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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배우 서이숙씨를 만났습니다

by 신사임당 2015. 4. 7.

 

 요즘 안방극장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주인공입니다.
 배우 서이숙씨. 연극계에선 26년차의 내공있는 배우인데 아마 TV에선 낯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방송되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그는 극의 중심축을 맡아 시청자들의 감정을 쥐락펴락 하고 있지요.
 제가 그 분을 처음 본 것은 2011년 국립극단 창단 작품 <오이디푸스> 공연에서였습니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 역을 맡았던 그는 당시 공연에서 배우와 배역, 관객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긴장감으로 한몸이 되는게 무엇인지 보여줬던, 정말 좀체 보기 힘든 연극의 맛을 느끼게 해줬던 배우입니다.
 카리스마 그 자체인 듯 보이나 막상 만나고 보니 털털하고 푸근한 배우.
 그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성대 때문에 연극 무대에서 TV로 비중을 많이 옮기셨다고 했는데 지금 목상태는 어떠신가요.
=지금도 조심해야 해요.  무리하게 하면 확실히 목소리가 안나오는 것은 있어요. 그렇지만 스케줄 조절만 잘 하면 연극도 할 수 있죠. 사실 작년에 제가 무리하게 했거든요. 한번 안나올 뻔 하기도 했어요. 초 긴장상태에서 응급조치를 했는데 다행히 잘 넘어갔어요.
 *조심하는 수 밖에 없는건가요?
=조심해야죠. 그때 수술받고 경과를 봤는데 다행히 성대는 안다친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무리만 안하면 괜찮은 것 같아요. TV는 목소리를 크게 낼 일이 없으니까요. 마이크가 잡아주거든요. 저는 그전에 큰 무대 서서 온몸으로 발성해야했어요. 그래도 지난해 2시간 반짜리 무대에서 큰 탈 없었던 것 보면 무탈한것 같아요.
 *오이디푸스는 대단했어요. 그 소름끼치는 절규장면.  
=그때가 아프기 전이었죠. 그때만 해도 소리가 나왔어요. 그런데 결국 앵콜공연은 못했잖아요.
*그때 완전히 뻑 갔어요. 
=저도 느꼈던게 관객들이 숨도 못 쉬고 같이 따라오더라니까요.
*큰 연극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다가 TV 연기를 하려면 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스태프들 앞에서 연기하는거죠. 바로 코앞에서 반사판이나 조명기구를 들고 있는데 스태프들과 함께 호흡하며 가는 맛이 있어요. 그들이 1차 관객인거죠. 그들이 좋다고 하면 역시 시청자들도 좋아해요. 
*아무래도 예전에 비해 인터넷에 많이 노출되실텐데 일일이 보시나요?
 =그럼요 전 다 봐요. 악플도 슬슬 올라오면 신기해요.
*이 드라마가 어느새 나말년의 드라마가 됐어요. 나말년을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사실 우리 기억에 이런 선생님이 한명쯤은 있잖아요. 낯선 인물이 아니라 익숙하죠. 학창시절 어디서나 한번쯤은 봤음직한 그런 선생님. 인터넷 댓글 중에는 실명 거론하면서 지금 잘 살고 있냐는 식으로 묻는 내용들이 있어요. 상처받았던 기억을 푸는거죠. 그런 글이 상당히 많은 걸 보면 나말년같은 선생님이 꽤 많았던 것 같기도 해요. 비극이기도 하죠.
*학창시절 어떠셨나요. 원래 끼가 있었을 것 같아요.
=소풍때나 학예회 때 콩트 쓰고 발표했어요. 그런 재능 끼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을 발전시키고 표출시킬 기회와 방법을 몰랐던거지. 장기자랑하면 맨날 나갔어요. 글 써서 친구들과 배역 정해 연습하고 서영춘 선생님 코미디 흉내내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배드민턴은 어떻게 하신거예요?
=운동신경도 있었어요. 테니스 배드민턴부가 있어서 학교에서 뽑는다고 했죠.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에 가려했는데 그것도 안됐고. 그런데 배드민턴으로 취업이 됐어요. 너무 재미없는 생활이었죠. 우연히 연극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완전히 꽂혔고 그 길로 연극에 발을 디뎠어요.
*그러고보면 극중 현숙이가 굉장히 이해될 것 같아요
=그럼요. 선생님이 그 재능을 인정해줬으면 좋은 한류스타 됐을 수도 있잖아요.  교육자가 얼마나 중요하지. 나말년이 나말년을 통해서 느껴요. (웃음)
*사실 나말년도 그런 교육의 피해자잖아요
=그렇죠. 피해의식이 크죠. 그 역시 담임에게 당하고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복수라고 생각한거죠. 원래 시집살이 독하게 해 본 사람이 더 시키는 것과 같아요.
*실제 성격은 어느쪽에 가까운가요.
=절대 나말련 같은 성격 아니에요. 털털한 편이에요. 제가 배우하면서 가지는 생각이 사람을 사랑하자는 거예요. 그러니 털털해질 수 밖에 없어요. 모든 것을 따뜻하게 바라보려 노력해요. 그래야 배우가 좋은 연기가 나와요. 사람을 따뜻하게 보려다보니 털털해지고 완만해지고 화낼일이 없어요. 그게 배우가 가져야 할 심성과 인성같아요.
*연기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을 본다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따뜻하게 봐야 그 인물을 표현하는 폭이 넓어져요. 오래 배우생활 하기 위해서 내가 가져야 할 모토가 세상을 넓게 보자는 거예요. 그래야 다양한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것이고 내가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전 이성적으로 연기하는 편이거든요. 세상을 넓게 보고 다양한 인물을 경험해야 해요. 결국 연기는 인물이 인물을 통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야 표현되는 인물이 감동을 주고 공감대를 얻을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 맡은 드라마 역할을 보면 상당히 복잡 다단, 복합적인 캐릭터가 많았어요. 특별한 선택 기준이 있나요.
 =제가 드라마는 신인이잖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들어오는 배역을 내가 서이숙화 해서 만들어야 해요. 작은 역할을 내 색깔로 조금씩 만들고 시청자들에게 그게 각인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서이숙의 색깔로 만들어가며 연기를 하는데 그 역할이 조금씩 커지더라고요.
 
*미추에 계셨어요. 주인공을 처음 맡을 때까지 14년이란 시간이 걸렸죠. 참 뜨거울 때이고 유혹도 많았을텐데 우직하게 사셨던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우직해요. 한번 뿌리내리면 잘 안옮겨요  끝장을 보자는 주의거든요. 한우물 파도 10년을 파야 뭐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처음에 저는 3년을 잡았어요. 그땐 3년만 지나면 뭐라도 되겠지 했는데 안그렇잖아요. 그래서 더 있어보자고 버텼어요. 그렇게 3년주기로. 그때마다 갈등과 권태가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아직 자격과 능력이 안키워졌구나 하고 지냈죠. 9년째, 10년째 되니까 힘들더라고요. 이건 뭔가 싶고. 내가 정말 재능이 없구나 하며 더 재능을 키워야겠다고 견뎠어요. 10년을 견뎌도 역할을 안주니까 회의도 오고. 그때가 인간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래도 견뎌냈죠. 결국 허삼관매혈기를 만났을 때가 곰삭았던 것이 터지는 시간이었어요. 나중에 느낀건데 배우라는건 충분히 숙성이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거죠.

*유혹도 있지 않았나요.
=10년이나 삭은게 너무 아까웠죠. 그렇다고 다른데로 간다고 뭐가 확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게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가는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청춘을 거기서 오롯이 보낸거죠. 결혼도 못해보고. 제가 성격이 둔해요. 아파도 아픈걸 늦게 알아요. 둔한게 나쁜 것도 있지만 삶에서 나쁜건 아닌거 같아요.  10년간 뭔가 하다보면 뭔가 나오는 거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끊임없이 노력했거든요. 끊임없이 공연보러다니고. 무지막지하게 영화도 봤어요. 연기도 많이 분석했고. 다른 취미 없이 재미없게 살았어요. 유일한 취미는 등산인데 도 닦으러 다녔죠. 마음의 쓰레기를 버린다고 할까. 체력도 비축되고 산에 가서 정신적 훈련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견뎌지더라고요.

*뒤늦게 국악 공부를 하셨어요.
=극단에서 많은 노력을 해도 길이 안보였죠. 학교를 가야겠다 싶었어요. 이 숨표를 어떻게 쉬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대학을 갈 생각을 한거죠. 마당놀이를 하던 극단이어서 국악을 전공하기로 했어요. 만학도로 기숙사 생활도 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잘 지냈어요. 같이 술먹고 수업듣고. 모든 삶을 참 열심히 살았어요. 대학원도 가서 열심히 논문도 썼고. 그것도 하고 나니 뿌듯해요. 하나하나 뭐가 이뤘다는 것이.
*어머니는 지금도 드라마를 안보시나요.(그의 어머니는 젊어서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와 어머니 두 모녀만이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며 힘든 시간을 헤쳐 왔지요. 심한 고통을 겪었던 탓에 슬픈 내용이 나올까 싶어 드라마도 전혀 안보셨다고 합니다)
=저 나오는 것도 본방사수는 안하세요. 조금 나아졌긴 했지만 거의 안보셔요. 내 딸이 나와서 좋다는 정도지요. 드라마를 보는 습관이 안되니까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제 연기를 좀 편하게 받아들이고는 있는 상황이에요.

*연기하시는걸 보면 남성성과 여성성이 같이 있는 것 같아요. 극단에서 훈련이 많이 되신 것 같은데요.
=연약한데 익숙하지 않아요.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가 컸어요. 누군가 나에게 상처줄까봐 견뎌내고 보호막을 치면서 단단해진거죠. 아프다고 위로받고 이런걸 잘 못해봤어요. 어색하죠. 연약하고 예뻐보이는데 어색한 편이에요.
*여배우의 숙명은 예뻐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전 예뻐보인다는 기준이 처음부터 달랐어요. 잘하는게 예뻐요. 그 역할이 잘 표현되면 예뻐 보여요. 제가 메릴스트립 좋아하는 이유가 그거에요.  그의 외모가 화려하게 예쁘지 않지만 그의 연기가 너무 아름답고 예뻐요.
*예전에 연기를 하면 접신하는 때가 있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어떤건가요?
 =내가 그 인물로 들어가는 거죠. <오이디푸스>를 예로 들면 내가 서이숙인지 이오카스테인지 모르는 순간이 있는거예요. 슬프고 괴로운 연기를 하는데 그 순간 내가 서이숙이 아니라 이오카스테로 하나가 되는 그 순간요. 접신이 된거죠. 그 때는 관객도 숨을 못쉬고 따라와요. 그런데 그런 연기가 매번 되는게 아녜요. 그 쾌감을 느끼고 싶어서 배우를 하는 거예요. 끈을 못 놓는거죠. 그 순간을 위해 평생을 끊임없이 연구해야해요. 20회 정도 공연이라면 2번정도 그런 때가 와요. 드라마 할 때도 한작품에 한 두어번 정도 오지요. 그렇게 어떤 인물을 온 몸으로 만나려다보니 다른데 신경을 쓸 수가 없어요. 그렇게 만나고 나면 어떤것도 두렵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연기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그 무한한 가능성을 놓고 끊임없이 생각하죠. 그걸 생각하면 제 자신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들어요.
 저는 김혜자 선생님 연기를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워요. 툭툭 던지는데 거기에 압축된 힘이 있어요. 그분의 삶이 녹아든거죠. 연기가 그 사람인 듯 아닌듯 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은거죠. 김혜자 선생님은 배우로서의 삶을 넓고 따뜻하게 살아 오신 분이다보니 그런 응집된 힘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들은 어느 누구보다 삶을 잘 살아야 해요.
*요즘 믿고 보는 배우라는 찬사를 많이 받으시더라고요. 이 말이 부담과 족쇄가 될 것 같기도 해요.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밖에 없죠.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 고민거리가 많아요. 잠이 안오죠. 전 배우가 고민한만큼 그 역할에 대한 신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고민한만큼 그 인물이 풍성하게 표현돼요.
*지난 삶을 보면 새옹지마, 대기만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20대, 요즘 젊은 세대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
=워낙에 힘들잖아요. 그래서 말하기가 힘들어요. 게다가 내가 살아온 삶이 전부가 아니니까 더더욱 함부로 말할 수 없죠. 내가 살아온 삶은 나에게 맞게 살아온것일 뿐,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옳은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무엇을 하든지 끈기를 조금 갖는건 필요할 것 같아요.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당장 뭔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은 투자하고 파봐야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보일거라 생각해요.
*TV나 영화로 오는 분들이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는 않잖아요.
 =시간이나 물질적인 부분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긴 해요. 그렇지만 전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정답도 없고 끝도 없어요. 게다가 저 정도 나이가 되면 가르쳐 주는 선생님도 없어요. 스스로 뭔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충전하고 노력해야 해요. 연극을 통해 인물을 분석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관점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연극은 좋은 선생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