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미술관의 카페나 레스토랑은 단순한 상업공간이 아니다. 오랜 시간 작품을 감상한 뒤 작품의 여운을 나누고 휴식하는 기능적 공간일 뿐 아니라 특징적인 요리나 음료로 미술관의 예술철학을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미술관에 있는 레스토랑 중에서는 개성과 독창적 스타일로 유명세를 누리는 곳들이 많다.

국내 미술관도 이 같은 외식공간을 선보인다. 그 중에서도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 뮤지엄의 5층짜리 외식공간은 트렌드세터와 미식가들 사이에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다. 마치 미술관이 유명 작품을 컬렉션해 선보이듯 자기만의 요리 세계를 갖고 있는 셰프들을 한 건물에 모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이 건물 4층에 ‘한식 공간’이 자리잡으면서 3년간의 ‘컬렉션’이 마무리됐다.

아라리오 뮤지엄 제공

 

5층 ‘다이닝 인 스페이스’는 프랑스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2016년과 지난해 연달아 미슐랭 1스타를 받았다. ‘프렌치의 정석’이라는 평가를 받는 노진성 셰프는 외식업계에서 ‘믿고 먹는다’고 할 만큼 팬덤을 누린다. 이탈리아 음식에 비해 프렌치는 국내에서 대중성이 떨어지는 편이나 그는 국내 프렌치 레스토랑의 대명사로 꼽히는 ‘팔레 드 고몽’을 이끌며 신뢰를 쌓아 왔다. 4층 ‘한식공간’은 조희숙 셰프가 총괄하는 정통 한식당이다. 조 셰프는 ‘셰프들의 셰프’로 불려온 국내 한식계의 대모다. 신라호텔 한식당에서 총괄셰프를 담당했던 그는 한동안 강단에서 가르치면서 연구와 자문활동에 주력해 왔다. 지난해 그가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외식업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테이블 세팅에 사용된 식기류와 보조제품은 정유리·박미경·박선민·박강용 등 주목 받는 공예작가들의 작품들이다.

3층 ‘브라세리 인 스페이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2층 ‘카페 인 스페이스’와 1층 ‘프릳츠 커피 컴퍼니’는 디저트 카페다. ‘카페 인 스페이스’를 이끄는 최규성 페이스트리 셰프는 프랑스 최고의 디저트 카페로 꼽히는 피에르 에르메에서 동양인 최초로 셰프 타이틀을 받았다. ‘프릳츠 커피 컴퍼니’는 ‘커피계의 어벤저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페셜티커피(특정 지역과 환경에서 재배된 품종으로 고유의 풍미와 맛을 지닌 고급 커피) 전문점이다. 가격대가 높은 4·5층은 주로 40대 이상이, 1~3층은 20~30대가 많이 찾는 편이다.

조희숙 셰프가 한식공간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가운데 검은 옷/ 박경은 기자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은 2013년 건축사무소 공간 사옥이던 현재의 건물을 구입했다. 처음부터 담쟁이 덩굴이 운치 있게 덮인 구관은 미술관으로, 건물 전체가 세련된 통유리로 지어진 신관은 외식공간으로 꾸민다는 계획이었다.

김 회장은 연매출 3500억원 규모의 충남 천안터미널과 백화점·멀티플렉스 등을 운영하는 사업가이자 세계 유수의 미술 매체에 의해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100대 컬렉터로 꼽혔다. 서울과 제주, 천안, 상하이 등지에 미술관 5곳과 갤러리 3곳을 운영하는 그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37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게다가 예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그 자신이 ‘씨킴’이라는 이름으로 화가로도 활동하며 개인전을 꾸준히 열고 있다.

그는 평소 ‘삶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삶’을 표방하며 사업도 예술작업의 일환으로 봤다. 특히 레스토랑을 만들고 꾸미고 운영하는 과정은 그에게 사업이 아니라 창작활동이었다. 공간을 꾸미고 다양한 음식을 내고 고객과 공감하는 과정은 예술작품으로 대중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게 작품을 감상하고 먹고 마시는 행위는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문화적 유희이자 심신을 채우는 일인 셈이다.

2층 카페 인 스페이스에 진열된 디저트류/ 박경은 기자

초기에는 4층에 일식전문점이 입점했다. 한눈에 창덕궁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김 회장은 “이런 곳에 일식당을 두는 것은 왠지 자존심 상한다”며 “최고의 한식당으로 꾸며보자”고 했다.

전망과 입지면에서 탁월해 보이지만 셰프들에게 이곳은 다소 부담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4·5층에 올라가 보면 탁 트인 전망이 환상적이지만, 반대로 그런 분위기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도 갖게 된다. 초기에 제안을 받았던 몇몇 셰프들은 “공간이 주는 아우라가 강렬하다”며 고사하기도 했다. 조희숙 셰프 역시 “이런 공간에서 쉽게 일할 수 있는 셰프는 많지 않다”면서 결국 직접 나서게 됐다.

김 회장과 각 레스토랑을 담당하는 셰프들은 가끔 모임을 갖고 새로운 외식 실험에 대한 논의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정현 외식팀장은 “미술관과 공존하는 외식공간으로서의 자부심과 철학을 드러내기 위해 늘 고민한다”면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 있는 ‘인 시투’(in situ)처럼 세계 미식가들의 흥미를 끄는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 시투’는 2016년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코리 리(Corey Lee)가 문을 연 곳이다. 세계의 유명 레스토랑 대표 메뉴 하나씩을 그대로 구현한, 일종의 전시회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레스토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