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배우 정우성씨를 만났습니다.

대중문화 기자 생활을 하면서 그의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네요.

 

기자시사회에서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를  보면서

"정우성도 나이 들었구나"하는 쓸쓸함 같은게 살짝 느껴졌어요.

하긴 저랑 비슷한 나이인데 뭘 바라겠습니까.

내 흰머리 느는거랑 무릎 쑤시는 건 생각도 않고

다른 사람 얼굴보고 늙었니 나이들었니 타령하다니 말입니다.

40대 중반에 이렇게 멋지게 멜로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된다고... ㅠㅠ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했습니다.

영화 인터뷰는 보통 이렇게 진행됩니다.

개봉을 앞두고 주연 배우는 카페를 하루 이틀 대여해서

시간대별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거죠.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간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보통 일은 아닙니다.

10시부터 시작해 한시간 단위마다 특정 매체의 기자, 혹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식이니

하루에도 수차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각도를 달리한 다양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하는거죠.

인터뷰이 입장에서도 힘들지만 인터뷰어 입장에서도 민망하고 미안한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배우 천호진씨는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홍보를 위해

3일간 50여군데의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도대체 이게 뭔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어떤 상태이고 기분이었을지 좀 짐작가시지 않나요.

 

이렇게 인터뷰가 진행되는 것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매체는 무지하게 많지만

배우들이 응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진도 수차례 찍어야 해서

매번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사진촬영을 합니다.

특정한 인물에 대한 인터뷰가 비슷한 시기에 주루룩 올라왔을 때 보면

기사마다 옷이 다른 경우도 그래서입니다.

 

이런식의 인터뷰를 '라운드인터뷰'라고 합니다.

영화든 음악이든 방송이든

대중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의 신작과 관련한 인터뷰는

대부분 라운드 인터뷰로 진행됩니다.

 

정우성, 김하늘 두 배우가 주연한 <나를 잊지 말아요>는

같은 카페에서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정우성은 3층에서 김하늘은 2층에서요. 

취재기자와 사진기자의 편의를 고려해 이뤄진 것일텐데

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재미있기도, 살짝 황당하기도 한 그런  시추에이션이라고나 할까.

 

예전에 지인이 물어보더라고요.

이렇게 인터뷰를 많이 하는데 왜 종로구 삼청동, 팔판동 등 특정한 동네 카페에서만 인터뷰를 하는거냐고,

또 그 근처에 카페가 그렇게 많냐고, 계속 이 카페 저카페 왔다갔다 하며 인터뷰를 하는거냐고 말이죠.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지인처럼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현재 이뤄지는 대중문화계 인터뷰 형식에 대한 설명을 잠시 드렸습니다.

 

아래는 그와 나누었던 대화들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미스터리적 기법을 도입한 감성 멜로 영화입니다.

교통사고로 최근 10년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남자 석원이 자신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자 진영과 엮어가는 감정선이

이 영화의 주된 줄기입니다. 스포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어떻게 되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더 이야기하기는 힘드네요.

 

정우성은 이 작품 제작자로 나서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 이윤정 감독에 의해 25분짜리 단편영화로 발표됐던 이 작품은 이번에 그가 제작을 맡으면서 장편으로 개작됐습니다. 이감독도 정식으로 충무로에 데뷔했고요. 다음은 그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경향신문 이석우기자 촬영

 

*어떻게 제작에 나서게 됐나.
=예전 영화에서 함께 작업을 했던 이감독이 단편으로 찍었던 이 영화를 장편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계자들을 통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 들으면서 자극을 받게 됐다. 신인 감독들이나 영화를 꿈꾸는 많은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다가갈 용기를 좀체 내지 못한다는 거다. 선망의 대상이던 선배들을 장식장에 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그 마음이 어떤지 알겠으니까. 나 역시 그렇게 꿈꾸고 살았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선배들의 몫이고 찾아가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껴온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 아무것도 없던 마이너 인생에서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누리고 있다. 그걸 지키기보다 나누어야 더 많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평소 막연하게 해 오던 생각들을 많이 정리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영화계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대하고 풀어가야 할 지에 대한 것들이다. 영화인들은 우리 영화계의 다양성 부재에 대해 많이 문제 삼고 고민한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저절로 해결되길 갈구해선 안된다. 개선을 시도하고 노력해서 관객에게 제시해야 한다. 천만영화도 있지만 2백만~3백만 영화가 많아야 업계가 건전하게 지속될 수 있다. 중저예산 영화에서 새로운 영화인들이 실력을 갈고 닦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은 말도 안되게 양극화된 환경에서 허비되어지는 인력과 자원이 너무 많다. 이번에 제작에 나선 것도 그런 차원이었다. 결국 선배들이 먼저 다가가서 기회를 만들어주고 이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흥행 결과에 많은 신경이 쓰일 것 같다.
 =영화 한편의 흥행에 일희일비하거나 판단이 좌우되는 성격은 아니다. 어떤 작품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중요하고 그 작품을 통해 깨닫고 얻은 가치를 간직하고 계속 영화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이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영화제작에 참여하게 된 내 시도가 퇴색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하고 무대인사를 돌면서도 여러차례 이야기했다. 문제점을 지적만 하지 말고 참여해서 실천하고 바꾸는 선배들이 되어 달라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큰 의미를 갖겠다.
=성숙한 영화인으로 나가는 내 첫 단추인 것 같다. 부담감과 타인의 시선이 날 짓누르고 옭좨기도 했으나 꿈을 향한 시도와 도전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시도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얼마나 많이 위축돼 있나. 그들에게 꿈의 발판이 되어주는 것이 내 꿈을 이뤄가는 길이다. 이제 시작하는 내 모습도 완성형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왜 이 작품이었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여느 멜로영화와는 다른 개성과 매력이 있다. 퍼즐을 맞춰가는 미스터리 형식을 띠면서도 이 영화는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을 살갑게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신인감독 입장에서 주연이자 제작자 정우성을 놓고 촬영하며 현장을 지휘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많이 불편했겠지만 잘 버텨줬고 대견하게 해줬다. ‘정우성이 후배 데리고 뻘짓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작발표회장에서 ‘선배로서 잔소리 한번 더 할걸’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여자 후배이다보니 아무래도 어떤 언어로 이야기할 지 망설여질 때가 많았다(웃음). 아마 남자 후배였다면 속 시원하게(?) 많은 표현을 했을 것 같은데.

 

*감독으로서의 모습은 언제 볼 수 있을까.
=감독에 대한 꿈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시나리오는 서너편 작업을 하고 있다.  

 

*데뷔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멜로의 주인공이다.
 =내가 언제까지 멜로의 주인공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은 안해봤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가 멜로를 하기엔 가장 좋은 나이인 것 같다. 20대, 30대도 좋았지만 좀 더 깊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인 것 같다. 사실 사랑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나. 어떤 나이의 사랑이건 늘 생소하고 설레는 느낌이다.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나. (이전까지 다소 진지하고 건조하던 그의 눈빛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꿈꾸듯 떨리고 반짝였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주변 유부남들에게 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 하고 있네’하는 시선으로 나를 본다.

 

*정우성이 청춘의 아이콘이던 시절에 멜로연기를 하는 40대 배우는 없었다.
 =영화의 소비층이 바뀌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 전반적으로 고령화도 심해졌고(웃음).

 

*혹시 필모그래피에서 지우고 싶은 목록이 있나.
 =없다. 사람들은 <구미호>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나에겐 히히덕거리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다. 그때하고 지금 비교하면 정말 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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