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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김제동의 똑똑똑/ 최일구 앵커

by 신사임당 2011. 1. 3.
이 만남이 이뤄진 것은 2010년 12월 24일 이었습니다.
여의도 엠비씨 방송센터에 있는 뉴스데스크 스튜디오였지요.
뉴스에서만 볼 수 있는 이곳은
일반 스튜디오와는 달리
외부인들에겐 꽁꽁 숨겨진 통제된 곳이죠.
연예인, 방청객 들이 수없이 들락거리는
일반 스튜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외부통제 정도나 보안성이 뛰어난 곳입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1988년이던가... 내 귀에 도청장치가 돼 있다는
사람이 스튜디오에 난입해
당시 남자앵커 귀에 대고 소리쳤던
그 방송사고가 떠올랐습니다.
엠비씨 메인 뉴스인 9시 뉴스데스크 시간이었던터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우리 방송사에 길이 기억될 방송사고 중 하나일겁니다.

한편 이날 인터뷰 뒤에는
거나한 막걸리를 곁들인 거나한 점심이 이어졌습니다.
제동씨는 공연 때문에, 전 운전때문에, 동석한 또 다른 분은 술을 원래 못드셔서
각자의 이유 때문에 막걸리 두 주전자는 최앵커께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한 해가 간다. 우리 모두에게 심난했던 한 해가,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한 해가 간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여기 서 있다. 그 끝에서 ‘뉴스감별사’ 혹은 ‘뉴스가공자’로 부를 만한 한 사람을 만났다.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TV뉴스를 재가공해서 해학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웃기는 앵커’ 최일구(50·MBC <주말뉴스데스크> 진행자). 수년 전 그를 처음 볼 때부터 나는 그에게 ‘중독’됐다. 말하자면 ‘일구 폐인’인 셈이다. 동네 슈퍼마켓 아저씨, 택시기사님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듯 친근한 뉴스를 전하는 그를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났다. 이브에 만날 사람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걸 알면서.

- 저, 뉴스 빼놓지 않고 잘 보고 있어요. 주말만 뉴스 하시면 일주일 생활은 어떤가요?

“아유, 일주일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일요일 밤에 다음주에 뵙자고 인사하고 나면 좀 쉬어야지 하는데, 어영부영하다 금방 토요일이고.”


경향신문 자료사진



- 현장에도 직접 나가시던데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가감없이 들려주는 것도 신선해요.

“국민들에게 마이크를 빌려주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어요.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현장성과 역동성을 살리자는 거죠. 연평도 사건 때도, 낙지 파동 때도, SSM이 화두로 떠올랐을 때도 그랬지요. 현장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할 수 있거든요.”

- 전 개인적으로 최 앵커님 팬이라 뉴스는 빼놓지 않고 봐요. 배현진 아나운서 때문에 보는 건 ‘절대’ 아니고요. 하하. 그런데 ‘앵커’와 단순한 뉴스진행자의 차이가 뭔가요? 최 앵커께서 뉴스를 취사선택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도 의견을 제시하지만 취사선택, 편집에 대해서는 책임자가 따로 있지요. 대신 앵커멘트는 제가 직접 다 쓰죠. 뉴스 진행하면서 원칙이 몇가지 있는데 첫째는 앵커멘트를 짧게 하자는 겁니다. 기자들이 다 설명했는데 앵커가 길게 해봐야 소용없죠. 두번째는 유머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주요 뉴스나 첨예한 뉴스에 유머를 섞는 건 쉽지 않지만 중후반 가면서 분위기가 처지고 천편일률적인 느낌이 들 때 있잖아요. 게다가 또 주말이잖아. 그러니까 그때 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보자는 거지.”

- 원래 ‘앵커’의 뜻이 조정경기를 할 때 뒷자리에 앉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래요. 방향을 잡고 무게중심을 잡는…. 저는 해외뉴스 보면 앵커가 기자들하고 농담도 하고, 편하게 팔을 괴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더라고요.

“아니, 그 영어를 다 알아듣는 거요? 난 하나도 안들리는데.”

- 어휴 ‘지적질’이 직업병이시죠?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넘어가세요.

“복잡한 디지털 시대에 유머는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어요. 작년에 제동씨 토크콘서트에 가서 놀랐어요. 이 친구가 앵커하겠다고 나서면 꼼짝없이 밥줄이 끊기겠구나, 생각했죠. 부탁이니 앵커하겠다고 하지 말아요.”

걱정 마시라. 시청자들이 내 얼굴 때문에 뉴스보다가 맘 상하는 일을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여하튼 한마디 유머가 백마디 날선 말보다 더 강하고 긴 울림을 남긴다는 걸 최 앵커가 몸소 보여줬다. 그런데 요즘 정치 뉴스는 딱히 유머를 안 섞어도 될 것 같다. 워낙 뉴스 자체가 코미디가 많으니 원. 개그맨들의 생계가 걱정될 정도다.

- 그런데 일각에선 그런 비판도 있어요. 뉴스가 연성화됐네, 뉴스가 웃기네 이런 말들요.

“내 고민도 그거예요. 장난하냐? 코미디하냐?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마음이 아파요. 인터넷에 뉴스 뜨는 것도 그렇고. 엊그제 인터넷 기사 보니까 ‘최일구 어록만 남고 시청자는 떠났다’고 썼는데 속이 안좋지. 서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뉴스도 아니고, 그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뉴스에 대해 짧게 한마디씩 하는 건데 연성화됐다면 동의하고 싶지 않아요. 뉴스 자체는 고발도 많고, 강한 메시지도 담겨 있는데…. 마치 우리 뉴스가 코미디 뉴스인 양 윤색되는 건 곤란하죠. 얼마 전에도 제가 영구 흉내를 낸 걸로 ‘최일구 뒷수습’이라는 뉴스만 인터넷에 화제가 되더군요. <뉴스데스크>가 무슨 뉴스를 다뤘는지는 부각이 안되고, 자꾸 주객이 전도돼서 나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어요.”

- 내부에서도 비판이 있을 텐데요.

“그렇죠. 기자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희화화시킨다는 문제제기가 있는 게 사실이죠. 인터넷에 기사만 좀 덜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저 시청자들이 알아서 보고 판단하게 해주면 좋겠는데…. 영구이야기, 말레이곰 이야기만 나오니까. 그런 시선은 부담돼요.”

- 그런 걸 ‘유명세’라고 하죠.

“저 개인이야 상관없는데 저로 인해 우리 구성원, 시청자들이 상처입을까 그게 걱정돼요. 앵커로서 각 잡고, 인상 쓰면서 프롬프터만 읽는다면 저도 편해요. 식은 죽 먹기지. 그러나 뉴스도 상품이거든. 쇼핑 채널에서 쇼호스트가 구매를 위해 노력하듯 앵커역할도 그렇다고 봐요. 뉴스가 상품이라면 우리 상품을 더 구매할 수 있게 해야죠. 그렇게 하려면 힘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요. 제동씨도 알겠지만 뉴스 끝나고 나면 밀려오는 외로움, 앵커 참 외로운 자리다 싶어요.”

어찌 모르겠나.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밀려오는 쓸쓸함은 무대에 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최 앵커는 “요새는 분당 실시간 시청률 그래프가 나오기 때문에 뉴스 끝나면 그것 놓고서도 분석회의를 한다”면서 “이기면 좋아서, 지면 속상해서 마시다보니 매일 술”이라고 했다. 요 근래는 공연 때문에 자제했지만 나 역시 좋아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술 마실 이유를 찾지 못해 술을 마신다.

- 아마 그런 게 아닐까요? 기존의 형식을 깰 때 사람들이 느끼는 최초의 거부감 말예요. 주류 뉴스에서 이렇게 하시는 게 처음이니까. 사람들이 느끼는 이중적 기대감도 있고. 앵커와 시청자가 가까웠으면 좋겠다 싶지만 제왕적 카리스마도 기대하고. 이 두가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는 거죠. 재미도 있으면서 한편으로 앵커가 저래도 되나 하는 이중적 마음이죠.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서구 사회는 자유롭잖아요. 우리 역사적 토대를 봤을 때 아직은 ‘톨레랑스’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수백년에 걸쳐 민주화와 근대화를 거쳐온 서구와는 다르죠. 서구에서 통용되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막상 그런 것을 시도하면 ‘저건 뭐냐?’ 이러면서 찬반논쟁이 붙잖아요. 시간이 지나야지. 나중에 방송환경이 달라지면 나같이 재미있게 하는 앵커가 인기를 끌지 않을까?”

- 쇼호스트가 자기 확신을 갖고 물건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최 앵커께서도 MBC 뉴스에 대한 자부심을 전제로 뉴스를 전달하실 텐데요. MBC뉴스만의 차별화, 강점이 뭔가요?

“MBC라는 사풍 자체가 인간미가 있어요. 그래서 뉴스에도 인간미, 사람냄새가 나요.”

- 사람냄새 나는 뉴스에 사람냄새 나는 진행이라…. 하긴 전에 대형마트 때문에 재래시장 찾아가셨을 때 마이크에 대고 얘기하시던 어머님이 생각나네요. TV 속에 앉은 앵커 대신 시장통에 서 있는 앵커가 참 뭉클했어요.

“상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 도쿄 특파원이 일본도 그런 문제가 심하다고 뉴스를 전해온 적이 있어요. 그때 골목상권이 여전히 살아있는 도쿄의 한 지역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 비결이 바로 교류더래요. 지역주민과의 교류 때문에 사람들 역시 편리한 대기업형 마트 대신 골목의 가게를 찾고, 가게는 단골을 유지하면서 상생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대화와 소통이 중요해요. 시청률은 이후 문제고. 저는 시청자들, 뉴스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후회없이 소통하고 싶어요.”

- 하하, 오죽하면 곰 하고도 소통을 시도하셨잖아요. “말레이곰, 도망가지 말레이.” 압권이었어요.

“얼마 전에 편지가 왔어요. 고 1여학생을 둔 엄마라는데 그 분 딸이 제가 진행하는 뉴스를 보면서 팬이 됐대요. 컴퓨터 바탕화면에 동방신기를 지우고 제 사진으로 바꿨다니 말 다했죠. 내용은 그 분 딸이 저를 한번 만나고 싶어하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나주면 안되겠냐고. 전 그 편지 읽으면서 여고생이 안보던 뉴스를 보게 만들었다는 것, 인터넷에 빠져 있던 젊은 층이 뉴스를 보게 만들었다는 데 의미와 보람을 느꼈어요. 그래서 연락했죠. 25일이 토요일이니까 방송국 오시라고. 그랬더니 시간이 안된대요. 내년 1월2일에 오겠다더군요.”

우하하하. 팬을 자처하면서도 좋아하는 대상이 전화까지 했는데 퇴짜를 놓고 시간을 조절하는 호쾌함. 그 ‘스타’에 그 ‘팬’이다.

- 뉴스의 기능, 즉 뉴스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줘야 할까요?

“기본적으론 정보겠죠. 그리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를 하자면 감동과 용기죠. 뉴스 역시 남의 이야기거든. 책을 왜 읽겠어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남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잖아요. 뉴스가 정보만이 아닌 감동과 용기의 이야기를 전해주면 좋겠어요.”

-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시청자 입장에서)에 앉는 거죠? 그게 종종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해요.

“그러게, 왜 그러지? 앉는 기준으로는 남자가 오른쪽, 여자가 왼쪽인데 ‘남성우월주의’라 그런 건가? 돌아오는 주말에 배현진 아나운서랑 자리를 바꿔봐야겠네. 듣고 보니 이유를 모르겠네요.”

- 최 앵커 농담 때문에 배 아나운서가 배를 잡고 쓰러지는 장면도 화제가 됐잖아요. 함께 진행하시는 분이 웃음 참느라 힘들겠어요. 사죄의 말씀 하세요.

“음, 배현진씨는 심성이 곱고 착해서 웃음이 많아요. 원래 착한 사람들이 잘 웃잖아요. 그런데 뭐 그렇게 미안할 것까지야 없어요.”

- 영구 흉내는 즉석에서 하신 건가요?

“아니죠. 혼자 연습하고 리포트 나가는 동안 배현진씨한테도 ‘이거 할 테니 다음 멘트 진행하라’고 했는데 하고 나니 옆에서 말을 안해. 사고 난 줄 알았는데 보니까 웃고 있어요.”

후배 아나운서가 무슨 죄가 있겠나. 눈물을 참는 것보다 웃음을 참는 게 더 힘든데 배 아나운서가 매주 고생이 참 많겠다. 그런데도 후배한테 미안할 것까지야 없다니. 배 아나운서가 안쓰럽다.

- 이런 뉴스 전할 때는 살맛난다 싶은 게 있나요?

“SSM 때문에 정릉시장 갔을 때 상인들 이야기를 전할 때죠. 보람 있었어요. 인터뷰 위주로 3분 넘게 나갔는데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이런 게 진짜 뉴스구나 싶고 공감하는 분들도 많았죠. 우리 좀 먹고 살게 해달라는 아주머니들의 절규엔 나도 울컥해서 눈물이 나더라고. 백성의 소리를 많이 전파해주는 것, 그게 뉴스의 본령이죠.”

그가 말하는 뉴스의 사명은 수돗물 같은 뉴스가 아니라 우물 같은 뉴스일 게다. 문턱을 낮춰 사람들을 끌어안는 뉴스,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뉴스가 세상을 활짝 밝히고 데워주기를 기대해 본다. 그나저나 김제동 결혼 뉴스는 <주말뉴스데스크> ‘자투리 기사’로 안될까? 아님, 뉴스데스크를 통해 공개구혼이라도 해볼까. 제길, 이 겨울은 왜 이리 더 추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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