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업(業)으로 하는 일을 가지고 그 주체를 호명하는 것이 일반적 관습이라면 장민승(39)은 그런 관습에 균열을 내는 사람이다. 국내 미술계에서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는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2014년)을 수상한 설치미술가인 그는 10여년 전에는 가구 디자이너로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를 받았다. 조소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던 스무 살에 영화음악으로 데뷔해 20여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제작했고 록밴드 ‘황신혜 밴드’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지난 10년간 음악, 영상, 전시 등 각종 행사 기획자이자 스태프로 매년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그가 올해는 ‘감독’ 자격으로 영화제에 초청됐다. 10월 8~9일 이틀간 그의 작품 <오버 데어>(over there)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쯤이면 관습적 호칭으로 그를 지칭하기보다는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인쯤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겠다.



<오버 데어>는 여러 해, 여러 계절의 다양한 제주 풍경을 내러티브 없는 순수 영상미로 기록한 영화다. 이 같은 설명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 광활한 산과 대지, 에메랄드빛 바다, 오름을 뒤덮은 갈대나 유채밭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맞닥뜨린 영상은 지금껏 어느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상상하지 못한 제주다. ‘저기’라는 제목처럼 우리가 아는 풍경 너머 저기 어딘가의 제주다.



영화에는 대사도, 자막도, 사람도 없다. 대신 비와 물길, 눈과 바람, 바위와 산, 나무와 풀, 안개와 흙, 구름과 하늘이 담겼다. 영상에 입혀진 것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생명의 근원을 연상케 하는 여성의 목소리뿐이다. <오버 데어>가 보여주는 제주는 무섭고 엄혹한, 신비로우면서도 처연한 공간이다. 우주의 어느 행성인지, 사후 세계인지, 태곳적 어느 시간인지 모를 어떤 곳이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2015년 봄부터 1000일 동안 한라산을 오갔다. 처음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지원을 받아 제주의 자연을 담아본다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영화적 포맷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획했던 기간도 1년 반 정도였다.



“제주에 도착해 만나는 첫 풍경들은 즐겁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워지게 마련이죠. 하지만 들여다볼수록 불행이 길에 널려 있어요. 보는 것이 무척 힘들더라고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지는 외적 고통, 그리고 전통과 공동체가 붕괴되는 내적 고통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하는 수 없이 인적을 피해 중산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죠.” 



설악산에서 빙벽타기 훈련까지 받았지만 입산 금지 기간의 한라산은 위압적 존재였다. 눈 위에 텐트를 친 채 며칠씩 갇혀 있기 일쑤였고 세찬 빗줄기 뒤 피어오르는 안개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생과 사가 오가는, 무수한 다중 우주”에 압도된 그는 ‘조금만 더’ 하는 심정으로 산속에 머물렀고, 18개월의 계획은 40개월로 늘어났다. 



“제가 만난 우주를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없겠더라고요. 다양한 메시지와 요소를 개입시키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막상 그런 우주를 만나고 보니 그건 제가 할 수도, 해서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대사며 자막이며 모두 없애기로 했지요.”




영화를 감상한 누군가는 고대 신화가 펼쳐지는 초자연의 세계를, 또 다른 누군가는 4·3과 같은 아픈 역사를 떠올린다. 평생을 제주에서 보냈다는 노년의 관객은 “차안과 피안을 영상에서 경험했다”는 감상을 그에게 전했다. 그는 “이 작품이 감상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경험과 내면에 결합해 각자의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면서 “영화관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원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영상을 풍성하게 만든 음악은 예술적 동반자이자 오랜 친구인 정재일이 맡았다. 날것의 영상을 정재일에게 건네며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44분짜리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 역시 영상을 44분에 맞춰 편집했다. 각자 완성하고 난 뒤 영상과 음악을 처음으로 맞췄을 뿐인데 마치 처음부터 정교하게 계획한 듯 꼭 들어맞았다. 



그의 아버지는 영화감독 장선우다. 이번 작품의 제목은 “제주의 어원이 전라도에서 부르던 ‘저어그’에서 왔다”는 아버지의 설명에서 착안했다. 



경계를 오가는 예술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은 1997년 장선우 감독의 작품 <나쁜 영화> 음악작업에 참여하면서다. 이후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등의 음악을 만들었다. 한국영화 황금기에 장편 상업영화 음악감독으로 활동했지만 직업으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데 지친 그는 가구 제작으로 방향을 틀었다. 학부 시절 미니멀아트에 빠졌던 그의 감각적 가구 디자인은 관련 업계에서 큰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는 ‘잘나가는’ 가구 디자이너로 머무르지 않는다. 가구를 제작하며 여러 사무실과 장소를 방문하던 중 공간과 가구에 개인 및 사회의 특성이 드러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됐다. 그래서 가구 제작을 중단하고 시작한 작업이 사진이다. <A multi-culture 프로젝트>는 20여개국의 주한대사 집무실을 담은 사진 연작이다. 엄격한 외교 공간에 놓인 가구는 해당 국가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장치였다. 가구 배치와 스타일은 일종의 정치·사회·문화적 증명사진이기도 했다. <수성십경>은 철거를 위해 사람들이 떠나고 텅 빈 ‘옥인 시민아파트’의 창틀을 통해 바라본 인왕산 주변의 풍경을 기록한 작업이었다. 






2011년부터는 정재일과 함께 공간과 음악을 엮는 시도에 나선다. <Spears Par I>은 낡은 철공소만 남은 텅 빈 문래동 거리를, <The Moment>는 태풍이 지나가는 제주 바다의 풍경을, <상림 프로젝트>는 경남 함양 상림숲을 담았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보이스리스>는 영상과 음악, 퍼포먼스를 접목해 사회적

메시지를 세련된 예술적 완성도로 전달한 작품이다.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한 뒤 느낀 우울감과 무기력의 치유적 과정이 창작의 동력이 됐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관심이 생계가 되면 또 다른 곳으로 관심이 움직여 왔다”면서 “이게 나의 언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작업도 그렇고 이전에 해 왔던 작업에서도 ‘장르적 규정’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아요. 굳이 답하자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가능성의 상태인 건데 전 이런 상태가 무척 좋아요.”



여러 장르를 거치며 단련해온 그의 예술적인 결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민감성과 무관하지 않다. 누구나 흔하게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일회용기에 담겨진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일상조차 썩 내키지 않는다는 그는 세상을 휘몰아치는 속도와 편리, 획일성이 불편하다. 자신의 예술적 작업 역시 누군가에게 가 닿는 작은 위로와 배려가 되길 바란다. 



“상업적 영화와 특정한 스타일의 .독립영화만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영화 생태의 현실이거든요. 그런 여건에서 좀 다른 것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평화의 섬 제주, 혹은 갈가리 찢기는 섬 제주라는 양분화된 이미지를 넘어서서 제주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일반 상영관에서 <오버 데어>를 만나는 것은 내년 상반기쯤 가능할 것 같다.




촬영과정에서 알게 됐어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가가 제주 고씨라는 것, 그리고 외가 일가의 묘가 제주 봉개동에 있다는 사실을요.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제주에 오고 싶다고 했다는데 남쪽에서 백두산, 금강산을 가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북한 사람들도 한라산에 대한 갈망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이 작업 시작할 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남북관계의 변화를 보면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