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설가 위화가 한국을 찾았다. 세계 문단에서도 이름이 높은 그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작가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 말이다. 피를 뽑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가장 허삼관과 그의 가족, 주변 인들의 이야기. 비루하고 보잘것 없는 인물의 삶을 통해 굵직한 근현대사를 엮어내는 그의 작품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하고 애틋한 시선, 극한 상황에서 놓치지 않는 유머와 해학이 있다.
십수년전 읽은 허삼관 매혈기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 따라오는 몇가지 음식의 이미지가 있다. 홍소육과 돼지간 볶음, 그리고 옥수수죽이다. 극도의 허기가 주는 고통과 극강의 식욕을 자극하는 진미가 교차하는 <허삼관 매혈기>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아릿한 연민과 주체못할 식탐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먼저 옥수수죽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가난해서 더 슬픈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굶주렸던 그 시절, 게다가 피를 팔아 연명했던 허삼관의 허기는 어떠했을까. 멀건 옥수수죽만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허삼관 가족들. 행여나 배가 더 고파질까 싶어 새벽과 저녁에 한번씩 죽을 ‘마시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 움직이면 바로 배에서 꼬르륵 하고 소리가 나면서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말 없이 꼼짝않고 누워서 잠만 잔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내 뱃속이 짜르륵 거리며 허기로 콕콕 찔러오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허기가 계속되기는 허삼관의 생일날도 예외는 아니다.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이 식사를 준비하며 “오늘은 맛있는 것”이라고 외치자 아이들은 기대에 가득차 눈을 말똥거리며 식탁에 모여 앉는다. 여전히 옥수수죽이 나오는 모습에 실망에 찬 아이들. 하지만 평소와는 좀 다른 옥수수죽이다. 춘절에 쓰고 아껴뒀던 설탕을 넣어 단 맛을 냈고 평소보다 좀 더 걸쭉하게 끓였다. 죽사발을 혓바닥으로 싹싹 핥아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한 아이들과 허삼관은 배가 고픈 채로 자리에 눕는다. 조용히 잠드는 대신 허삼관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다. 일명 ‘말로 만드는’ 요리다. 마치 눈앞에 재료를 두고 요리하는 것처럼 먹음직스러운 묘사로 뚝딱 만들어내는 것은 홍소육이다.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고기에는 비계하고 살코기가 있는데 홍소육이면 반반 섞인 게 제일 적당하지. 껍데기째로 말이야. 먼저 고기를 썰어서 손가락만큼 굵게, 손바닥 반만큼 크게…”. 요리하는 모습도 눈앞에서 보는 듯 실감난다. “비계는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살코기는 보들보들한 것이…. 내가 왜 약한 불로 곤 건지 아니? 맛이 완전히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야.”
비계하고 살코기가 반반 섞인 고기. 바로 삼겹살이다. 삼겹살로 만드는 중국의 대표적인 요리가 홍소육과 동파육이다. 국내 중국집에서 동파육을 파는 곳은 많지만 홍소육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삼겹살에 양념을 해서 쪘다는 점에서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리저리 찾아보니 조금은 다르다고 한다. 예전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던 선배의 글(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221521591&code=970100)에선
이렇게 차이를 설명했다. ‘동파육은 푹 삶은 고기의 향기가 난다면 홍소육은 입안에 들어가 사르르 녹는다.’ 슬프게도 차이를 잘 모르겠다.
홍소육은 마오쩌둥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요리라고 한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었다. 그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모가홍소육’으로, 고향인 후난성 샹탄현 사오산에서 유래한 요리법을 사용한 것이다. 간장보다는 설탕으로 색깔을 낸 것을 좋아했다고 하니 단 맛이 강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홍소육은 워낙 대중적인 요리라 지역별로 요리법도 다양했다고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물에 삶아서 졸이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기름에 튀긴 다음 졸이기도 한단다. 모가홍소육처럼 설탕을 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허삼관처럼 간장과 오향을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북송시대 시인 소동파가 좋아했던 동파육은 홍소육의 한 종류로 봐도 될 것 같다. 중국은 워낙 지역이 넓고 다양한 요리법과 식습관이 발달지라 양념이나 첨가하는 재료에 차이는 있을테지만 삼겹살을 사용한다는 점, 양념을 해서 약한 불에 오래 졸인다는 점은 공통적인 것 같다. 지역마다 특색있는 방법으로 삼겹살 찜을 요리해 먹었는데, <채근담>에 보면 소동파가 벼슬을 하던 당시 백성들에게 홍소육을 보냈고 이를 고맙게 여긴 백성들이 이 음식을 ‘동파육’으로 명명했다고 하는 설명이 나온다. 소동파 스타일의 홍소육, 즉 동파육은 현재 항저우를 대표하는 메뉴로 알려져 있다.
뭐니뭐니해도 <허삼관 매혈기>하면 생각나는 요리는 돼지간 볶음이다. 이 소설을 통털어 가장 존재감이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삼관이 매번 피를 팔고 나서 찾는 곳은 동네 승리반점이다. 이곳에서 그는 돼지간 볶음과 따끈한 황주를 시켜 먹는다. 장가를 들고, 빚을 갚고, 아이들을 치료하고,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그는 인생의 고비마다 피를 팔아 해결한다. 피를 판 뒤엔 항상 승리반점으로 향해 돼지간 볶음과 황주를 먹는다. 몸에서 빠져나간 피를 채워넣는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말이다. 언뜻 보면 돼지간 볶음이 먹고 싶어 피를 파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돼지간 볶음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에게 돼지간은 피를 만들어주는 생명의 원천이자 삶의 의욕인지도 모른다.
애닯기 그지없는 음식임에도 소설 속 돼지간 볶음은 상당히 식욕을 자극한다. 심지어 나는 허삼관이 설명하는 돼지간 볶음 요리법을 흉내내 만들어보기도 했다. “돼지 간을 먼저 작게 썰어서, 아주 작게 썰어가지고 사발에 우선 담은 다음, 소금을 뿌리고 얼레짓가루를 입힌다고. 얼레짓가루가 돼지 간을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거든. 그 다음에 황주 반 잔을 뿌리는데 황주는 돼지 간 냄새를 없애 준다고. 그리고 파를 잘게 썰어 얹고 나서 솥의 기름이 충분히 데워져 김이 날 때 까지 기다렸다가 돼지 간을 기름에 넣고 한번, 두번, 세번 뒤집어…”
돼지간을 따로 구할 수 없어 순대집에서 파는 간을 썼다. 이미 퍽퍽한 상태에서 다시 볶는거라 허삼관이 먹었을 간볶음과 같은 식감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얼레짓가루도 구할 수 없었고. 대신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청주에 살짝 재운 뒤 파와 양파를 잘게 썰어 넣었다. 그리고 들기름을 둘러 볶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소설 첫 장에 등장하는 돼지간 볶음은 마지막 장에도 등장한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허삼관. 돼지간 볶음이 먹고 싶던 그는 큰 결심을 한다. 생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늙어버린 그의 피는 어느 곳에서도 사려하지 않는다. 피조차도 팔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맞닥뜨린 그는 자신의 가치와 쓸모가 다했다는 극도의 좌절감에 사로잡히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그런 그를 부인은 위로하며 그를 이끌고 승리반점으로 향한다. 생애 처음으로 피를 팔지 않고 먹게 된 돼지간 볶음은 저절로 웃음이 터질만큼 맛있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맛있는 돼지간 볶음은 처음이야”라고 할만큼 말이다.
수십년전 시간과 중국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이 책은 희비극이 교차하는 지금 우리네 삶과 비교할 때도 조금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군침 도는 돼지간 볶음과 홍소육 이야기를 하려했던 것이 어쩌다보니 책 내용을 주저리 써놓는 스포일러가 돼 버렸다. 주인공의 처연하고 처절한 삶을 특유의 해학과 위트로 풀어낸 때문인지 꽤 깊고 오랜 잔향과 여운을 남긴다. 맨 마지막 문장 역시 허를 찌르는 해학과 위트를 자랑한다. 배우 하정우가 영화 <아가씨>에서 했던 마지막 대사를 두고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만하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 <허삼관 매혈기>는 문학사에 기록될 마지막 대사 아닐까 싶다. 궁금하면 한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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