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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과 탐식

우리 과일로 만든 한국와인들

by 신사임당 2018. 3. 6.

 

 

 

시쳇말로 ‘있어빌러티’의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식탁에 오르는 음료는 와인이다. 하지만 왠지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마시면 그 뿐인, 그저 포도로 만든 술인데 왜 그리 격식 갖고 따지는 것은 많은지, 이런 저런 의미는 부여하는지 모르겠다. 음식과 함께 곁들일 때도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다 보면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


좀 편하면서도 색다른 멋이 나는, 동시에 우리 음식과 맛있게 어울리는 술 없을까. 그럴 때 한국와인은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우리 땅에서 나는 과실로 만든 와인이라 수입산 와인과는 풍미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와인은 통칭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당도가 높고 껍질이 두꺼운 품종의 포도가 많이 나는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와인을 담가왔다. 국내에서 재배한 포도로도 와인을 생산한다. 유럽 등 오랫동안 와인을 생산해 온 곳에서는 블루베리나 사과 등 다른 과실로 와인을 빚기도 하지만 대개는 포도를 사용한다. 그런데 국내에선 외국에 비해 포도가 아닌 다른 과실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 거봉이나 캠벨 등 일부 품종을 제외하고 포도의 당도가 외국처럼 높지 않은데다 당분이 높은 다른 과실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150개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각종 과일 와인은 450여종으로, 이중 40%가 포도가 아닌 과일류로 만들어진다. 보통 술을 많이 담그는 복분자나 매실 뿐 아니라 사과, 귤, 딸기, 복분자, 다래, 감, 비파, 무화과, 복숭아까지도 와인이 된다.

과일을 가지고 만든 술이면 다 와인이라고 부르는걸까. 국내 주세법상 와인을 별도로 규정한 항목은 없다. ‘과실주’로 통칭된다. 국제 기준으로 따졌을 때 엄밀히 와인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발효·숙성 과정을 거친 술이라야 한다. 흔히 가정에서 과일에 주정을 섞어 만드는, 시골 할머니집 시렁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들은 과실주로 불릴 수 있으나 와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와인은 제조기간과 생산 비용도 일반적인 과실주에 비해 많이 든다.

국산 와인을 발굴·판매하는 광명시 산하 광명동굴 와인연구소 소장 최정욱 소믈리에는 “전세계적으로 와인 앞에 다른 이름을 붙일 때는 포도로 만드는 와인과 똑같은 방법으로 발효를 해야 하고, 주원료가 과실이어야 하며, 자연적으로 발효시킨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 와인의 역사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특산 과실의 풍미를 살린 좋은 제품들이 생산된다”면서 “국제 와인 품평회에서도 조금씩 존재감을 알려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가오는 설을 맞아 기름지고 양념이 많이 사용되는 한식과 잘 어울릴만한 한국 와인을 살펴본다. 가격대도 대체로 2만~3만원선이라 부담없는 편이다. 최정욱 소장, 그리고 전통주 전문 온라인 콘텐츠인 대동여주도·니술냉가이드를 운영하는 이지민 대표의 도움말로 꼽아봤다.

지난 몇년간 정부가 주관한 주요 행사에서 종종 선택됐던 술은 감와인이다. 감이 많이 나는 경북 청도의 반시로 만들어진 브랜드 ‘감그린’은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 만찬주로 사용되는 것을 비롯해 대통령 취임식 건배주로도 몇차례 선정됐다. 레드와인보다 타닌의 함량이 많아 떫은 맛이 나는데 한식에 두루 잘 어울린다. 일본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와인으로 꼽힌다. 재래품종인 두리감이 많이 나는 충남 논산 양촌면에선 ‘추시’라는 브랜드의 감와인을 생산한다. 감와인은 명절 음식 중 전이나 볶음류처럼 기름기가 많은 음식, 혹은 기름기 많은 생선회와도 잘 맞는다.

사과와인은 충남 예산에서 주로 생산된다. ‘충남예산 추사’가 대표적인 브랜드로, 광명동굴에서 연간 가장 많이 판매되는 와인이다. ‘추사’라는 이름은 추사 김정희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따왔으며 가을사과라는 의미까지 더했다. 물과 알콜을 첨가하지 않고 한달간 저온 발효와 1년간의 숙성을 거쳐 사과의 진한 단맛이 남아 있다. 예산에서 주로 재배되는 사과 품종은 부사의 일종인 기꾸8, 피덱스, 후브락스, 그리고 감홍, 자홍 등 5가지다.

5가지 맛을 내는 과실 오미자로 만든 와인은 나물류와 잘 어울린다. 경북 문경에서 생산되는 ‘오미로제 스파클링’은 국내 최고의 양조장인으로 꼽히는 이종기 명인이 2011년 내놨다. 세계 최초로 출시한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으로, 프랑스에도 수출한다. ‘오미로제’(Omy Rose)라는 이름은 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지어준 것이다. 나만의 와인, 오미자로 만든 와인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2015년 대구에서 열렸던 국제물포럼에서 이 와인이 공식만찬주로 선정됐다.


전국 자두생산량의 23%를 차지하는 경북 김천에서는 자두로 와인을 빚는다. 피자두는 레드와인, 후무사는 화이트와인의 재료가 된다. 포도로 만든 일반 와인처럼 자두와인 역시 레드는 육류, 화이트는 해산물과 조화를 이룬다.

경남 사천에서 생산되는 참다래로 만든 참다래와인은 한식과 양식에 두루 곁들이기 좋다. 하동의 매실와인, 전북 전주의 무화과와인, 부안의 오디와인, 전남 완도의 비파와인도 큰 이질감 없이 한식 식탁에 잘 어울린다.

국산 포도로 만든 와인 중에서는 충북 영동의 ‘컨츄리와인 캠벨’, 안산 대부도에서 나는 ‘그랑꼬또 로제와인’, 충남 천안의 거봉으로 만드는 ‘두레앙’ 등이 인기가 많다. 떡볶이처럼 고추장 양념이 강한 음식들과도 궁합이 맞다.

한편 국산와인 중 수입산과 겨룰만한 제품으로 최 소장은 경북 영주에서 생산되는 ‘소백산와인’을 추천했다. 그는 “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서양식 정찬에 잘 어울리고 품질이 좋아 소믈리에들에게 많이 추천한다”고 말했다.

 

 

 

<한국와인 메카 광명동굴>

광명동굴은 ‘한국와인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동굴 내부에 ‘와인동굴’이라 불리는 공간에는 전국 60여개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200여종의 와인을 구경할 수 있다. 각지에서 선별한 와인을 이곳에서 시음하거나 구입할 수 있다. 한국와인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무주, 청도, 사천 등 지자체도 해당 지역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시음·판매하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광명동굴은 전국의 와인생산 농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2015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13만병 정도다.

광명동굴은 경기 광명시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이다. 2010년만 해도 광명시는 관광과는 큰 상관이 없던 도시였다. 연간 관광객을 집계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는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도시가 됐다. 이는 전적으로 광명동굴 덕분이다. 내부산책로, 폭포, 아쿠아리움, 조형물, 공연장, 와인동굴 등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광명동굴은 현재 연간 140만명이 찾는다. 이는 민속촌이나 캐러비언베이와도 비슷한 수준이다.

광명동굴은 일제강점기이던 1912년 문을 열어 금, 은, 동, 아연을 캐내던 수도권 최대 금속광산이었다. 하지만 1972년 폐경되면서 이후에는 새우젓 저장고로나 활용되던 애물단지였다. 한동안 방치돼 있던 동굴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지방선거부터다. 양기대 시장이 출마하멵서 광명동굴 개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3년 소규모 공연장을 동굴내에 만들면서 시민들에게 선을 보였고, 추가로 개발해 2015년 봄부터 본격적인 유료 관광지로 변신했다. 내부에 와인동굴이 꾸며진 것도 이때다.

와인동굴은 양시장의 아이디어였다. 동굴 내부의 온도가 연간 12~13도로 일정하기 때문에 이전에 새우젓 저장고로 사용됐다는데 착안한 양시장은 농가에서 제조하는 한국와인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최정욱 소장은 당시 지자체 최초의 소믈리에 공채를 통해 선발됐다.


현재 개발·단장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된 광명동굴 구간은 2㎞ 정도다. 이중 와인동굴은 194m 정도로 와인을 시음하고 판매하는 공간과 와인 셀러, 와인 레스토랑이 마련돼 있다. 광명동굴의 원래 길이는 7.8㎞이나 실제 내부 공간은 2배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
 

2018년 2월1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