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알베르토 몬디를 만난 곳은 서울 송파구 그의 집 근처의 한 카페에서다. 들어가서 그가 시킨 것은 이탈리아인답게 ‘에스프레소’. 난 습관처럼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는 웃으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에 물 타서 안 먹는다”면서 웃었다.
김기남 기자 촬영
2년전 시칠리아에 갔을 때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난 에스프레소를 못 먹으니 어쩔 수 없이 ‘룽고’를 시켰다. 룽고는 에스프레소보다는 긴 시간동안 추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보다는 연하고 아메리카노보다는 진한 맛이다. 사실 아메리카노가 별건가. 그저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 넣어 희석시킨 것일 뿐. 아메리카노라고 하는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커피 맛도 모르는 미국인들이 저런 식으로 물타서 먹는다는, 약간의 비하가 담긴 이름이기도 하다. 아메리카노 찾을 생각은 할 수도 없었고 실제 그렇게 팔지도 않았다. 그저 큰 컵을 달라 해서 뜨거운 물을 부어 먹을 수 밖에.
아무튼 그러면서 알베르토가 “커피와 관련된 말은 죄다 이탈리아어인것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고보니 그랬다. 에스프레소, 룽고, 아메리카노, 아포가토, 카페라테, 마키아토, 카페모카, 카푸치노 등등.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그럴까. 알아봤더니 에스프레소가 처음 탄생한 곳이 이탈리아이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는 원두를 높은 압력으로 짧은 시간에 추출해 내서 진한 향과 농도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커피다. 맛과 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에스프레소 머신도 이곳에서 선도적으로 개발됐다. 그러니 베제라, 훼마, 가찌아, 일렉트라, 이쪼 등 유명 브랜드도 다 이탈리아 제품이다.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물을 넣거나 우유를 넣고 응용하는 각종 커피의 종류 역시 이탈리아어인 것은 당연한 것이고. 현재 시중의 카페 중에서는 핸드드립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에스프레소를 활용해서 판매한다. 그러니 우리가 접하는 커피 용어가 대부분 이탈리아어일 수 밖에.
출처/ 위키피디아
알베르토는 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했는데 국내에도 이탈리아를 생각나게 하는 그런 맛있는 곳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체로 한국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이탈리아 현지보다는 느끼한 편이라고 한다. 미국을 통해 이탈리아 음식이 소개됐기 때문에 소스나 크림처럼 느끼한 양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이탈리아 식당에서 피클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절대 이탈리아식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 중에선 이탈리아 음식이 느끼하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느끼하게 만들어 먹으면서 느끼하다고 해요(웃음). 이탈리아요리는 소스나 다른 양념을 많이 첨가하지 않고 원 재료의 맛을 살리는데 주력해요. 지역마다 요리법이 다양하고 재료도 각양각색인데 공통적인 특징은 간단한 요리법, 그래서 재료의 맛을 잘 살린다는 것이지요.”
또 그가 아쉬움으로 꼽는 것은 수입되지 않는 식재료가 무척 많다는 것이다. 치즈만 해도 400가지가 넘는데 수입되는 것은 10종류도 안되며, 온갖 종류의 말린 고기가 있음에도 수입되는 것은 프로슈토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살균하지 않은 원유로 만든 치즈는 국내에 수입이 금지돼 있었다. 얼마전 뉴스에서 살균하지 않은 원유로 만든 치즈도 수입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유럽에는 살균하지 않은 원유로 만든 치즈의 종류가 어마무시하게 많다. 예전에도 유럽 출신의 몇몇 사람들에게 한국에 왔을 때 식생활 중 아쉬운 점은 치즈가 다양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또 유럽에선 살균하지 않은 원유로 만든 치즈가 훨씬 풍미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었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도 살균하지 않은 우유로 만든 치즈를 예찬하는 대목이 나온다.
미국여자 앤과 프랑스 남자 자크가 파리로 가는 길에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레스토랑에서 자크의 대사 중 이런 게 있다.
“살균 안 한 우유로 만든 살아 있는 건강한 치즈예요. 살균한 미국의 죽은 치즈랑은 다르죠. 그건 그냥 지방 덩어리.” 이런 자크의 치즈 부심에 대해 앤은 화답한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버터랑 치즈를 그렇게 먹는데도 살이 안 찌나 봐요.”
이튿날 두 사람이 리용에서 들른 한 시장의 치즈가게도 어마어마한 종류의 치즈를 자랑하고 있었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 중
미국을 대표하는 어마무시한 열량의 정크푸드하면 바로 오지치즈 후라이, 맥앤치즈 등이 생각나는데 그만큼 미국과 유럽의 대중적인 치즈소비 문화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두서없는 글을 정리하며 알베르토와의 인터뷰를 링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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