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목불인견. 이 한마디로 현재 한국 종교계의 상황은 요약된다.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사상 초유의 총무원장 탄핵이라는 사태를 맞았으며,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인 명성교회는 변칙적 세습으로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권력과 돈에 집착한 종교계가 벌이는 볼썽사나운 싸움이 사회공동체에 균열과 상처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금권에 매몰된 종교계의 모습에 “이게 종교냐”는 분노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총무원장 탄핵한 조계종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한국 불교 역사상 최초로 탄핵된 총무원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8월 16일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가 총무원장 불신임안을 가결시켰다. 22일로 예정된 원로회의에서 원로의원의 과반수(12명)가 찬성하면 탄핵이 최종 확정된다. 종단에서는 큰 이변 없이 인준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설정 스님이 탄핵으로까지 내몰리게 된 표면적 이유는 숨겨둔 자녀가 있다는 ‘범계(계율을 범함)’ 의혹에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안만 놓고 보면 범계에 대한 종단 차원의 엄중한 결단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면의 양상은 다르다. 종단 권력을 놓고 벌어진 처절한 투쟁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게 불교계 안팎의 시각이다. 종단 내의 ‘야권’ 세력을 비롯해 그동안 불교계 개혁운동을 주도해온 범개혁진영에서는 전 총무원장인 자승 체제의 공고함이 증명된 ‘친위 쿠데타’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앞줄 왼쪽)이 8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에서 열린 중앙종회 임시회에 참석해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설정 스님은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 스님을 중심으로 한 주류 기득권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무난히 당선됐다. 후보자 시절에도 학력위조, 은처자 의혹 등이 제기됐다. 당시 설정 스님은 학력위조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나 은처자 문제에 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전격적인 탄핵투표가 이뤄질 만큼 은처자 의혹이 갑작스럽게 불거진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설정 스님 사퇴 압박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5월 초 MBC <PD수첩>이 스님에 대한 의혹을 보도하면서다. 시민사회단체 등 범개혁진영에서는 스님에게 해명과 퇴진을 요구했고, 설조 스님이 단식에 나섰다. 이때만 해도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지난 7월 들어 종단 내 주류세력이 설정 스님 퇴진 압박에 가세하며 상황은 반전됐다. 대형사찰 주지 스님들의 모임인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설정 스님을 만나 용퇴할 것을 촉구했으며, 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 진제 스님도 “명예로운 퇴진”을 언급하며 퇴진 요구에 힘을 실었다. 


그동안 의혹을 감쌌던 주류세력이 “종단 내 화합과 안정”을 내세우며 설정 스님에게서 돌아선 이유는 뭘까. 16일 열린 중앙종회에서 불신임안을 대표발의한 범해 스님이 밝힌 이유는 이렇다. “설정 스님은 취임 이후 종단 안팎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해 종단의 혼란을 야기했다. 또 8월 16일 용퇴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이를 번복함으로써 종단의 혼란과 분란을 초래했고 종단의 신뢰를 실추시켰다. 이에 중앙종회 의원은 종단을 안정시키고 종헌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총무원장 불신임결의안을 발의하게 됐다.” 


하지만 종단 내 야권과 개혁세력들은 이 같은 이유는 명분일 뿐 내심은 ‘꼬리 자르기’라고 단언한다. 주류세력이 종단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난해 설정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당선시켰으나 여론과 상황이 악화되면서 사퇴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자승 스님 역시 총무원장 시절 지속적으로 퇴진 요구를 받으며 개혁대상으로 거론돼 왔기 때문에 범개혁진영에 주도권이 넘어가면 자칫 종단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불교 개혁운동을 이끌어온 김경호 지지협동조합 이사장은 “주류세력이 설정 스님 불신임안을 가결키로 한 것은 이미 예측됐던 상황”이라면서 “중앙종회를 장악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주류 기득권의 의도”라고 지적했다. 


중앙종회는 조계종의 국회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기구다. 중앙종회에 대한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지배력은 여전히 막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중앙종회 의원들의 임기는 11월 9일까지다. 설정 스님 불신임안이 22일 원로회의에서 최종 확정되면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총무원장 선거가 치러진다. 현 중앙종회 의원들의 임기 내에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여전히 차기 총무원장 선거도 주류세력의 주도 하에 치러지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님은 “총무원장 선거를 비롯해 주요 개혁사안들을 다시 기존 적폐세력이 주도하게 된 모양새라 지난 몇 년간 지속돼 왔던 개혁운동이 더 어려워질 우려도 있다”면서 “설정 스님의 퇴진을 시작으로 향후 권력투쟁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22일 원로회의부터 주류세력과 개혁세력의 충돌이 예상된다. 불교개혁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원로회의에 중앙종회 해산을 요청키로 했다. 또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등 개혁성향의 스님들은 23일 전국승려대회를 연다. 전국승려대회는 말 그대로 전국의 승려들이 모여 뜻을 함께하는 초법적 기구다. 1994년에 열린 승려대회로 종단 개혁의 물꼬를 텄고, 1998년 종단의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했으나 이후엔 열린 적이 없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와 중앙종회 등 조계종 주류세력은 승려대회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중앙종회는 16일 결의문을 채택하고 “종도로서의 도리와 종헌질서를 아랑곳하지 않는 승려대회에 반대하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습 마이웨이 명성교회 


종교개혁 500주년이던 지난해는 개신교계 입장에서 더할나위 없이 경사스럽고 뜻깊은 해였다. 하지만 교계 안팎에선 한탄과 자조가 터져나왔다. 명성교회 때문이었다. 몇 년간 논란이 지속됐던 명성교회의 세습이 사실상 완료되면서 종교개혁 정신을 빛바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등록교인 10만명. 세계 최대 규모의 장로교회인 명성교회에는 지난해 11월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가 부임했다. 최근에는 법적인 정당성까지 얻었다. 이 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 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재판국이 지난 7일 세습문제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명성교회가 세간의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은 세습 자체뿐 아니라 꼼수와 말바꾸기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명성교회의 세습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한 때는 2013년이다. 김삼환 목사가 당시 명성교회 부목사로 재직 중이던 김하나 목사에게 교회를 물려주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교계 안팎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이 나왔다. 교회 측은 폭력으로 교인들의 시위에 대응하며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래도 이 같은 논란 중에 예장 통합은 총회를 열고 ‘세습 방지법’을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충현교회, 광림교회 등 앞서 세습을 했던 강남 대형교회들의 잡음이 사회문제로 확대되면서 교단 내부에서는 세습을 금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된 터였다. 이후 김삼환·김하나 목사 부자는 세습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2015년 김삼환 목사는 후임을 정하지 않은 채 은퇴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7년 명성교회는 그 아들을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명성교회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과정에서 세습방지법의 관련 조항 해석이 교계 안팎의 공분을 샀다. 교단의 관련 법에서는 세습 금지 대상을 ‘해당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 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은퇴하는’이라는 문구다. 세습을 밀어붙이던 명성교회 측은 김삼환 목사가 이미 은퇴했기 때문에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청빙하는 것은 법적 절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즉, ‘은퇴하는’ 목사가 아니라 ‘은퇴한’ 목사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주장이었다. “말도 안 되는 해석”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총회 재판국은 이 같은 주장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현재 교계 안팎의 반발은 거세다. 13일에는 개신교 법조인 500명으로 구성된 기독법률가회가 세습 무효를 주장했고, 같은 교단 내의 목회자들도 비판에 동참하고 있다. 교회세습반대운동 연대는 “한국교회의 개혁을 꿈꾸는 젊은 목회자와 신학생들의 세습 반대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교계 일각에서는 9월로 예정된 총회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교계 원로인 안동교회 유경재 원로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판국원 8명 때문에 교단이 통째로 세습 인정 교단이 될 수 없다”면서 “교단의 지성을 믿는다”고 밝혔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애희 사무국장은 ”국회 상임위에서 의결된 안건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면서 “최종 결론은 9월로 예정된 총회에서 판가름날 예정인데, 실제로 명성교회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강해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의 주역인 명성교회 측은 “교회로서는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김하나 목사는 지난 12일 설교에서 “이럴 때일수록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자”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는 내용의 설교를 통해 간접적으로 심경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