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신과 함께> <공작>. 올 여름 가장 많은 관객들이 얼굴을 보고 있는 배우가 주지훈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해 꾸준히 보아오긴 했는데 딱히 인터뷰할 기회가 없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무척 밀도도 깊었고 재미있었다. 고민도 느껴져고, 무언가를 담아내려는 의지도 보였다. 답변을 위한 답변같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가 더했던것 같다. 



****인터뷰

배우 주지훈에게는 모순적인 두 개의 얼굴이 공존한다. 아직 어른의 세계에 가닿지 않은 순도 높은 치기가 하나라면, 또 다른 하나는 이성을 무장해제시키는 느른한 유혹이다. 호사가들이 소년과 옴므파탈을 오가는 국내외 배우를 언급하며 할리우드를 대표해 데인 드한, 에즈라 밀러를 꼽을 때 그의 이름은 으레 국내를 대표하는 첫 순위로 거명된다. 


그는 연간 최고의 성수기인 여름 극장가에서 올해 가장 많은 관객들이 만나고 있는 배우다. 지난해 개봉했던 천만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 이어 파죽지세의 흥행기록을 쓰고 있는 속편 <신과 함께-인과 연>(이하 신과 함께), 예매율 2위인 <공작> 등 대작 2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주지훈의 영화’라는 평까지 나오는 <신과 함께>에서 현재와 전생을 오가는 해원맥을 연기한다. 현재의 그는 촐랑거리고 깐족대는 저승차사, 전생에서는 고독과 고통을 떼어낼 수 없던 고려시대의 장수다. 잊을 만하면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가 뽑아든 ‘슬픈’ 검이 관객들의 마음에 훅 들어오고야 만다. 



얼마 전 서울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껑충한 키로 꾸벅 인사를 하던 그의 가무잡잡한 얼굴 위엔 멋쩍은 듯한 웃음이 번졌다. 저런 표정을 가진 서른여섯 살이라면 소년의 연기도 어울리겠다 싶었다. 에둘러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 하자 그는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사실 얼마 전엔 10대를 연기했다”고 말했다. 올 연말 넷플릭스를 통해 방송될 사극 드라마 <킹덤>에서 그는 주인공인 왕세자로 출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신과 함께>가 엄청난 스코어를 기록 중이네요.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이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해원맥 캐릭터 때문인지 주지훈의 영화라는 반응이 많아요. 


“사실상 1인 2역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 영화에서 감정의 진폭을 가장 크게 만드는 인물이니까. 극한 변화가 있는 캐릭터이다보니 누가 해도 돋보일 가능성이 높은 역할이죠.”


-전편이 신파에 기댄 부분이 많았다면 속편은 성주신을 맡은 마동석과 함께 이끈 유머 포인트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합니다. 너무 자연스러워 애드리브처럼 보이는 것도 꽤 있던데.


“단 한 장면도 철저하게 계산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김용화 감독은 완벽한 자기만의 비트를 갖고 정교한 설계도를 그려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웃음이 터질 포인트를 정밀하게 예측하는데 매번 정확히 들어맞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다시금 절감한 것은 관객들에게 재미있고 쉽게 다가간다고 해서 감독이나 배우가 해야 할 고민의 무게가 덜하지 않다는 거예요. 백조처럼 우아하게 유영하기 위해 물 아래에서 미친 듯 발을 굴러야 하는 것과 비슷하죠.”



-상업적 성공이 전부는 아니지만 연달아 두 작품이 모두 기록적 흥행을 했어요. 게다가 그 두 작품에서 주연이라니 남다른 의미가 있겠네요. 


“성공한 한국형 판타지 영화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는 것이 외적 의미라면 내적으론 배우로서 갖고 있던 선입견을 없애고 시야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이러이러한 장르가 더 영화 같다’는 식의 편견이 있었거든요. 대상에 따라 한계를 두거나 의미를 규정하는 경우도 많았고. 결국 영화는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는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오는 산물이더라고요. 영화에 대한 생각이 유연해지면서 인간 주지훈도 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괜찮은 사람이라니요? 


“다름을 받아들이게 됐다고나 할까. 한두 살씩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아요. 좋은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누구나 그러고 싶죠. 좋은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게 쉽지 않아 문제죠. 비법이 있나요.


“운이 좋은 거죠. 굳이 제가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는 거예요. 현장뿐 아니라 주변에서 일상을 접하고 공유하면서 사람 그 자체, 내면을 보려고 하는 거죠. 내가 저 사람이라면, 저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거예요. 자꾸 하다보니 그게 되더라고요.”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시장은 남성 중심 공간이 됐다. 그것도 40대 후반에서 50대의 남자 배우들이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 시장에서 그는 30대를 거론할 때 1순위로 언급되는 배우다. <아수라>(2016년)는 본격적인 기점이 됐던 작품. <신과 함께>, <공작>에 이어 다음달 개봉이 예정된 <암수살인>까지 쉴틈없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과 함께한 <공작>은 1990년대 실존 인물인 북파공작원 흑금성을 중심으로 숨막히는 첩보전을 펼쳤던 당시 상황을 그린 이야기다. 주지훈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군인 정무택을 연기한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기도 하다. 


-두 작품이 일주일 사이로 개봉했어요. 


“전혀 다른 장르, 전혀 다른 캐릭터의 작품이에요. 각각의 작품에서 받을 에너지와 감동이 다르니까 선택을 고민할 필요 없이 다 보시면 됩니다.” 


-그동안 북한 사람이 등장했던 국내 영화가 많았죠. 


“저는 어떤 캐릭터를 형상화할 때 항상 백지상태에서 놓고 시작해요. 상대역부터 관련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보죠. 이 역할은 직접 그럴 수 없으니 북한 말투를 지도해 주시는 분을 비롯해 관련된 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무택은 젊은 나이에 상당한 지위에 오른 고위 군인인데 굉장한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한마디로 사냥개 같은 사람이죠. 자신의 입장에서 사상과 체제를 지켜내려는 신념에도 충실하고요.” 


-이 작품을 작업하면서 지난봄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지 않았나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뭉클했죠.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을 갖지 않던 저도 그랬으니 정말 많은 국민들이 감동과 놀라움을 느꼈을 것 같아요. 그 시대를 겪고 안 겪고를 떠나 그 만남에서 인간적으로 느낀 감동이 커요. 앞으로 이뤄져야 할 많은 과정과 절차가 있겠지만 일단 평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점이 중요한 거죠. <공작>이 말하려는 것도 그 점이고요.” 


-주요 배역 중 마지막으로 캐스팅됐다고 들었어요. 카리스마 강한 선배 배우들, 상대적으로 적은 대사량. 수락이 고민스러웠을 것 같은데요. 


“윤종빈 감독의 전작을 보면 단역 배우들까지도 누구 하나 살아 움직이지 않는 캐릭터가 없어요. 그 부분을 전적으로 신뢰했어요. 사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정무택의 생동감이 뚜렷이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나 그림인 거냐’고 대놓고 물어보기도 했다니까요. 그림으로 쓰기엔 비싼 개런티를 받았지만.(웃음)” 




-말랑하고 부드러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은 없나요. 


“예전에 <키친>이나 <결혼전야> 같은 로맨틱하고 좋은 작품들을 했어요. 대규모 관객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평가는 나쁘지 않았어요. <아수라>에서 워낙 비열하고 무거운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나마 <신과 함께> 덕분에 다양한 변주가 쉬워지지 않을까 기대해요.”


모델활동을 하던 그는 스물네 살이던 2006년 드라마 <궁>으로 본격 데뷔를 했다. 절박한 전사를 가진 여느 배우와 비교하면 그는 사실상 벼락 스타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대감과 가능성으로 빛나던 그의 20대는 길지 않았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암흑 같은 20대 후반을 보내야 했다. 시련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대중들을 만난 때는 서른이 되던 2012년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통해서다.



-주지훈이 연기하는 캐릭터 특유의 ‘츤데레’ 이미지가 두드러졌던 작품 같아요. 일종의 주지훈 표 인장이랄까, 작품마다 결을 달리하며 나타나는 그런 이미지가 재미있어요.


“그 부분은 한동안 갖고 있던 엄청난 고민이었어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일종의 ‘쪼’를 지워내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안 하려고 발버둥도 치고 온갖 시도를 해봤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나를 선택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내가 가진 그런 부분까지 원하고 있다는 것을요. 지금 내게 찾아오지 않은 것을 걱정하고 집착하기보다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하자는 마음을 먹고 나니 한결 편해졌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2014년 개봉했던 <좋은 친구들>이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작품이었어요. 캐릭터를 위해 살을 평소보다 10㎏ 이상 찌웠고, 상의를 벗는 장면에선 배 나온 평범한 모습으로 촬영했는데 나중에 감독님이 배에 힘주고 다시 촬영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어떤 캐릭터를 통해 전달하려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당사자는 육체라는 그릇을 가진 배우잖아요. 급작스러운 이미지 전복은 관객이 호기심을 갖고 메시지에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시선을 돌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배부른 사람에게 ‘이 음식 맛있으니 먹어보라’며 강제로 입에 넣어주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작업 이후로는 마음이 좀 정리됐어요. 차라리 내가 가진 걸 계속 갈고 다듬고 발전시켜 보자고요. 앞으로도 전 계속 연기하면서 나이 먹어갈테니까요. 전 마흔다섯, 마흔일곱의 제 연기가 궁금해요.” 


***인터뷰에 못 실은 이야기


그와 인터뷰는 1주일에 거쳐 2차례 이뤄졌다. 두 영화가 1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했기 때문에 따로 따로 했다. 보통은 이 경우 한번에 몰아서 하는 식이 일반적이라 이처럼 일정을 잡은 것이 특이했다. 

두 영화 다 놓칠 수 없다는 그런 의지의 표현인가.  

그러자 그는 "두 작품의 성격이 워낙 달라서"라면서 "한자리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하려면 집중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각각의 이야기를 심도있게 하려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또 물었다. 평소에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 같은게 있는지. 

그는 대답했다. 

"뭘 하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경쟁심이 강하고, 이겨야 한다는 욕심도 많고. 그래서 웬만하면 손을 안대요. 축구든 볼링이든 운동할 때도 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워낙 많이 받아 아예 시작을 잘 안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경쟁심을 유발할 수 있는 그런 취미는 안가졌어요."


그는 2006년 드라마 <궁>으로 데뷔했다. 당시 인터뷰를 찾아보면 벼락스타로 등장한 그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꿈과 희망, 장밋빛 미래 등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이야기나 성장과정의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그러자 그는 "어린 시절에 많이 어려웠던 편"이라면서 "그 시절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이 부모님께 상처가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형편이 좋지는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다보면 부모님께 상처가 될 것 같아서 굳이 하지는 않았던거죠. 따로 집이라기 보다는 장사를 하는 가게 한 귀퉁이에서 가족들이 생활을 했거든요. 주방이며 밥먹는 공간, 잠자는 공간이 구별되지도 않았고 연탄가스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막상 모델일을 시작하고서 본격적으로 제 결핍을 많이 깨닫게 됐죠. 누구나 당연히 갖고 있다고 하는 것들 중 제가 갖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더라고요. 저 정도는 그래도 경험해봤다거나 누려봤다고 하는 것들 역시 제 경험에는 없었고요. 제가 벌어서 동생 학비도 대고 필요한 것도 사고 했는데 내가 이런걸 사도 될까 하고 위축되기도 했고요. 

아무튼 그래서 당구니 볼링이니 하는, 그 시절에 가질 수 있는 취미생활도 안했어요. 돈 드니까. 돈 드는 건 안하려고 했죠. 괜찮다고, 그렇게 지내왔는데 그런 결핍들이 쌓이고 남아서 상처가 되고 힘들었었나봐요. 한동안은 술 마시고 난 뒤 울기도 많이 했었고요. 서른이 넘어서야 그런 마음이 좀 나아진 것 같아요. "


영화 아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