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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과 탐식

푸드립 14 파스타

by 신사임당 2017. 7. 21.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기를 40만부까지 찍었다니 모처럼 서점가에 대단한 열풍이 불고 있다. 나 역시 책을 받아들고 이틀만에 해치웠다. 밀린 숙제 하듯 한 것은 아니다. 일단 이야기는 재미있으니까 놓지 않고 읽게 되나 갈수록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가능한,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렇게 흘러가는 서사. 오히려 전반부의 당김음같은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 아쉬웠다. 뼈대는 그렇다는거고 피와 살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는 말 그대로 ‘넘나 하루키스러움’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문학적 측면에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넘쳐나는 다양한 먹거리와 요리. 먹방수준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먹거리 중에서도 하루키 아이덴티티의 정수라고 할만한 것은 파스타 아닐까 싶다. 좀 더 엄밀히 말한다면 스파게티.
 나처럼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그러니까 지금 40대들. 그들의 정서적 지분에서 하루키는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90년대는 운동권 중심의 대학문화가 주춤하는 대신 개인주의와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는 문화와 정서가 크게 확산됐다. 단군이래 가장 풍부한 유무형의 문화적 물산을 향유했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며 미래에 대한 장밋빛 낙관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20대를 보냈던 이 세대는 현재 문화산업에서 주축이 된 생산자이며 여전히 왕성한 문화 소비자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가장 운 좋았던 세대, 그래서 가장 철딱서니 없는 세대라고도 일컬어지는지 모르겠다. 이 세대를 ‘영 포티(young forty)’라는 그럴듯한 말로 지칭하기도 한다. 하루키는 이 시절 젊은 세대들에게 열풍을 일으켰고 그들도 하루키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듣자하니 요즘 20, 30대 들은 하루키를 잘 읽지 않거나 심지어 잘 모르기도 한단다.
 아무튼 하루키는 90년대 국내 외식업계에 스파게티 열풍을 일으켰던 주역으로도 빼놓을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트렌디한 외식 업체들은 대부분이 스파게티 집이었으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스파게티를 내놓았다. 심지어 미팅을 할 때도 스파게티를 메뉴로 선택하는 것이 일종의 ‘그린 라이트’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하루키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손쉽게 스파게티를 요리해 먹고 레스토랑에서도 늘상 스파게티를 즐긴다. 그의 작품에서 스파게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인물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이자 분위기와 스타일까지 형상화하는 요소가 된다. 솔직히 지금 20대라면 그의 묘사와 문장을 읽으며 “뭐가 어쨌다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90년대 당시 20대 상당수는 하루키 스타일에 마음이 달떠올랐던 경험을 갖고 있다. 혼밥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스파게티는 혼자 먹어도, 혼자 요리해도 세련되고 멋스럽고 한번쯤 그래 보고 싶은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대상이었다.
 그의 단편 중 <스파게티의 해에>라는 작품이 있다. 1971년은 스파게티의 해라고 단언하며 시작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을터. 현재 일흔을 바라보는데도 그의 작중화자들은 변함없이 스파게티를 즐긴다. 이번 작품에서도 서른 여섯의 ‘나’는 아내와 이혼한 뒤 노화가 아마다 토모히코의 산장에 살며 수시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다. 자신에게 산장을 제공해 준 아마다 마사히코와 레스토랑에서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새우 스파게티가 등장한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만난 소녀 마리에, 그리고 그녀의 고모 아키가와 쇼코에게 처음 만들어 준 요리까지도 예외가 없다.  
 <스파게티의 해에>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스파게티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나는 혼자서 스파게티를 삶고 혼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누구와 둘이서 먹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혼자서 먹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그 무렵의 나는 스파게티란 혼자서 먹어야 하는 요리인양 생각했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스파게티를 먹을 때는 언제나 홍차를 마셨다.  샐러드도 만들었다. 혼자서 스파게티를 먹고 있으면 곧잘 금방이라도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비 내리는 날의 오후는 특히 더 그랬다.”
 클래식 음악과 재즈, 독서와 영화를 즐기고 비교적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쿨한 스타일의 독신남. 꼭 이상형은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의 호감을 주는 하루키형 인간의 전형적인 상은 그대로 고정관념이 되다시피하면서 우리나라 대중문화에도 고스란히 전이됐다. 그러고보니 영화 <시월애>가 생각난다. 영화는 딱히 흥행하지 않았지만 여기 나왔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름 ‘일 마레’는 이후 국내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름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 마레’ 간판을 단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봤었던가 말이다.
 하루키가 작품속에 스파게티를 ‘등장’시켰던 몇몇 장면들을 더 찾아보자.  
 1985년 발표했던 <패밀리 어페어>라는 단편은 ‘나’와 여동생이 취향이 맞지 않아 사사건건 부딪히는 일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그 화제 중 하나는 스파게티다. 아마 이 때만 해도 스파게티 심의 씹는 맛을 살리게 삶는 ‘알덴테’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이처럼 심이 씹히는 맛을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혹평한다.
 “우리는 역앞에 새로 생긴 아담한 스파게티 하우스에 들어갔다. 나는 가지와 마늘이 들어간 스파게티를 주문하고 여동생은 바실리코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문제는 나온 스파게티의 맛이 재앙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지독하다는 것이었다.”
 스파게티를 삶을 때 어울리는 음악을 이야기한 대목도 있다.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에서다.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있던 참이었다. 스파게티가 삶기기 직전, 나는 FM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을 휘파람으로 따라부르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삶는 데는 딱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하루키는 전업주부로서도 살았다. 또 카페를 운영하며 직접 요리를 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살림이나 요리를 묘사하는 부분은 이물감없이 다가온다. 요리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부분도, 진짜다.
 <댄스댄스댄스>
 “나는 라비올리와 야채 샐러드를 먹고 그녀는 봉골레 스파게티와 시금치를 먹었다. 나는 샐러드를 다 씹고 나서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을까 생각했다. 스파게티로 할까 하고 생각했다. 마늘을 두알 굵직하게 잘라서 올리브 오일로 볶는다. 프라이팬을 기울여 기름을 고이게 하고 오래 시간을 들여 뭉근한 불로 볶는다. 그 다음에 빨간 고추를 통째 거기에 넣는다. 그것도 마늘과 함께 볶는다. 쓴 맛이 나기 전에 마늘과 고추를 꺼낸다. 언제 꺼낼지 시간을 맞추기가 제법 까다롭다. 햄을 잘라서 거기에 넣고 매콤해질때까지 볶는다. 거기에다 막 삶은 스파게티를 넣고 살짝 건져 내가지고 잘게 다진 파슬리를 뿌린다.”
 <양을 쫓는 남자>에 나왔던 명란 스파게티는 그의 레시피를 재현하는 많은 추종자들이 즐기는 메뉴다.
 “왁스칠 할 때 사용한 여섯 장의 걸레를 빨아서 밖에 넌 다음 냄비에 물을 끓여 스파게티를 삶았다. 명란과 버터를 듬뿍 넣고 백포도주와 간장을 넣었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했다.”
 
 하루키의 작품에 주로 나오는 것은 스파게티다. 파스타라고 언급된 부분도 있는데 대체로 스파게티를 말하는 편이다. 파스타는 길고 짧고 만두같이 생긴 각양각색 모양의 모든 종류를 일컫는 큰 개념이라면 스파게티는 우리가 익히 아는, 긴 면발을 가진 특정 국수를 지칭하는 것이다. 수많은 파스타 종류 중 왜 하루키는 주로 스파게티를 삶을까. 간간이 다른 종류의 파스타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웬만한 작품에선 주로 스파게티를 삶아 댄다. 대충 집에서 해 먹기가 간단하고 대중적으로 많이 보급되는 재료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대충 생각해 본다. 라면만큼이나 만들기 쉽다. 잔치국수를 만들려면 멸치 육수를 내야 하지만 이건 끓여서 소스만 끼얹으면 되니 말이다. 물론 엄격한 공정을 거쳐야 하는 정통 파스타를 만드는 분들 입장에서 이같은 발언은 망언에 가깝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먹는 것은 편하고 쉬워야 일상성과 생명력을 갖는다.  
 파스타의 유래나 종류, 각종 다양한 요리법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글들은 서점에 많이 나와 있다. 작가이자 셰프인 박찬일 셰프의 맛깔나는 글들은  쉽고 재미있게 파스타와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익힐 수 있다. 그가 쓴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는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개괄적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한편,  제법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