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일반적으로 산부인과에서 분만하는 자세는 의사의 편의를 위해서라는 비판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력의 힘을 빌어 쪼그려 앉는 대신 누운 자세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산모에게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자세가 ‘정석’이 된 것은 루이 14세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전 읽은 책 <메스를 잡다>는 네덜란드 외과의사가 쓴 책인데 수술의 역사로 본 세계사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흥미롭게 술술 넘어갈 뿐 아니라 전혀 몰랐던, 의외의 사실들이 많아 몇가지를 소개한다. 




 ***여성의 출산 방식 = "당시에 여성들은 아이를 낳을 때 바닥에 쪼그려 앉아 중력의 도움을 받으며 자연적인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루이 14세의 정부였던 루이즈 드 라 발리에가 왕의 서자를 낳을 때 아들이 태어나는 광경이 잘 보이지 않자 왕은 산모에게 등을 대고 누워서 다리를 활짝 벌리도록 했다. 자신이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시킨 일이었는데 불쌍한 산모보다는 자신을 더 생각한 것이다. 등을 대고 누워서 아이를 낳는 일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러한 자세는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성들은 그와 같은 자세로 아이를 낳는다. "(398쪽)

 

한마디로 절대권력을 휘두른 왕의 성도착증에서 어이없는, 그리고 엄청난 결과가 빚어진 셈이다. 목숨을 건 출산 조차도 성도착증 환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눈요깃거리였던 것이다. 그런 역사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충실하게 지켜지고 있다니 소름이 돋는다. 아마 당시 왕가에서 이같은 출산법이 시작되면서 일반백성들에게도 급속히 퍼져나가 정착됐겠지. 요즘은 새로운,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된다고 하지만 아무튼 이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루이 14세와 루이즈 드 라 발리에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에 대한 엽기적인 기록들은 또 있다. 


"루이 14세는 좌식 변기에 해당하는 자신의 셰즈 페르세에 앉은 채로 손님을 맞이하는 습관이 있었다. 찾아온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혹은 왕실 고문의 견해를 들으면서 공개적으로 대변을 본 것이다. 왕실에는 왕의 뒤를 닦는 일을 전담하는 어린 귀족이 있었다. 왕이 직접 닦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401쪽)

이런 유별난 배변 의식, 말을 즐겨 타던 습관, 기록에 남은 것만 2천 회가 넘는 결장 세척과 관장제 사용 등의 원인으로 치루가 생겼다. 치루로 고통받았던 그는 외과의사 드 타시에게 치루 수술을 받았는데 이 수술을 받는데 가족과 총리, 고해신부 등 여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치루 수술 장면이 사실상 전국에 중계방송된 셈이다. 드 타시는 태양왕을 수술하기 위해 6개월간 75명의 일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연습을 했다. 마취없이 진행됐던 이 수술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마취학을 발전시킨 빅토리아 여왕 = 마취 없는 수술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하지만 마취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인 200여년전만 해도 마취 없이 수술이 행해졌다. 전신 마취가 행해진 첫번째 수술은 1846년 10월 6일.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다. 마취를 받고 목에 생긴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 에드워드 애벗은 수술이 끝난 뒤 깨어났다. 얼마나 감격했던지 그는 “여러분, 이건 사기가 아닙니다”라고 감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영국에선 마취가 수술을 재빨리 해낼 수 없는 돌팔이 의사들에게나 필요한 ‘사기행각’으로 불렸다. 이런 인식이 보편적이었는데 빅토리아 여왕이 마취를 받기로 하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효과를 거두면서 마취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마취를 받은 이유는 출산의 고통 때문이었다. 이미 7명의 아이를 낳은 그는 출산을 ‘동물적인 경험’이라고 칭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토로했다. 최소 1년은 산후 우울증에 빠져 있다가 나아질 만하면 다시 임신을 했다. 정말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동물적 경험이다. 아무튼 여왕은 8번째 출산을 하며 마취를 감행했고 이 효과를 톡톡히 보자 영국으로, 프랑스로, 전 대륙으로 마취가 급속히 퍼지면서 발전했다. 


 


***(남성)할례, 포경수술=예전에 왜 중동지역에서 할례가 시작됐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왜 포경수술을 하는지 그 이유 역시 막연하게 짐작했는데  이 책을 통해 이해가 됐다. 

  “남성이 성교 시 꽤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질병이 있다. 포피와 귀두 사이에 만성적으로 감염이 발생하여 포피가 수축되는 포경이라는 병이다. 아브라함의 사람들은 우르와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사막 지역에 살았다. 굉장히 건조하고 한걸음 뗄 때마다 먼지가 우르르 솟아나는 환경에 살던 당시 사람들이 몸에 가운처럼 두른 옷은 아래쪽이 훤히 뚫려 있었다. 속옷을 챙겨 입지도 않았으니 먼지가 일면 온몸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위생 개념도 거의 없을 때였다. 

사막 지역은 물을 구하기가 힘들고 소에게 먹일 물도 필요했으므로 매일 몸을 씻을 만큼 물이 풍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할례의 전통이 주로 중앙아시아 사막 지역에 살던 아브라함의 사람들이나 유대인, 무슬림 뿐만 아니라 호주 원주민들,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 사이에서 널리 행해졌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포경의 주된 문제는 발기가 일어날 때 귀두를 막고 있던 포피가 찢어질 것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성교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은 이 증상을 가중시키므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행위를 지속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특히 대대손손 가문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열망이 큰 사람이라면 절박한 마음에 가장 실질적인 문제의 원인, 즉 포피를 돌로 쳐서라도 없앨 마음이 들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수술이 맨 처음 시작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은가.” (56쪽)


 

결국 남성의 할례는 생식과 번성, 성적 만족을 위한 것이다. 반면 아프리카 일대에서 행해지는 여성 할례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만들고 성적으로 억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저자는 루이 16세도 포경을 앓았다고 썼다. 1770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했으나 포경을 앓고 있어 7년간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1777년 그는 조제프 마리 프랑수아 드 라송이라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그는 포경 수술 치료 전문가였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듬해인 1778년 임신해서 첫 딸 마리 테레즈를 낳는다. 역사에 공식적으로 그가 수술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저자는 정황상 이를 유추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의학적 설명이 부족했던 탓에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믿었다. 




***교황의 죽음= 로마 가톨릭 역사에서 교황과 대립교황(교회법에 따라 선출된 교황에 대립하여 비합법적으로 교황의 지위를 주장하거나 행사한 성직자)의 숫자는 305명인데 이 중 교황으로 지명 된 뒤 5년 이상을 산 교황은 54%에 불과했다. 과거의 교황들이 목숨을 잃은 주요 원인 주변에 습지가 많은 로마 환경에서 비롯된 말라리아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사람은 이 지역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습지에 들끓는 모기에 큰 타격을 받았다. 


 “교황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그런 일이 아주 먼 옛날에만 일어난 것도 아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1978년 취임 후 33일만에 예순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원인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 요한 바오로 1세보다 임기가 짧았던 교황은 아홉명 밖에 없다.”(86쪽)


 “수세기 동안 교황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취약점은 폭식이었다. 가령 마르티노 4세는 우유 사료를 먹여서 키운 볼세나호의 장어를 잔뜩 먹고 1285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교황 인노첸시오 8세도 엄청나게 살이 쪄서 하루 종일 잠만 잤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결코 유쾌한 사람이 아니었다. 끔찍한 마녀 사냥에 착수하여 무고한 여성 수천 명을 산 채로 불타 죽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교황이었다. 나중에는 살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꼼짝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젊은 여성에게 모유를 수유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89쪽)



경향신문 서평 기사 수술실과 부검실의 역사 진실을 바라보다




  1. ... 2018.09.12 22:42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갖다 붙이기는... 학술용어로 환원주의라고 하지.. 역대 교황 266 가운데 210명은 이탈리아 출신이었고 이 중 99명은 로마 출신이었다. 나머지 56명인데 프랑스나 그리스 등이었다.(위키 참조) 대립교황은 로마에 있지도 않았다.

  2. 라벗 2018.09.14 22:51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조선시대 우리 할머니들이 루이14세의 영향을 받아 누워서 출산한것을 이제야 알았네...네델란드 외과의사 대단하다 그거 어떻게 알았지? 번역가도 저런 말도 안되는 뻥을 그대로 믿으니 출간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