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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과 탐식

푸드립 4 간장게장

by 신사임당 2017. 3. 8.


사나흘 짧은 기간 피하지방이 무한정 팽창하는 당혹감을 남기는 명절 뒤끝엔 맹렬한 다이어트 의지가 달아오른다. ‘일상식’으로의 복귀까지 불편한 찌뿌둥하고 무거운 뒷맛도 며칠간 이어지게 마련이다. 알면서도 늘상 반복됐던 이같은 명절 뒤 증후군이 올해는 용케 없었다. 깔끔한 마무리를 하고 싶다며 고민하던 친정 엄마의 센스만점 메뉴 선택 덕분이었다.


명절 공식행사의 마지막인 친정 식구들과의 저녁자리. 메뉴는 간장게장이었다. 지금까지 명절의 마지막 밥자리는 집집마다 넉넉히 준비하고 남은 음식들, 시댁과 친지들에게서 얻어온 음식들을 늘어놓고, ‘때려먹는’ 식이었지만 이번의 간장게장은 며칠간 쌓인 느끼함을 깨끗이 잡으며 산뜻한 마무리를 가능하게 해줬다.

달큰하고 진한 간장에 삭힌 간장게장은 ‘밥도둑’이라는 말처럼 입맛을 돋우는 별미중의 별미다. 깊은 감칠맛이 나는 간장에 수차례 잠기는 고통을 견딘 게의 속살이 주는 쫀득하고 탱탱하고 부드러운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몸통을 쪽쪽 빨아먹은 뒤 집게 다리의 껍질 사이로 젓가락을 넣어 마지막 한점까지 놓쳐서는 안된다. 마무리는 게딱지 구석구석을 젓가락으로 싹싹 긁어 살과 알을 그러모은 뒤 밥을 넣고 비벼먹는 것이다. 환장하겠다. 이 정도 쓰면서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간장게장을 먹을 때 함께 먹는 상대의 상태에 꽤 신경이 쓰인다. 알뜰하게 쪽쪽 잘 먹는 상대라면 괜찮지만 게장을 잘 못 먹는 사람일 때는 쓸데없는 오지랖이 발동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사실 간장게장이 주는 내용물의 양과 만족감은 다리를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있다. 불편하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맛난 것이라도 대충 몇번 씹고 던져 버린다. 아, 저기에 남겨진 수많은 살들, 껍질 밖으로 나오지 못한 저 아까운 살들, 저렇게 먹고 던져버릴거면 첨부터 다리는 잘라서 날 주지…, 이런 아쉬움과 원망에 속으로 가슴을 친다. 물론 그 순간에도 내 몫의 게장을 쪽쪽 빨고 있으면서 명백한 남의 것을, 게다가 욕하고 원망까지 하면서 남이 가진 그 살들을 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가 대충 씹다 버린 그 다리를 내가 주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일테고.

경향신문 자료실

경향신문 자료실

소설가 권지예의 <꽃게무덤>에 등장하는 ‘그녀’가 간장게장을 먹는 모습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집요하게 젓가락으로 마지막 살점까지 집어내고, 쭉쭉 빨던 게장의 간장물이 손에서 팔로 흘러내리면 재빨리 혀를 내밀어 핥아 올린다. 눈앞에 간장게장 냄새가 마구 풍기는 듯한 묘사를 보다 보면 젓가락을 들고 살을 파내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 머리 한쪽이 아파올 정도다.

게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그녀’는 말 수가 거의 없지만 게에 관한 이야기는 늘어놓는다. 시기적으로는 초여름 산란기 전의 봄게가 맛있고, 살이 달고 부드러운 맛의 수놈이 암놈보다 훨씬 맛있다고. 비싼 간장게장을 감당하기 어려워 직접 담가먹는다. ‘그녀’의 게 사랑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 기이할 정도의 집착에 가깝다. 이 때문에 처음 느껴졌던 동질감은 어느 순간 모종의 오싹함으로 바뀐다. 한밤중에 이상한 소리에 눈을 뜬 ‘그’ 앞에는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젓가락을 든 채 게 다리의 살을 발라먹는가 하면, ‘그’가 입속에서 대충 빨다 버려둔 게의 다리와 몸통 조각을 다시 가져가 정성들여 파먹기도 한다.

언뜻 보면 괴이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에 대한 코믹한 이야기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쓸쓸하고 아프다. 바닷가에서 자살하려던 여자를 구해낸 남자가 한동안 그녀와 살다가 헤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단편 소설이다. 이들의 이별은 다 파 먹고 텅 빈 채 무덤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게 껍질 같다. 그에게 그녀의 내면은 갑각류의 껍질에 싸여 있는 듯 닿을 수 없이 아득하며, 이 아득함은 그녀가 탐하는 게다리를 대상으로 질투를 느낄 만큼 서글프다.

개인적으로 음식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하면, 권지예와 천운영 두 명의 소설가가 첫 손에 꼽힐만큼 이들의 음식 이야기는 야무지고 풍성하다. 그 부분은 나중에 따로 다뤄보기로 하겠다.

출처  위키피디아

출처 위키피디아

조선시대 문헌에도 나오는 게장은 왕의 밥상에도 올라갔던 귀한 음식이다. 그런데 궁중의 독살설에 종종 등장한 것이 게장이다. 경종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에는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이 게장과 감을 올려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거나, 장희빈이 인현왕후에게 꿀을 듬뿍 섞은 게장을 보내 병세를 악화시켰다는 둥의 이야기가 많은 책들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게장과 감, 게장과 꿀이 서로 상극이라서 맞지 않다는 것인데 일각에선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굳이 시도해보지 않다가 몇년전 게장을 먹은 뒤 단감을 3개 정도 먹었던 적이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의 일종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먹은 뒤 엄청난 복통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밤새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앞서 설명한 소설 주인공은 수게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보통은 봄철에는 산란직전인 암게를, 가을엔 수게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알이 밴 암게는 주로 간장게장을, 수게는 양념게장이나 꽃게찜, 탕으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 탕수육의 부먹, 찍먹처럼 게장 역시 간장, 양념 등으로 취향이 갈리긴 하지만 알배기의 맛과 제조과정 등의 이유로 간장게장이 훨씬 비싼 편이다. 여수나 거제 등지에서 무한리필로 나오는 게장은 돌게장인데 이것도 맛있다. 목포엔 간장게장 정식도 있지만 게장 비빔밥도 별미로 꼽힌다. 나오는 모양새를 보면 별게 없다. 발라낸 게살을 양념해 넓적한 대접에 내놓고 양푼에 밥이 나온다. 뜨거운 밥 위에 게살과 김, 참기름 따위를 함께 넣어 비벼먹는 이 맛 역시 옆에 있던 누가 사라져도 모를 정도다.

간장게장은 수십년 전엔 엄청나게 짜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짠 음식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점점 염도의 정도가 낮아졌다는 것이 오랫동안 간장게장을 즐겨 온 어른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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