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숙원을 이뤘다. ‘1000만 영화’ 배출. 극장가에 눈물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신과 함께>는 2018년 첫 1000만 관객 동원 작품이다. 1000만 영화는 2003년 ‘실미도’ 이래 지금까지 스무 작품이나 나왔다. 그러니 관객들 입장에서는 ‘신과 함께’의 1000만 영화 등극이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업계에서는 꽤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 영화시장을 주도하는 주체는 투자·배급사다. 시나리오를 선별해 제작, 개봉까지의 전 공정을 관리한다. 막대한 자금력과 선구안을 갖고 영화산업을 이끄는 셈이다. 국내 영화계 빅4로 불리는 메이저 투자·배급사는 CJ, 쇼박스, 롯데, NEW다. ‘1000만 영화’가 좋은 영화의 절대적 기준이나 훈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투자·배급사 입장에서 1000만 영화를 배출했다는 것은 산업 주체로서 역량을 인정 받는 지표로 통해 왔다.
빅4 중 지금까지 1000만 영화를 한 편도 배출하지 못한 곳은 롯데였다. CJ와 쇼박스가 각각 5편씩을 냈고, 2008년 설립돼 롯데보다 늦게 출발한 NEW도 3편이라는 성과를 냈기 때문에 롯데는 오랫동안 속앓이를 해야 했다.
롯데는 2004년 개봉한 <나두야 간다>로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 영화시장은 오리온그룹 계열이던 쇼박스와 CJ그룹 계열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양분하고 있었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면서 국내 기업들 사이에 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달아오르던 상황이었다. 이미 전국 각지 롯데백화점 내에 상영관인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던 롯데는 이 같은 분위기에서 영화산업에 동참했다.
롯데 엔터테인먼트가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 것은 2007년 <우아한 세계>부터다. 하지만 보수적인 롯데그룹의 경영스타일은 영화산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롯데는 기존 투자·배급사들이 보여주던 과단성이나 적극성이 부족했다. 업계 관행과는 달리 일반 제조업처럼 철저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식이었다. 영화계에 오래 종사한 관계자는 “되는 시나리오다 싶으면 선급금을 크게 지르는 등 치열하고 공격적인 콘텐츠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영화업계인데, 롯데 엔터테인먼트는 콘텐츠 확보보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는 편이었다”면서 “자연히 다른 투자·배급사에 비해 좋은 시나리오를 확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뿐 아니라 인력 운용에서도 기존 회사와는 달랐다. 엔터테인먼트산업은 어떤 분야보다도 오랜 경험과 네트워크, 특유의 감을 가진 인적 자원이 갖춰져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시나리오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이들은 대부분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편이지만 롯데 엔터테인먼트는 일반적인 기업의 인사행태에 따라 상대적으로 담당자의 이동이 잦은 편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제작사 입장에선 CJ나 쇼박스를 거치지 않고 롯데로 먼저 갈 이유가 없었다”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제작자들 중에서는 롯데가 자사의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인다면 불안해 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00만 관객까지는 아니더라도 흥행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명 감독, 대규모 투자금과 마케팅 능력 등이 고루 필요하다”면서 “그간 롯데가 투자한 작품들 상당수가 신인감독의 작품인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투자스타일은 대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중박’ 영화는 꾸준히 냈다. 또 신인감독과 주로 작업하다보니 예상 외의 흥행작을 보여주면서 내실을 쌓았다. 2008년 개봉한 <과속 스캔들>을 시작으로 <7급공무원>(2009년), <최종병기 활>(2011년), <건축학개론>(2012년), <더 테러 라이브>(2013년)를 배출했고, 2014년 개봉한 <해적>은 866만명을 모으며 롯데의 최고 흥행작이 됐다.
영화 마케팅사인 ‘영화인’ 신유경 대표는 “영화제작 관행상 기존에 구축돼 있는 시스템과 커넥션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편이라 후발주자인 롯데 입장에선 불리했을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개성있는 콘텐츠를 찾는 쪽으로 노하우가 쌓였고 그 결과 ‘해적’ 같은 작품이 나오면서 과감한 투자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 엔터테인먼트는 그해부터 <역린> <협녀> 등 1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작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두 편으로 제작되는 <신과 함께>(2편은 올 여름 개봉)에 350억원의 거액을 투자키로 한 것도 2015년이었다. 당시 이 작품은 CJ가 투자를 검토했다가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상당한 화제가 됐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대적 투자에 나선 이후 롯데는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대작이던 <역린> <협녀>가 흥행에 실패했다. 2015년부터 2016년 말까지 롯데가 내놓은 작품 중 흥행에 성공한 것은 <덕혜옹주>(550만명)가 유일했다.
반전은 지난해 시작됐다. 관련업계에서 ‘무조건 안된다’고 했던 영화 <해빙>을 시작으로 <보안관> <청년경찰> <아이 캔 스피크>까지 연달아 흥행기록을 썼다. 그리고 지난해 말 개봉한 <신과 함께>는 2018년 첫 1000만 관객 영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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