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록 뮤지션 한대수씨만큼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달 25~26일 이틀간 LG아트센터에서 그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열립니다.
선후배 동료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도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마스터링 작업중이며 이 앨범은 곧 판매될 예정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뭔가 피부로 느끼고 아는 것보다는
전설적 뮤지션, 무성한 화제의 주인공 정도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도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얼마전 가진 기자간담회 내용과 이번에 나온 그의 앨범, 자전적 책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 등을 살펴보면서
뮤지션 한대수, 인간 한대수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단 이번에 나오는 앨범에 대해 먼저 소개합니다.
앨범 총 프로듀싱은 손무현씨가 맡았습니다.
손무현씨는 80, 90년대에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던 분입니다.
혹시 예전에 슈퍼스타K 시즌 3에 나왔던 손예림양을 기억하시는지.
당시 심사위원이던 이승철씨가 “어린아이인데도 목소리에 블루스가 있다”면서
“어린아이에게 소름끼치기는 처음이다”고 극찬했던 주인공이었죠.
손예림양이 바로 손무현씨의 조카여서 더 화제가 됐었습니다.
손무현씨는 한대수씨의 89년 앨범 <무한대>에 기타리스트로 참여했습니다.
그전까지 동호회 성격의 밴드에서 주로 활동하며 기타를 쳤던 그가
처음으로 프로 기타리스트로 돈을 받고 연주했던 것이 이 <무한대> 작업이었다고 하네요.
당시 세션비를 곡당 3만원 받았다는 것이 손무현씨가 털어놓은 에피소드입니다.
이렇게 두 뮤지션의 인연은 시작됐고 이번에 트리뷰트 앨범을 총 감독하게 됐습니다.
앨범에는 많은 뮤지션들이 참여합니다.
전인권, 강산에, 윤도현, 이상은, 호란, 이현도씨가 각자의 음악적 방법으로 한대수씨의 곡을 재해석했습니다.
쎄시봉 시절 친구였던 조영남씨도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한대수씨 말로는 “조영남씨가 나는 뭐 하나 안시켜주냐고 묻더라”면서
“‘바람과 나’를 선택했는데 조영남 한평생 최고의 곡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김도균 김목경 손무현 신대철 등 4명의 대표적 기타리스트가
불꽃튀는 배틀을 벌이는 곡 ‘런 베이비 런’도 주목할 만합니다.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벌이는 현란한 기교 대결.
귀로 들어도 소름이 돋습니다만 기회가 된다면 꼭 그 모습을 직접 보셔야 합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영상이 공개됐는데 요즘 말로 ‘지릴듯’이라는 표현 있죠.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하루아침’은 뮤지션들과 일반인들이 합창을 합니다.
여기에는 장기하씨도 함께 했습니다.
뭐라도 하려면 항상 문제가 돈이죠.
이번에도 역시 재원마련이 어려워 소셜 펀딩을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었습니다.
또 뮤지션들은 재능기부 형태로 이 작업에 뜻을 보탰습니다.
현재 그는 CBS 라디오 <행복의 나라로>를 진행하고 있는데
트리뷰트 앨범은 처음에 라디오 3.0이라는 한 코너에서 시작했습니다.
매번 한명의 뮤지션을 초대해 그를 통해 한대수의 곡을 재해석하는 형식으로 첫걸음을 떼게 됐고
몇년간의 이 같은 과정이 자연히 앨범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대수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든 앨범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마이러브’라는 곡은 46년전 쎄시봉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썼던 곡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발표하지 않았던 당시의 곡이 이번에 가사를 새롭게 쓰고 매만져 빛을 보게 됐습니다.
곡은 그의 연애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청바지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한번 입으면 벗을 일이 없었지.
잘때도 노래할때도 밥먹을때도 항상 그것만 입고 있다 보니 냄새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쎄시봉) 있던 여자 디제이가 옷을 빨아 주겠대요.
하숙집에 왔는데 방망이질을 하며 내 청바지를 빠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만든 노래예요.”
25, 26일 이틀간 열리는 공연에도 앨범에 참여했던 아티스트들이 모두 무대에 오릅니다.
웬만해선 이같은 스타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도 힘들 법한,
별들의 무대라는 점에서 꼭 볼만한 공연입니다.
전 특히 4명 기타리스트의 배틀. 이게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북하우스에서 출간된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은 한대수씨가 글과 사진을 찍은, 음악과 인생을 엮은 내용입니다.
책은 한숨에 죽 읽힙니다. 그의 인생과 현재를 볼 수 있을만한 내용이 묘사돼 있습니다.
책 표지에 있는 그에 대한 소개는 이렇습니다.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미국 유학을 떠난 아버지가 실종되어 조부모 아래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다. 미국 뉴햄프셔주립대학교 수의학과를 중퇴한 후 뉴욕 인스티튜드 오브 포토그래피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1968년 한국으로 돌아와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해 1974년 1집 <멀고 먼 길>을, 1975년 2집 <고무신>을 발표했다. 그의 노래는 자유에 목말라 있던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큰 충격과 함께 반향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체제전복적인 음악이라는 낙인이 찍혀 모든 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미국 뉴욕으로 다시 건너갔으며 사진가로 일하면서 시쓰고 사진찍고 작곡을 하며 지냈다. 1989년 한국으로 건너와 3집 <무한대>를 발표했으며 이후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15장의 정규앨범, 여러 장의 싱글 앨범을 발표했다.
20년 넘게 함께 살던 명신과 이혼한 이후, 1992년 옥사나 알페로바와 결혼했으며 현재 신촌에서 옥사나와 딸 양호와 함께 살고 있다. CBS FM <손숙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의 진행을 맡고 있다.
2014년에는 한국 싱어송라이터협회의 한국싱어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첫번째 헌액자로 선정됐다.
그의 인생은 음악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지금까지 낸 앨범 가사집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 한줄 한줄 가사는 그의 눈물과 뜨거운 감정과 치열한 고통을 엮어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의 가사집은 그의 인생을 반추하는 자서전과도 같습니다.
인간 한대수를 이해할만한 재미있는 부분들을 책에서 몇부분 뽑아 소개합니다.
1집 <멀고 먼 길> '하루아침'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는 '치마 구경하다가' 이다. 여자의 늘씬한 다리와 몸매는
반 고흐의 그림보다 더 차원 높은 예술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신촌에 산다. 치마 구경하려고. 헤헤. P35
2집 <고무신> '자유의 길'
군대 제대도 했겠다, 4년의 사랑과 시련 끝에 양호한 여인과 결혼도 했겠다,
그 어려운 코리아헤럴드 신문사의 기자로 취직도 했겠다,
김민기가 부른 '바람과 나'와 양희은이 부른 '행복의 나라'가 히트되기 시작했겠다,
바야흐로 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내 첫 앨범 <멀고 먼 길>의 첫곡 '물 좀 주소'가
젊은이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무신> 앨범이 발매된 지 2주만에 프로듀서 엄진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판매금지야. 앨범 모두 회수당했어. 마스터 테이프까지"
그 이후로 방송금지, 공연금지, 앨범 판매 금지.
우리는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간단한 짐을 챙겨 노스웨스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 노래 '자유의 길'을 작곡했다. P 56
'고무신'
김동근 아나운서와 이봉조 악단장이 이끄는 인기 프로 <명랑백화점>에 출연하여
'행복의 나라'로 데뷔했다.
기타치고 하모니카 불고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대중들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남진의'가슴아프게'도 아니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도 아니고
미친 짐승이 긴 머리를 하고 흔들어대는 것이다.
다음날 신문 논평은 "히피 상륙하다. 당신들의 딸을 집에 가둬 놓으세요"였다. P 60~61
3집 <무한대> '나혼자'
<무한대> 앨범은 내가 이혼한 직후 녹음했다.
마흔이 되자 우리는 괴물이라 불리는 권태기를 맞았다. 나도 그녀의 친구인 보니와 열정적인 관계를 가졌고
그녀도 결국 자기 밑에서 일하는 15세 연하 금발의 독일 모델과 사랑에 빠졌다.
복수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엔 남자는 '바람을 피우지만'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방향을 잃었다. 혼자 이탈리아 여행을 갔지만 고독했다.
이 무렵 신세계 음반사 사장에게 연락했더니 윤사장이 말했다.
"한대수, 바로 서울 들어와. 새 앨범 녹음하자고".
그리하여 프로듀서 윤태윤은 당시 최고의 세션 음악인 손무현 김영건 김민기 송홍섭 이병우 등을 참여시켰다.
기분좋게도 김종서가 코러스로 음악계에 데뷔했다.
'나혼자'는 송홍섭씨가 바그너의 탄호이저 분위기가 나게끔 극적으로 편곡했다. P 72~73
4집 <기억의 상실>
이 앨범의 콘셉트는 모든 것을 잊고 싶어하는 나의 심정이었다.
미국 CIA의 세뇌를 당한 물리학자 아버지의 비극도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스무살 때
한국을 떠난 사람이 언어를 완전히 잊어버린단 말인가. P 95
5집 <천사들의 담화>
재즈 피아니스트 이우창이 석달동안 우리 집 응접실에 살았다. 그가 매일 피아노치는 모습을 보고
꼭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즉흥적인 생각이 내 뇌를 가득 채웠다.
"꼭 돈이 있어야 앨범을 만드냐" 하고 도전한 것이다. P111
7집 <이성이 시대 반역의 시대>
나는 또 다시 미국을 침공하겠다는 야심으로 전부 영어로 작곡했다.
롤로는 휘트니 휴스톤의 보디가드 주제곡 'I'll always love you'를 프로듀싱한 명 프로듀서였다.
작업은 재미있었는데 문제는 롤로가 너무 독재적이었다.
나의 의견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앨범이다. P 129
'핏줄'
1991년도 모스크바에 갔을 때 빅터 쵸이의음악을 처음들었다.
강력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KBS 김정태 PD를 통해 그를 한국에 알렸다.
그의 음악은 페레스트로이카 자유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아깝게도 1990년 28살의 이른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KGB? 의문이 많다.
남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은 나로선 처음이다. 러시아인 마누라 옥사나에게 감사하다. P 134
'to Oxana'
4년동안 혼자 고독하게 살다 옥사나를 만났다. 그리고 3개월만에 결혼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굿모닝'하고 말하고 커피를 같이 마시고 대화를 하니 황홀했다. P 146
'구원의 빛'
우리 엄마가 "대수야 , 니 찬송가 하나 작곡해라"하고 부탁을 했다.
사실 우리 할머니는 나를 보고 목사가되라고 권유한 적도 있다. P 155
8집 < Eternal Sorrow>
한국에서 매년 공연을 했지만 막상 앨범을 만들려고 하니 어려웠다.
2000년도에는 H.O.T 그룹이 대세였고 SM같은 기획사가 대중음악의 방향을 이끌어갔다.
"한대수 ? 팔리지도 않는 음악 누가 녹음하나?"
그런데 손무현씨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손무현과 함춘호의 기타, 신연아의 코러스, 그리고 박인영의 스트링 편곡이 뛰어나다.
내가 만든 앨범 중에 사운드가 가장 완벽하다. P161
10집 <상처>
마누라 옥사나는 알코올 홀릭이다. 한번 마시면 보드카 한병, 소주를 마시면 33병.
도무지 감당이 안된다. 하지만 불쌍하다.
전집안이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제는 그냥 마누라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냥 모텔로 도망간다.
어차피 자기 양껏 마실거 싸울 필요도 없다.
이것이 나의 상처다. 해결책이 없고 오직 죽음이 치유다.
"아 그대여. 왜 그리 나에게 상처만 주나" P 208
'No control'
조지 부시 주니어가 이라크를 2주만에 무너뜨렸다. 폭격으로. 세상을 자기 맘대로 조종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첨단 무기라 할지라도 어떻게 세상이 자기 맘대로 되겠는가. 부시대통령에게 노래하는 것이다.
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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