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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과 탐식

애주가 모여라…슬기로운 주류 박람회 이용법[주식(酒食)탐구생활⑲]

by 신사임당 2023. 7. 15.
최근 몇 년 새 주류 시장은 젊은 세대의 트렌드와 취향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와인이 급부상하는가 싶더니 ‘위스키런‘도 벌어지고, 전통주와 막걸리는 르네상스를 이루는 가운데 하이볼 열풍도 뜨겁다. 취하기보다는 음미하고 즐긴다는 음주 문화가 자리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변화들이다.

음주가 취향과 문화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주류에 관한 최신 정보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주류박람회 역시 즐기고 향유하는 장(場)으로 각광받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련 업계의 비즈니스가 주력인 이벤트였다면 지금은 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축제가 됐다.

6월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해 24일까지 이어지는 서울국제주류&와인 박람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 주류 박람회다. 규모와 명성답게 이미 개막 전 입장권이 동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발을 굴러야 했다.

이번 행사에는 307곳의 업체와 기관이 참가했다. 와인과 위스키, 맥주, 전통주, 사케, RTD, 중국술, 리큐르 등 각종 주류를 비롯해 치즈와 육류 등 안주류와 간식, 술저장고(셀러), 글라스, 디스펜서까지 주류와 관련한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22일 코엑스 주류 박람회에 몰린 인파

 
웬만한 부스마다 시음을 원하는 관람객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전통주와 위스키는 눈에 띄게 젊은 관람객들이 많았다. 같이양조장, C막걸리, 옥수주조, 온지술도가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는 양조장들은 특히 인파가 북적였다. 일본 위스키인 마쓰이 위스키, 미국 위스키 버팔로 트레이스, 아이리시 위스키 버스커 등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인도대사관은 인도 위스키 암룻을 선보이며 관심을 끌었다. 위스키나 보드카뿐 아니라 전통주 리큐르로 만든 하이볼을 맛보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와인은 비교적 생소한 생산국들의 부스가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 중앙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부스는 조지아 와인이었다. 최초의 와인, 와인의 고향이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전통적인 와인 강국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조지아 와인의 인지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조지아는 한국 시장 본격 진입을 목표로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조지아 국립 와인 에이전시 의장과 조지아 농업부차관까지 직접 이번 박람회에 참가해 국내 바이어와 수입사들을 응대했다. 이와 함께 그리스 와인 부스에도 시음을 원하는 관람객의 줄이 이어졌다.

‘와인의 고향’ 조지아 와인 관계자들이 크베브리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내에 익숙한 와인 브랜드는 적었다. 이는 전시회의 성격이 기업보다는 소비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진 데 따른 것이다. 일반적인 비즈니스 중심 박람회는 바이어를 대상으로 한 수출 계약이 중심이 되지만 일반 소비자들의 참여가 많은 박람회는 자국의 와인을 알리는 홍보의 장으로 효과가 높다.

일찌감치 입장권이 동났던 이번 전시회는 입장이 시작되기 전부터 장사진을 이뤘으며 전시 기간 내내 북적였다. 관람객의 대부분은 20, 30대로 보이는 젊은 층이었다. 술을 구입하거나 관련 용품, 굿즈 등을 담은 쇼핑 수레나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이들도 많았다. 상당수의 관람객은 직접 준비해 온 잔을 들고 다니며 시음했다. 이들을 위해 행사장 곳곳에는 잔을 씻을 수 있는 급수대도 마련되어 있었다. 헝가리 토카이 와인 부스 앞에서 만난 한 여성 관람객은 술을 마신 뒤 일일이 휴대전화에 무언가를 적어 넣었다. 그는 “토카이 와인이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평소 마셔보고 싶은 목록에 적어놨다”면서 “하나씩 챙겨서 시음하고 그 느낌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연이은 시음으로 술기운이 올랐기 때문인지 박람회장 구석 한쪽에는 취기나 피로 때문에 쉬고 있는 관람객들의 모습도 꽤 보였다.

다양한 술을 시음하고 있는 모습

 
맛있게 시음하고 재미있게 즐기면 좋은 행사이지만 자칫하면 인파에 휩쓸려 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과한 음주로 피로감만 쌓을 수 있는 것이 주류 박람회다. 다음 달에도 사케박람회와 서울 바앤스피릿쇼 등 여러 주류 박람회가 예정되어 있다. 한국주류수입협회 윤선용 사무국장의 도움말로 알차고 지혜롭게 시음하며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 본다.

△준비물 = 용량이 넉넉한 가방과 시음잔, 물, 간식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현장에서는 시음한 뒤 즉석에서 술을 살수 있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여행용트렁크가 박람회장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음을 위해서는 자주 물을 마셔주는 것이 필요한데 현장에서 따로 물을 구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물을 지참하는 것이 좋다. 주류박람회 고수 중에서는 안줏거리를 마련해 오는 경우도 많다. 삼각김밥이나 떡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부터 소시지, 김부각, 쥐포, 과일 등 안줏거리를 챙겨와서 곁들이는 것이다.

△동선짜기 = 복잡하고 방대한 전시장 전체를 정해진 시간 내에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미리 동선을 짜거나 방문할 곳을 체크해 움직이는 것이 좋다. 홈페이지에는 부스의 배치도, 참가업체의 명단이 나와 있으므로 관심 있는 곳을 체크해 표시해둘 필요가 있다. 관심 있는 주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브랜드를 정리해서 순서를 정해두는 것이 좋다. 윤 국장은 “놀이공원에서 자신이 타고 싶은 놀이기구의 동선과 인파를 고려해 전략을 짜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주류를 파악해 미리 동선을 짠 뒤 시음하는 것이 현명하게 주류박람회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현명한 시음 = 온갖 술을 마셔볼 수 있다는 흥분과 욕심이 일겠지만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부스마다 야금야금 마신다고 해도 워낙 많은 술을 연이어 섞어 먹다 보면 취기가 오르기 일쑤다. 주종을 섞기보다는 동일한 종류를 순차적으로 시음하는 편이 좋다. 고수들은 매번 술을 삼키는 대신 향을 음미하고 입안에서 굴린 뒤 뱉어내는 방식으로 시음회를 즐긴다.

△틈새를 노려라 = 특별히 선호하는 주종이 있거나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이 덜 붐비는 부스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몰리는 부스는 인지도가 높은 술, 혹은 시식용 안주가 마련된 코너다. 또 경품을 내걸고 이벤트를 하는 곳들도 인파로 북적인다. 때문에 도장깨기용 인스타그램 사진을 촬영하거나 경품이 목적이 아니라면 인파가 덜한 곳에서 제대로 시음하고 충분한 설명을 들으며 지식을 쌓는 것이 현명한 관람법이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