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1인 미디어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장 활발히 생산·유통되는 정보는 ‘핫 플레이스’다. 맛집, 카페, 독특한 물품을 판매하는 매장, 예쁜 공간 등 지금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최근 몇 달 새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한 사진 중 꽤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전시장, 카페, 레스토랑, 상점 등이 한데 모여 도심형 ‘문화 리조트’를 표방하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개성있는 콘셉트로 무장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들이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핫 플레이스’들, 그 중 ‘명소’를 꿈꾸는 곳들을 들여다봤다.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성수동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이다. 산업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70~80년대 골목길에 독창적인 스타일의 ‘가게’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힙스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수동 입구에 자리잡은 12층 규모의 우란문화재단. 10월 24일 문을 연 이 건물은 성수동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처럼 느껴진다. 콘크리트 매스로 쌓아 올려진 건축물은 사방을 둘러 창과 테라스가 배치돼 있다. 마치 재미있게 쌓아 올린 블록을 보는 것 같다. 때문에 건물의 모습을 앵글에 담으려 카메라를 번쩍 치켜드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건물은 전시 및 공연장, 예술가 레지던시, 카페, 펍 등으로 구성돼 있다. 건물 1~3층에는 5개의 문화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흔히 공연장, 전시장 등 장르에 따라 공간의 이름이 붙게 마련이지만 이곳은 우란 1경(景)부터 우란 5경이라는 이름이 차례로 붙어 있다. 강정모 사무국장은 “전시장, 공연장 등으로 기능적 구획을 하지 않은 것은 각 공간이 매번 새롭게 해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다양한 장르의 창작활동이 펼쳐지고, 대중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열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3월까지 오픈을 기념하는 푸짐한 문화행사가 마련돼 있다. 현재 우란 1경에서는 <몸소>라는 타이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며, 우란 2경에서는 11월 12일까지 10명의 여성 배우들이 출연해 격정적인 안무와 노래를 선보이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공연된다.


1층에 입점해 있는 카페 도렐은 스케이트 보드를 콘셉트로 한 카페다. 스케이트 보드를 활용해 내부를 장식했을 뿐 아니라 메뉴도 스케이드 보드의 바퀴 모양을 본떠 미니도넛 ‘베어링’을 내놨다. 제주에 본점을 둔 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너티 클라우드. 생크림과 우유, 에스프레소가 어우러져 달콤하고 쌉쌀한 맛을 차례로 느낄 수 있다.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보기 힘든 독특하고 색다른 맛의커피다. 12층에 자리잡은 스피닝 울프는 클럽 같은 느낌의 펍이다. 성수동 일대에 수제맥주 전문점은 있지만 펍은 드문 편이다. 트인 창으로 보이는 야경이 좋다. 




2014년 설립된 우란문화재단은 그동안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펼쳐 왔다. 대학로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연극 <요정의 왕>은 이곳에서 개발했던 작품들이다. 재단을 이끄는 최기원 이사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우란’은 SK그룹 최종현 전 회장의 부인 고 박계희 여사의 호다. 




**한남동 사운즈 한남 



올 봄 문을 연 이곳은 발 빠르고 눈 밝은 사람 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최근 몇 달간 인스타그램 피드를 폭발적으로 달궜던 곳이다.


공간으로서의 ‘사운즈 한남’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좁은 골목길을 산책하듯 내려가다 이어지는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뿐인데,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에 들어선 것 같다. 여전히 골목길이 이어지고 광장이 나타나고 계단이 연결되고 있는데도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공간건축의 묘미를 잘 살렸다. 


카카오 IX가 만든 곳으로, 600평 규모의 대지에 5개의 건물이 들어서서 골목 안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가나아트센터 전시관인 가나아트 한남, 세계 3대 경매사 필립스 한국 사무소와 함께 카페 콰르텟, 레스토랑 일호식·세컨드키친, 서점 스틸북스, 화장품매장, 안경점, 꽃집 등이 있다.




스틸북스는 4개층이 테마별로 꾸며져 있는 큐레이션형 서점이다. 1층은 잡지, 2층은 생활과 일, 3층은 예술과 디자인, 4층은 사유와 사람 등으로 카테고리가 고정돼 있고 두 달에 한 번씩 전체 테마가 변경된다. 10월에는 ‘쓰레기·낭비의 시대’라는 타이틀로 친환경 서적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11~12월 두 달 동안은 ‘서울’을 테마로 다양한 책을 소개한다. 


1층에 있는 퓨전 한식당 ‘일호식’은 예약이 쉽지 않은 곳이다. 카페 콰르텟에서 파는 ‘라이언 에그번’은 카카오 프렌즈의 인기 캐릭터 라이언의 얼굴이 찍혀 있는 빵이다. 이 제품은 출시된 지 오래지 않아 최근 인스타그램에 자주 오르는 사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카카오 IX 이수경 파트장은 “먹고 마시고 배우고 습득하고 경험하고 소비하는 일상의 영역을 한 공간에서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피크닉(piknic) 




피크닉이 유명해진 것은 얼마 전 끝난 전시회 ‘류이치 사카모토: Life, Life’ 때문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영화 <마지막 황제>로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세계적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다. 


이곳은 지난 5월 전시기획사 글린트가 재단장해 문을 열었다. 원래는 1970년대에 지어진 제약회사 건물이었다. 주황색 빛깔의 이 건물은 사운즈 한남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했다. 소월길 안쪽 깊숙이 있는 이곳은 처음 가는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 작은 간판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타나는데, 그 뒤로 언덕 아래 폭 파묻히듯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층에 있는 카페 피크닉은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타파스 바로 운영된다. 3층에는 미슐랭 1스타를 받은 프렌치 레스토랑 제로 컴플렉스가 있다. 서래마을에 있다가 피크닉이 문을 열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현재 피크닉이 준비 중인 전시는 11월 15일부터 열릴 <재스퍼 모리슨: THINGNESS>이다. 재스퍼 모리슨은 영국 출신의 산업디자이너로 필기구 브랜드 라미의 ‘아이온’, 유럽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비트라의 ‘할’ 체어 등을 디자인했으며 삼성전자와 협력해 휴대폰을 디자인했다. 실용적이고 간결한 제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그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디자이너다. 그의 대표작이 소개될 예정이라 기대를 모으는 전시로 꼽힌다. 




**용산 아모레퍼시픽 사옥 




지난해 12월 완공된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멀리서 봤을 때 달항아리를 연상시키는 건물이다. 영국 출신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이곳은 회사 건물이기는 하지만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는 지역사회에 개방된 문화공간이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3층까지 시원하게 트인 천장이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돼 있다. 


1층에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있으며 세계 주요 미술관의 전시도록을 모아 놓은 라이브러리 ‘apLAP’, 카페가 있다. 2층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전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아모레 스토어, 미니박물관이 있으며 지하에는 10여개의 식음료 매장, 아트숍, 네일숍 등이 있다.




현재 1층 로비에서는 ‘설화문화전’이 열리고 있다. 주제가 ‘금박’이기 때문에 곳곳에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전통예술인 금박을 무형문화재 장인과 현대미술 작가들이 재해석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테마파크에 온 것처럼 번쩍이는 회전목마가 있어 시선을 끈다. 흥미로운 볼거리에다 게임을 하고 상품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체험공간들도 마련돼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설화문화전은 12월 14일까지 열린다. 




**‘신상’ 공간들 


명동 플라스크는 서촌에 있던 편집숍이 올해 5월 남산으로 옮겨 새단장을 한 곳이다. 1층에서는 생활용품과 문구, 화장품, 책 등을 판매한다. 일본 문구 브랜드 델포닉스, 영국 생활용품 브랜드 프라이스 앤 켄싱턴, 스웨덴 천연화장품 브랜드 라 브루켓 등이 입점해 있다. 2층 카페는 호주의 스페셜티 커피인 ‘문샤인 커피’가 자리잡았다. 3층에는 남자들을 위한 철물점으로 알려진 ‘베이거 하드웨어’가 있다. 강연이나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도 있으며 대관도 해준다. 4~6층에는 레스토랑과 인테리어 숍이 연말까지 차례로 입점할 예정이다.





한남동 구슬모아당구장 위층에 있는 ‘온다빌레’는 오은 시인과 박준우 셰프가 합작해 운영하는 재기발랄한 곳이다. ‘온다’는 이탈리아어로 파도, ‘아빌레’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입구에 있는 서가에는 분기별로 주제를 달리한 책이 전시·판매되며 내부는 레스토랑과 카페, 바, 공연무대 등 다양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어도 좋고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소규모 강연이나 모임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오은 시인은 “나만의 색깔을 찾고 싶은 분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찾아와서 마음속의 파도를 일깨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