐여준다.
절망에서 오는 에너지, 그로 인한 심리의 변화와 그것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그 과정은 섬뜩하다. (책에선 칼을 손에 든 티스랑은 살인을 저지르거나 대상을 위협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신이 어이없고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
절망에서 오는 에너지. '인셀'이라는 용어를 접하는 순간 이 소설과 함께 저 문구가 생각났다. 물론 더할나위 없는 혐오범죄이고 개인의 일탈이다. 하지만 일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버릴 만큼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현상화의 가능성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이 두렵고 답답하다.
'개똥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랫퍼킹... 이 요상한 단어를 아시나요? (0) | 2018.06.04 |
---|---|
사이다 변호사 노영희 (0) | 2018.05.31 |
국제뉴스를 보는 시각에 균열을 내는 책 (0) | 2018.04.23 |
미셸 우엘벡을 끊을 수 없는 이유 (1) | 2018.04.05 |
4.3에서 개신교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0) | 2018.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