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예멘 난민 문제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오래 쌓인 편견과 무지, 그리고 반성과 각성. 불현듯 손홍규 작가의 <이슬람 정육점>이 생각났다. 평소엔 식탐 때문에 떠오르는 책의 이야기를 썼다면 이번엔 좀 다르다. 물론 그래도 정육점이니 고기는 있다.


이 소설은 호흡이 빠른 서사를 갖고 있지는 않다. 등장인물들의 별 볼일 없는 일상, 부유하는 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만 강렬하고 울컥한 인상을 남긴다.


제목부터 강렬하지 않나. 이슬람 정육점이라니. 책의 배경은 대략 80년대 초반쯤. 십대초반인 주인공 소년은 특이한 가족들과 산다. 아버지는 터키인 하산. 무슬림이면서 정육점을 운영해 돼지고기를 판다. 팔기만 할 뿐 먹지는 않는다. 삼촌처럼 여기는 이웃 아저씨는 그리스에서 온 야모스, 그리고 고모같은, 엄마같은 정을 느끼는 이웃집 아줌마는 ‘한국’인 안나 아줌마다. 하산은 고아원에 있던 소년을 입양했다. 하산과 야모스는 한국전쟁 당시에 터키, 그리스에서 참전해 각자의 이유로 한국, 그것도 이태원 이슬람 성원 근처의 판자촌(쯤으로 예상되는)에 눌러 앉았다. 남편의 폭행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온 안나 아줌마는 본명을 밝히는 대신 <안네의 일기>를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지칭한다. 이들은 저마다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산다. 전혀 어울릴 수도 없을, 웬만해서 상상도 못할 조합. 유사가족 형태를 띠고 이들은 서로 기대고 삶을 나누면서 조금씩 치유를 얻고 성장해간다.



독특한 설정이지만 이 소설은 나,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의 민낯을 그대로 까발린다.


하산 아저씨는 맛있는 돼지고기와 맛없는 돼지고기를 잘 가려낸다. 고기보는 눈이 뛰어난, 잘 숙련된 전문가다. 그런데 돼지 콜레라가 돌자 사람들이 정육점에 발길을 끊는다. 고기를 더 얹어주면 콜레라 걸린 고기냐고 의심한다. 터키인이 파는 돼지고기라며,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한 남자는 저녁에 먹은 돼지고기 김치찌개 때문에 속이 울렁거린다며, 돼지고기 때문이라고 다짜고짜 의심한다. 다른 동네 사람 역시 돼지 콜레라에 걸린 고기가 분명하다며, 전염도 된다고 소문을 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빌어먹을 돼지고기를 판 터키놈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까지 한다. 하산 아저씨의 정육점을 찾아와 점령한 동네 사람들은 진열장에서 돼지고기를 꺼내 한 점을 썰어낸 뒤 하산에게 던지면서 먹어보라고까지 한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다. 모두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이 만난 작은 ‘위기’ 앞에서 이방인은 졸지에 시한폭탄같은, 암적인 위험인자가 되고 만다. 그 이방인은 이미 그곳에 오래 머물렀고 뿌리내리는 듯 했지만 두렵고 낯선 존재였다. 그 절망감과 모욕감에 늙은 이방인은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고 입술만 달싹이며 아무 말도 못한다.



소년은 속으로 되새긴다. ‘상처받은 사람을 놀리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그렇다. 이건 모든 인간들이 가진 능력이다. 그리고 매일, 매순간 우리네 인간들은 이 능력을 발휘하며 산다.



결국 앞선 ‘사태’는, 소년이 나서서 분홍빛 돼지고기 살점을 입안으로 넣고 우걱우걱 씹어대면서 끝난다. 하산아저씨의 양아들인 소년의 행동을 본 사람들은 계면쩍어 하며 하나둘씩 흩어진다.


하산아저씨, 소년, 동네사람들. 지구상에 발 붙이고 사는 한 우린 이 중 하나다. 한국땅에서 동네 사람들이지만 우린 어디서건 하산아저씨가 될 수 있다. 아니 이 땅에서도 우린 하산아저씨가 될 수 있다. 누가 우리 앞날을 장담하고 살 수 있을까. 동네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외부인에 대한 두려움과 무지에 따른 거부감으로 착각속의 고통과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는건 아닌가.



우울한 빛깔이 줄곧 흐르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밝고 푸근해지는 부분도 나온다. 역시 먹는 장면이다. 소년의 ‘가족’과 친구들은 10여명이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서울 외곽의 농촌으로 소풍을 나간다. 그곳에서 하산 아저씨는 돼지를 잡는다. 능숙한 솜씨로 하산 아저씨가 해체한 돼지를 사람들은 맛있게 먹는다. 한쪽에선 삼겹살과 목살을 굽고, 한쪽에선 찌개를 끓이는데, 짧게 묘사된 이 장면은 어떤 산해진미보다 식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무슬림들은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까. 성경 레위기에 돼지는 부정한 짐승으로 언급돼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이를 따르고 있는데, 왜 돼지고기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을까. 여러 책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딱 맞아 떨어지게 수긍되는 것은 없다. 중동의 기후적 조건 때문에 돼지고기가 잘 상해서, 잡식성 동물이라 인간과 같은 것을 먹기 때문에 경쟁관계에 있고 중동 기후에선 키우기엔 비용이 많이 들어서, 원래는 신성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이유가 어찌되었든 지금도 무슬림과 유대인들은 종교적 경전에서 금지하는 이 율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베네치아 공화국 역사서 <바다의 도시 이야기> 앞부분에는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얼마나 꺼려하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9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한 성당에서 마르코(마가) 성인의 유골이 발견되는데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 상인들은 그 유골을 안전하게, 몰래 들여온다. 방법은 유골 위에 돼지고기를 쌓는 것이었다. 그의 유골은 산마르코 성당에 안치되었고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 된다.



라마단 금식을 충실히 지키는 하산 아저씨는 병들어 점점 쇠약해간다. 터키식 미트볼을 만들어 소년과 함께 먹는 장면이 종종 등장할 뿐 딱히 식욕을 드러내지 않는 아저씨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에 먹고 싶다고 말한 요리가 있다. 양고기 파산다. 파산다는 야채와 향신료, 요거트 등으로 끓은 뭉근한 소스에 고기를 익혀먹는 아랍식 요리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치킨 파산다, 양고기 파산다, 비프 파산다, 파산다 케밥, 파산다 커리 등 각종 요리가 나온다. 아마 돼지고기 파산다는 없지 않을까. 이태원의 몇몇 아랍 식당에 가면 아마도 파산다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2년전 이태원의 이집트 식당, 요르단 식당, 예멘식당, 모로코 식당을 연달아 간 적 있는데 비슷한 느낌인 듯 하면서도 저마다의 독특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때 아랍권의 여러 요리들을 맛봤는데 파산다는 접하지 못했다. 이번 주말엔 이태원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