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10월 10일 중국 베이징 자금성 태묘에서는 세계 클래식 팬들의 관심을 끌 만한 공연이 열린다. 중국 지휘자 위룽이 이끄는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연주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곳에서 20년 만에 열리는 클래식 이벤트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룽(Yu Long)은 중국 클래식 음악의 현재를 대표하는 지휘자다. <뉴욕타임스>는 위룽을 중국의 카라얀으로 꼽기도 했다. 


이 공연은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다. 베를린, 하노버, 홍콩,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로 이어지는 론칭 콘서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12월 지휘자 정명훈과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가 무대를 꾸민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도 지휘자 카라얀을 모르기는 쉽지 않다. 그의 연주곡이 실린 음반 재킷 한쪽에 붙어 있는 일명 ‘노란 딱지’ 레이블. 노란색 바탕에 튤립 문장과 글자가 새겨진 세계 최고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이다. 이름은 정확히 몰라도 이 ‘노란 딱지’가 클래식과 동의어라는 인식은 누구나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홈페이지(www.deutsche grammophon.com/kr/)에 접속하면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도이치 그라모폰은 곧 클래식 음악의 역사입니다’라는 문장이다. 여기에 딱히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만큼 도이치 그라모폰(이하 DG)은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신뢰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무엇이 DG의 오늘을 만들었을까. 


에디슨의 라이벌로 알려진 에밀 베를리너는 1898년 독일 하노버에서 회사를 창립했다. 그는 에디슨이 발명한 실린더형 축음기와는 전혀 다른 원반 축음기 ‘그라모폰’의 발명자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12인치 레코드를 개발했고(1907년), 모든 녹음을 마그네틱 테이프로 제작했으며(1946년), LP(1951년)와 CD(1981년)를 도입하는 등 기술 개발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DG의 신뢰와 명성을 쌓은 것은 아티스트의 수준과 연주의 품질이다. 


도이치 그라모폰 120년, 클래식의 역사를 만들다

음악평론가 류태형은 “DG가 클래식을 상징하는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안목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녹음기술 측면에서는 앞선 기술을 가진 레이블도 있었지만 연주를 통해 감동을 주는 아티스트의 진용을 잘 갖추고 유지하는 데 탁월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음반사도 기업인 만큼 경제적 상황에 따라 타협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DG는 철저하고 까다롭게 아티스트의 역량을 판단기준으로 삼아 왔다”고 덧붙였다. 다른 음반사들이 크로스 오버 등으로 확장할 때도 DG는 정통 클래식에 집중했다. 


회사 설립자인 베를리너는 당대의 레코드 프로듀서로 꼽히는 프레드 가이스버그와 손잡으며 아티스트 발굴에 힘을 쏟았다. 20세기 최고의 테너로 꼽히는 엔리코 카루소가 세상에 남긴 첫 음반이 이들에 의해 1902년 녹음됐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사랑의 묘약>)’, ‘이 여자도 저 여자도(<리골레토>)’ 등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를 불렀는데, 이 음반은 100만장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영국의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저서 <클래식 음반세계의 끝>에서 “레코드의 대중적 시장이 시작된 것은 카루소의 아리아 음반 덕분”이라고 썼다. 카루소의 음반이 회사의 기틀이 된 셈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는 등 레코딩을 독자적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는 1920년 최초의 레코딩을 비롯해 199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DG를 통해 음반을 냈다. 




DG는 동서 냉전시대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구소련의 뛰어난 아티스트들을 서방 무대에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지휘자 쿠르트 잔데를링과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피아니스트 스비아토 슬라브 리히테르 등 전설 그 자체가 된 구소련 아티스트들의 연주는 서구 음악 팬들을 충격과 감동,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EMI 등 다른 경쟁 레이블과 비교했을 때 DG의 위상이 독보적이었던 건 아니다. 1950년대 이전에 녹음된 음반 중 명반으로 꼽히는 것들은 EMI, RCA, 콜롬비아, 데카 등 경쟁사들에서 나온 것들이 많다. 심지어 ‘흑역사’로 불릴 만한 시기도 있었다. 나치 집권 당시에는 괴벨스의 연설 테이프, 히틀러 찬가 등이 DG를 통해 나왔다. 



현재의 명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의 계약이다. 베를린 필을 35년간 이끌며 클래식계의 황제로 군림했던 그는 1959년부터 1989년 사망할 때까지 DG를 통해 모두 330종의 음반을 내놓았다.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지휘자로 꼽히는 그는 레이블의 위상을 높인 것은 물론이고 수익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앨범은 사망 후에도 각종 세트로 묶여 히트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작곡가별로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대작들을 내면서 카라얀뿐 아니라 당대의 지휘자들을 끌어모았다. 카라얀의 라이벌로 꼽혔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해 칼 뵘,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다니엘 바렌보임도 DG와 손을 잡고 역작을 남겼다.


현재는 피아니스트 라인업이 특히 화려하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마우리치오 폴리니, 크리스티안 짐머만, 라파우 블레하츠, 엘렌 그리모, 다닐 트리포노프, 유자왕, 조성진 등 거장부터 젊은 연주자까지 다양하다. DG를 소유하고 있는 유니버셜 뮤직 코리아 이용식 이사는 “세계 무대에서 두드러지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면서 “DG와 계약한 젊은 연주자들은 실제로 거장으로 성장했고, 이 같은 역사가 반복돼 소비자들에게도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DG만의 아티스트 발굴 기준은 뭘까. 지난 9월 3일 120주년을 기념해 내한했던 클레멘스 트라우트만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아티스트 선발 기준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장인정신과 상상력”이라며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초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 출신 아티스트들이 많지만 DG를 통해 앨범을 낸 아티스트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은 한국 피아니스트로는 처음으로 DG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한국 아티스트 중 최초로 DG와 녹음을 한 이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다. 1971년 바흐 파르티타, 베토벤 소나타 등을 데뷔 앨범으로 낸 데 이어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핵심 레퍼토리인 브루흐, 멘델스존 협주곡도 이듬해 냈다. 엠마누엘 액스, 첼리스트 요요마와 트리오로 활동을 하는 등 세계 무대를 누볐으나 부상으로 일찍 은퇴하고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지휘자 정명훈은 1990년대부터 DG를 통해 꾸준히 음반을 내고 있다. 장영주, 장한나, 임동혁 등 한국 출신 아티스트들의 등용문이 됐던 레이블은 EMI였다. EMI 역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레이블로 꼽혔지만 경영난 때문에 워너에 합병되면서 현재 ‘워너클래식’이 됐다.




DG는 지난 9월 말 120주년을 기념해 명반 120장을 선별한 박스세트를 발매했다. 19~20세기에 걸쳐 활동했던 아르투어 니키슈부터 조성진에 이르기까지 120년에 걸쳐 대표적인 아티스트를 선정했다. 또 역사적인 레코딩들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자신의 책을 낭독한 육성 파일, 재즈 트럼펫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 초기 녹음본, 성악가 표도르 샬리아핀과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20세기 초반 녹음 등이 포함된다.




한편 음악계에서는 120주년 기념 공연의 시작이 모태가 된 독일이 아닌 중국 베이징인 것을 두고 현재 세계 클래식 시장에서 중국의 위상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0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윤디, 그리고 랑랑 등 스타 피아니스트가 클래식 붐을 촉발시킨 뒤 중국은 십수 년간 클래식 교육 열풍이 불었다. 덕분에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들이 늘어나며 클래식 강국으로 급부상했을 뿐 아니라 공연·음반 시장에서도 큰 손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