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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통신

'섹스의 아인슈타인'을 아시나요?

by 신사임당 2021. 5. 14.

 ‘섹스의 아인슈타인’(The ‘Einstein of sex‘).
혹자는 웬 어그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솟구치는 호기심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오늘의 약사(略史)’ 따위의 잡학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 우연찮게 발견한 기사가 다음과 같은 제목을 달고 있었다. 
 

 1868: The ‘Einstein of Sex’ Is Born (And Dies).   1868년, 섹스의 아인슈타인이 태어나고 죽다. 
 

출처는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 기사의 주인공은 유대계 독일인 마그누스 허쉬펠드(Magnus Hirschfeld)다. 그는 드물게도 태어난 날과 사망한 날이 같은데 1868년 5월14일이 생일, 1935년 같은 날이 기일이다. 
 

https://www.haaretz.com/jewish/.premium-1868-the-einstein-of-sex-is-born-and-dies-1.5361786

 

1868: The 'Einstein of sex' is born (and dies)

 

www.haaretz.com

 

그는 누구인가. 또 어째서 섹스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을까. 
그는 성의학자(Sexologist)였다. 지금도 성 소수자는 혐오와 핍박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개인의 성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진행중이다. 그가 살았던 19~20세기의 분위기라면 말할 것도 없을 터. 당시 동성애를 비롯해 성소수자들은 치료의 대상이거나 열등하고 비정상적인 존재로 취급됐다.

그런데 그는 개인의 성 정체성은 자연스럽고 타고난 것이라 주장했고,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베를린에 ‘성과학 연구소’를 설립해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많은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개인 성 정체성의 생물학적 원인과 본질을 밝히는데 힘썼다. 이를 위해 그는 주로 원시상태에 있는 오지 지역의 원주민을 만나며 그들의 성 정체성을 연구했고 다른 문화권의 다양한 사람들과도 접촉했다. 그는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성 정체성이 남성, 여성이라는 이분법만으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노력을 지속했는데 당시 얼마나 진보적이고 파격적이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세계를 돌며 강연을 통해 자신의 연구 결과와 생각을 전한 그의 노력이 그를 ‘섹스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별명이 만들어진 정확한 계기는 찾지 못했는데, 1930년대 당시 미국의 언론이 그를 이렇게 지칭했다는 기사가 몇개 있긴 하다. 

마그누스 허쉬펠드    / 위키피디아 

 

그가 살던 20세기 초 독일에는 동성애자들을 처벌하던 형법 175조가 있었다. 그는 이 법을 폐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영향력있는 많은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뜻을 함께 해 줄 것을 호소했다. 여기엔 6000명이 참가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이 함께 서명했다.

하지만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 법은 더욱 강화되었다. 유대인, 성소수자를 ‘박멸’의 대상으로 삼았던 나치정권이 유대인인데다 성소수자를 위해 앞장서 온 그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치 추종자들에 의해서 여러차례 테러를 당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독일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나치는 그의 연구소를 폭파시켰고 그의 독일국적을 박탈했다.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던 중 그를 좀 더 ‘친근’하게 느끼게 만들어준 사실이 있다. 영화 ‘대니쉬 걸’ 주인공 에이나르 베게너를 릴리 엘베로 바꾸는 수술을 해준 의사가 허쉬펠드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남자 화가였던 에이나르 베게너가 어느날 부인이자 동료화가인 게르다의 부탁으로 여장을 하고 모델이  된다. 어쩔 수 없이 부인의 부탁을 들어주던 그는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에이나르 베게너는 선택의 기로에서 여성으로 전환하는 수술을 받고 릴리 엘베가 된다.

 

영화 대니쉬걸   /네이버 영화


 

성의학자로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는 킨제이다. 허쉬펠드는 킨제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킨제이의 명성에 비해 허쉬펠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프로이트 등이 자주 언급되는데, 사실 이 분야에 관한 업적을 따지고 봤을 때 왜 허쉬펠드는 지금껏 잘 언급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만 모르는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무튼...

 

가디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돼 있다. 보수적인 유대인 가문 입장에선 당연히 의사 아들이 ‘섹스’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은 콜레라를 연구하는게 좀 더 의사로서 존경받는 선택 아닐까? 하고 권했으나 그의 답은 이랬다. “무슨 말씀이심? 콜레라가 섹스보다 더 즐거운가요?”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blog/2016/jan/13/magnus-hirschfeld-groundbreaking-sexologist-the-danish-girl-lili-elbe

 

The Danish Girl and the sexologist: a story of sexual pioneers

He was written out of Tom Hooper’s The Danish Girl, but doctor and sexual rights campaigner Magnus Hirschfeld has a legacy even the Nazis couldn’t destroy

www.theguardian.com

 

1999년 독일에서 그의 삶을 그린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제목이 ‘섹스의 아인슈타인’ (The Einstein Of Sex: Life And Work Of Dr. M. Hirschfeld)이다. 같은 해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형법 175조’(Paragraph 175)는 당시 처참했던 ‘동성애자 청소’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형법 175조  /네이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