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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과 탐식

천상의 맛을 향한 몸부림?[주식(酒食)탐구생활 ⑱]

by 신사임당 2023. 7. 15.
○○○은 백종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빈칸에 들어가는 단어는 뭘까.

외식업계 트렌드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을 가늠한다면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한 가지만 더 힌트를 제시하자면 ‘천상의 맛’이다. 이쯤 되면 누구나 짐작할 법하다. 튀르키예의 전통 유제품 ‘카이막’이다. 맛의 전도사가 ‘천상의 맛’이라는 찬사를 바친 음식. 이를 향한 대중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오죽했을까.

백종원 씨가 방송프로그램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이를 언급했던 것은 2019년이다. 첨단 트렌드와 민감한 취향이 급물살을 이루는 외식, 특히나 디저트 시장이라면 수 차례 유행의 롤러코스터를 타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렀지만 카이막의 인기는 여전하다.

터키이스탄불 문화원 쿠킹 클래스에서 만든 카이막 터키이스탄불문화원 인스타그램

 
 
초창기엔 이태원의 튀르키예 베이커리, 카페, 레스토랑에서 맛을 볼 수 있던 카이막은 현재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에도 카이막을 내건 카페들이 속속 생겨났다. 백화점을 비롯해 마켓컬리, 쿠팡 등 온라인에서도 카이막을 구입할 수 있으며 해외직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호텔가에서는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이 다양한 카이막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한시적으로 카이막을 활용한 디저트 ‘카이막 크림 샌드’를 내놨으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올 연말까지 판매를 이어가기로 했다. 카이막을 포함해 중동식 디저트를 세트로 구성한 ‘아라비안 나이트 세트’, 카이막을 올린 카이막 크림 빙수도 인기 메뉴다. 편의점 GS25가 카이막을 그릭요거트 형태로 구현한 자체브랜드 상품 ‘유어스카이막요거트허니’는 지난달 부동의 매출 1위이던 유명 브랜드 제품을 제치고 요거트류 부문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이 판매하는 카이막 빙수

 
 
서울 서초구에 있는 터키이스탄불 문화원에서는 카이막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튀르키예 전통 공예와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2년 전 카이막 쿠킹 클래스를 개설했다. 처음엔 주 3회 정도 수업을 했으나 수강 문의가 빗발치면서 현재는 주 7회 클래스를 개설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지가 되면 순식간에 마감이 될 만큼 인기가 높다.

카이막은 튀르키예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유목 문화가 지배적인 지역이다 보니 전통적으로 요거트나 치즈 등 유제품이 발달했다. 다양한 유제품 중에서도 카이막은 지방 함량이 높은 물소젖으로 만들어 고소하고 진한 맛, 벨벳 같은 부드러운 질감을 갖고 있다. 갓 짜낸 원유를 약하게 계속 끓여서 위쪽에 농축되는 지방막을 모아서 만든다. 다른 재료나 첨가물 없이 원유만 사용된다.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원유를 찾아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방송에서 백종원 씨가 “10㎏의 원유로 400g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언급했듯 자원, 노동 집약적인 유제품인 셈이다. 때문에 튀르키예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다고는 하나 값싼 식품은 아니다. 유제품 중에서도 가치가 높다 보니 튀르키예에서는 일상적인 관용구나 속담 등의 표현에 카이막이 사용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이 어떤 일을 함께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때 그중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게 된 사람을 가리켜 “카이막을 먹었다”고 한다. 지나치게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왜 혼자서만 카이막을 먹으려고 하느냐”는 식의 핀잔을 한다는 것이다. ‘카이막을 먹으려면 지갑을 확인해야지’라는 표현도 있다. 뭔가 일을 벌이거나 돈을 써야 할 때 미리 셈을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유지방층을 말아 접시에 담아내면 카이막이 완성된다

 
 
 
카이막은 튀르키예 뿐 아니라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 지역과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에도 퍼져 있다. 소나 염소, 양의 젖을 사용하기도 하나 물소젖으로 만든 것을 정석으로 친다. 국내에선 카이막이 디저트로 알려졌지만 튀르키예에서는 주로 아침 식사로 애용한다. 빵과 카이막, 꿀을 섞어 함께 즐긴다.

이태원에 있는 튀르키예식 베이커리 카페 ‘알페도’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카이막을 만들어 왔던 곳이다. 튀르키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곳이지만 방송을 통해 카이막이 알려진 뒤에는 카이막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튀르키예 사람들 사이에서도 현지의 맛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곳이다. 튀르키예 아이스크림 ‘돈두르마’의 본고장 카라만마라슈 출신인 하씨 무스타파 대표는 국내에서 오랫동안 돈두르마를 비롯해 유제품 사업을 해 왔다. 그는 “충북 음성에서 선별된 풀을 먹여 특별 관리하는 원유를 받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에서 사육하는 소가 생산하는 원유와 현지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맛과 성분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현지와 같은 카이막을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 카이막과는 상당히 차이가 나는 유제품들이 카이막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경우도 있어 카이막에 대한 선입견이나 잘못된 고정관념을 주게 될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고 덧붙였다.

알페도의 카이막 알페도 인스타그램

 
 
튀르키예로 날아가 직접 맛을 볼 수 없다면 그나마 오리지널에 가까운 맛으로 호기심을 달래볼밖에. 터키이스탄불 문화원에 카이막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터다. 문화원에서 카이막 쿠킹 클래스를 이끄는 강사 즈렘은 “물소젖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가까운 맛을 내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이곳에서는 2가지 버전을 동시에 가르쳐준다. 첫 번째는 오리지널 카이막에 80~90% 가까운 맛을 내는 버전이다. 재료는 우유(저지방 우유는 안된다)와 생크림. 국내에서 생산되는 우유는 유지방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크림을 넣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두 재료를 넣고 끓이면서 섞어 거품을 계속 만들어준다. 이후 약한 불을 유지하며 우유를 국자로 떠올리며 쏟는 방식으로 수분을 날려준다. 상온에서 5시간 가량 숙성시킨 뒤 냉장고에 넣고 10시간 넘게 두면 된다. 완성까지는 이틀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번거롭고 손도 많이 간다.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수업 시간에는 숙성시키기 직전 상태까지만 만든다. 대신 이전 수업 시간에 숙성시키기 시작한 카이막으로 완성된 맛을 볼 수 있다.

우유를 떠올려 가며 카이막을 만들고 있는 모습

 
 
또 다른 버전은 50~60% 정도로 카이막을 재현한 맛이다. 대신 만드는 방법은 쉽고 간편하다. 우유와 생크림을 사용하는 것은 같으나 전분과 버터를 추가해 끓이면 1시간 안에 뚝딱 완성된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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