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식과 탐식

태어난 해에 수확한 포도로 빚은 와인 생년 빈티지

by 신사임당 2023. 5. 12.
 

자영업을 하는 김미현씨(37)는 2017년, 2019년생 두 딸의 엄마다.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을 지금도 지속하면서 다양한 육아, 교육 정보를 얻고 있는 그가 최근 관심을 갖게 된 일은 두 딸의 ‘생빈’을 구하는 것이다. ‘생빈’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사용되는 말로, ‘생년 빈티지’를 의미한다. 자녀의 생빈이라면 자녀가 태어난 해에 수확한 포도로 빚은 와인이다. 생빈을 구입해 잘 보관해 두었다가 자녀가 성년이 되었을 때 선물하거나 함께 마시면서 특별한 의미와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다. 2017년, 2019년 빈티지 와인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20년 가까이 버틸 와인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값이 좀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고 인지도가 높은 5대 샤토 중 하나로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샤토 마고 2017년 빈티지로 알아보고 있다”면서 “5대 샤토의 2019년 빈티지는 수요가 많은지 구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동기들과 함께 예약해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와인은 역사와 문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는 술이다. 언제, 어느 지역에서, 어떤 품종으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와인인지에 따라 저마다의 서사가 있다. 그중에서도 와인의 나이를 의미하는 빈티지는 와인을 음미하는 이들에겐 추억의 매개이자 소중한 타임캡슐이 된다. 서로가 공유하는 ‘특정한 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자녀를 위한 생년 빈티지를 구입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혼이나 특정한 이벤트가 있던 해의 빈티지 와인을 구입해 이를 기념하기도 한다. 롯데백화점 한희수 소믈리에는 “와인매장을 찾는 고객 중에서 자녀의 생빈을 구입하고자 하는 분들이 최근 1~2년 사이 눈에 띄게 늘었다”면서 “10대가 된 자녀를 둔 분 중에서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구하고 싶다’고 문의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와인의 ‘빈티지’는 그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2022년에 수확한 포도로 빚은 와인에 2022년 빈티지가 붙는 것이다. 이렇게 수확된 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포도의 품종이나 재배한 지역에 따라 발효, 숙성되어 와인으로 완성되는데 시간이 제각기 걸리기 때문이다. 보졸레 누보처럼 포도를 수확한 지 두 달 만에 와인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2~3년 혹은 그 이상 걸려야 완성되는 와인들도 있다.

와인의 품질과 맛을 결정하는 포도의 작황은 기후와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와인의 빈티지를 따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특정한 해의 포도 작황이 좋으면 그만큼 와인의 품질이 좋다는 이야기다. 즉 와인의 구조와 풍미가 좋아 수명이 길고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맛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미국이나 호주 등 신대륙 와인은 기후가 일정한 편이라 빈티지에 구애를 덜 받는 편이지만 기후 변화가 심한 프랑스 보르도 지역이나 이탈리아 북부의 와인은 빈티지가 비교적 주요한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흔히 애호가들 사이에 ‘망빈’이니 ‘그레이트빈’이니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작황이 좋지 않았던 ‘망한 빈티지’나 그 반대인 ‘좋은 빈티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5대 샤토 2005 빈티지. 샤토 오브리옹 샤토 마고 샤토 라투르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왼쪽부터).

 

빈티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맞지만 모든 와인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매년 11월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는 바로 마셔야 한다. 과일 향과 신맛이 특징인 화이트 와인은 3년 이내에, 중저가의 레드 와인은 5년 이내에 마시는 것이 좋다. 빈티지가 좋은 해의 불특정 중저가 와인을 10년, 20년 묵혀 둔다고 풍미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상 빈티지를 따지는 와인은 소수의 고급 와인에 한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마시는 와인이야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되지만 자녀를 위한 ‘생빈’은 적어도 20년은 두어야 한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와인의 수준과 빈티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생빈’을 찾는 소비자들 중 고급 와인의 대명사이자 와인 중의 와인으로 꼽히는 ‘5대 샤토’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5대 샤토라도 빈티지에 따라 차이가 어느 정도 있게 마련이다. 또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소위 ‘망빈’이라고 하더라도 발달한 양조 기술 덕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와인을 생산하는 경우도 많다. 5대 샤토가 아니더라도 고를 수 있는 고품질의 와인 선택지는 많으므로 특정한 제품을 고집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샤토(chateau)는 프랑스어로 성을 의미한다. 포도원을 갖고 있는 양조장 이름, 즉 와인 생산자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5대 샤토는 프랑스 보르도 메도크 지역의 와이너리 중 최고 등급인 1등급 와인을 생산한다고 공인된 곳으로,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라투르, 샤토 마고, 샤토 오브리옹이 이에 해당한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지정(샤토 무통 로칠드는 1973년 승격)되어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주정강화와인 샤토 롱보 1968

 

 

고급 와인을 최적의 시음 시기에 마실 수 있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샤토 마고 2017년산의 경우 100만원이 넘는다. 빈티지나 구입처에 따라 가격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제품이 많다. 이럴 때 대체재로 선택할 만한 것은 주정강화 와인이다. 주정강화 와인은 와인에다 알코올을 추가로 첨가해서 보관력을 높인 와인이다. 포르투갈의 포트, 마데이라, 스페인의 셰리, 프랑스의 뱅 두 나튀렐(VDN) 등이 대표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주정강화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기 때문에 50~60년도 거뜬하게 버틸 수 있는 와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한희수 소믈리에는 “포트와인은 대부분 10년(10 years old), 20년(20 years old)과 같은 식으로 표기되므로 정확한 생년이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마데이라 주스티노스나 샤토 롱보의 VDN 등은 구체적인 연도가 각인되어 있으므로 구입할 때 참고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동의 와인전문점 와인스코프 박경태 대표는 “주정강화 와인은 20만원대에도 구입할 수 있는 제품들이 많아 자신의 환갑용으로 구입하겠다는 분들도 꽤 찾고 있다”면서 “얼마 전에는 배우자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VDN의 대표적인 브랜드 샤토 롱보(1964년 빈티지)를 구입하신 분도 있다”고 말했다.

 
 

어떤 와인을 구입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관법이다. 아무리 좋은 와인을 구입해도 제대로 보관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와인 셀러에 보관하는 것이다. 크기와 용량이 다양하고 상하 칸별 온도조절이나 자외선 차단 등 여러 가지 기능을 구비한 것들이 많으므로 용도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기사 원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