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을 못 먹으면 신부가 될 수 없다? 과거 천주교계에서 이런 농담 섞인 이야기가 돌았던 적이 있다. 또 신부님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연상됐던 것 역시 보신탕이었다. 신부님과 보신탕. 언뜻 어울려 보이지 않는 조합이 탄생한 것은 어떤 배경에서였을까. 교계에서는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에 큰 업적을 남긴 다블뤼 주교의 에피소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입국해 병인박해로 순교할 때까지 21년간을 조선 땅에서 사목했다. 프랑스 상류층에서 자라 열악한 조선의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던 그는 초기 몇 년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면서 위장장애, 영양실조로 고생했다. 주교의 건강을 걱정한 당시 신도들은 원기회복을 위해 집에서 기르던 황구를 잡아 대접했다. 기력을 차리고 난 뒤 다블뤼 주교는 자신이 먹은 ‘음식’의 정체를 알고 경악했지만 조선의 전통적 음식문화임을 알고 이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집에서 기르던 황구를 잡아 보신용으로 먹는 것은 한민족의 오랜 전통이었다. 조선의 풍속을 서술한 <동국세시기>에는 삼복 때에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개장’이라고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소고기를 삶아 찢어 끓인 육개장은 ‘개장’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씨는 <음식전쟁 문화전쟁>이라는 책에서 “소와 돼지를 잡아먹기는 힘들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노동에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조상들이 먹었던 음식이 개장국”이라고 쓰고 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가난한 농민들 입장에선 기르던 개를 잡는 것이 신부님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자 최고의 대접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문화 때문에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보신탕을 먹는 것을 한국식 음식문화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2007년 선종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매기석(피에르 메시니) 신부는 20년 넘게 한국에 머무르며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는 일에 헌신했고 “죽어서 한국의 흙이라도 되고 싶다”고 할 정도로 한국에 많은 애정을 가졌다. 생전 그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합덕성당 김성태 주임신부는 “신부님이 처음 한국에 발령을 받을 때 ‘한국 사람이 되려면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시더라”면서 “첫 부임지 안동에서 사람들이 보신탕을 대접하는데 몇차례나 토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적응하게 되셨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어 “한국에 오신 다른 프랑스인 신부님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더라”면서 “예전엔 수도원이나 신학교에서 식용을 위해 개를 키우는 곳이 꽤 있었는데 한국적 식문화 전통에다 이 같은 외부적 인식이 결합돼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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