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청어람 홈페이지 화면 캡처



기독 청년은 왜 극우로 몰려갔나. 

최근 가짜뉴스 발원지로 극우 기독교계가 부상하면서 이 주제는 꽤 흥미를 끌었다. 태극기, 극우, 보수 기독교. 이 세가지를 묶는 공통점은 장년, 노년층이라고 공식처럼 입력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극우로 몰려가는 기독 청년이라니 말이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 아카데미 청어람 ARMC에서 주최한 강연회에 참석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발표자는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현준 연구원. 서강대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 연구원은 최근 ‘개신교 우익 청년 대중운동의 형성’이라는 제목의 소논문도 발표했다. 강의는 지난 10월19일 열렸다. 

 


강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봤다. 


 

극우 정치세력의 배경에 보수 개신교계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는 소위 ‘노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청년층도 포함돼 있다. 약자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하는데 앞장서는 교회 청년들. 그 행동과 정서의 기반에는 무엇이 있는걸까. 

 

김 연구원은 이같은 행동과 현상의 기반에는 ‘모욕감’, 혹은 ‘피해의식’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 모욕감을 해소하기 위해 좌파를 적으로 소환한다. 좌파를 적으로 두고 모욕감을 해소하는 이 과정은 ‘종교’ 혹은 ‘신앙’이라는 형태로 뒷받침되고 정당화된다. 이것이 주된 논지다. 


 

그렇다면 다시 정리해 보자. 

한국 공교육 특성상 청소년기까지 정치적 이슈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특히 교회내에서 자라는 경우 특히 그렇다. 자연히 보수 이데올로기를 체화한다. 그러다 사회로 나오고 이데올로기의 장에 던져진다. 막상 던져지고 나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나 학습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는 모욕감으로 다가온다.

 


교회 안에서도 소위 ‘좌파’, ‘진보적’ 그리스도인과 비교할 때 지적인 부분에서 피해의식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젊은 계층에서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날아드는 시선 같은 것 말이다. 사회·역사 인식이 부족하고 무지하다는 비판 혹은 비난 같은 것이다. 자연히 소위 ‘좌파 그리스도인’의 ‘앎’은 ‘지적 교만’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피해의식을 자극하고 모욕감으로 다가온다.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들은 또 있다. 좌파가 갖는 문화적 ‘힙’함, 그것은 잰체함 혹은 불편함으로 느껴진다. 

 


결국 문화적 자본이나 지식의 양이 떨어진다는 자격지심, 이로 인한 사회적 관계의 어려움에서 오는 고립감, 여기에 개인적으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예를 들면 취업난)이 겹쳐지고 더해지면서 모욕감과 분노는 극도로 증폭된다. 

 

 

이 모욕감과 분노는 어떤 방향으로든 발현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교회 내에선 이를 발현하는 방식과 내용에 종교적, 신앙적 의미와 정당성까지 부여된다. 그 방법은 ‘종교적 언어체계’의 동원이다. 즉 그 고립감과 고통의 의미는 ‘핍박’과 ‘박해’다. 즉 현재 자신이 부당하게 핍박받고 박해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의 의미는 ‘영적 싸움’이다. 나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그 세력은 영적 싸움에서 악의 세력이다. 즉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인 좌파가 사탄이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 공동체’는 영적으로 무장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이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우리 공동체의 영역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명확한 선긋기와 배제다. 즉 ‘우리’가 아닌, 좌파를 중심으로 하는 그 세력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존재이고 불순종의 세력이 된다. 


 

결국 이 분노와 모욕감이 향하는 곳은 좌파이고, 그 적대감은 이들로 하여금 극우로 가도록 추동한다. 이는 반지성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18세기 미국에서 나왔던 반지성주의는 초기 미국 개신교의 극단적 지성주의에 반발해 일어났다. 또 이는 개신교 신앙이 미국식으로 토착화되면서 정치적 행동주의가 신앙심의 지표이자 신앙을 증명하는 척도라는 인식을 낳았다. 태극기 집회나 퀴어 반대 집회 등에 극우 개신교계까 적극 나서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를 풀기 위해서는 개신교계가 바람직한 자아상을 확립해야 한다. 분노를 조절하고 모욕감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상은 사회적 피드백을 수용해서 자아에 대한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내 주관, 내 신앙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과 행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제대로 인지하는 상태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계는 제대로 된 자아상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피드백을 수용하지 못하고 내부로만 침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개신교의 위기다. 사회는 개신교에게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걸 잘 겪어내야 한다. 그 테스트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혐오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가, 사랑의 실천을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가치있는 감정의 제공자가 될 수 있는가. 이런 테스트를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자아상을 가질 것인가. 한국 개신교계에 던져진 과제이자 극우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