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경향신문 이준헌 기자 촬영

 

 

500년전 독일에서 루터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을까. 부패한 종교적 전통과 권위주의적 구습. 이에 맞선 개혁과 변화가 개신교의 시작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개신교는 500년전 개혁대상이던 교회와 꼭 닮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비정상회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잘 알려진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32)이 <루터의 재발견> 저자인 최주훈 목사(47·중앙루터교회 담임)에게 물었다. 이들은 얼마전 함께 독일에서 루터의 행적을 여행하며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들의 여정은 현재 CBS TV를 통해 다큐멘터리 <다시 쓰는 루터 로드>로 방송되고 있다.

다니엘=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재미있는 것이 교회 건물이었어요. 독일에는 전형적인 형태의 교회나 성당 건물이 마을에 자리잡고 있어서 누구나 보더라도 교회인줄 알죠. 그런데 한국에선 언뜻 보면 상가나 회사같은데 안에 교회가 있고 옥상에 십자가가 있어요. 전에 강남 사랑의 교회를 지나는데 정말 백화점보다 더 잘 지어져 있더라고요.

최주훈=교회 하면 다들 건물을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예요. 게다가 외딴 섬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 시민사회의 한 부분에 존재하는 거지요.

다니엘=유럽에서 교회는 종교보다는 문화적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종교생활을 하지 않다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 되면 문화적 행사로, 또 그 주변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시장에 참여하러 교회나 성당에 가는게 일반적이에요. 때문에 유럽 교회는 종교적인 의미를 잃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최주훈=너무 비판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한국은 정말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요. 그 정도 숫자의 신자들이 있는 나라라면 이 나라의 전반적인 것이 다 변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변한게 없어요. 국회의원들 중 기독교인이 절반에 이른다는데 그들이 무엇을 했나 묻고 싶을 때가 정말 많지요. 기독교인이라면 숫자가 아니라 살아가는 세계가 바뀌어야 하거든요.

다니엘=지금도 고향(랑엔펠트)에 가면 어릴 때 다녔던 성당을 찾는데 일요일에 성당이든 교회든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40대면 굉장히 젊은 편이거든요. 고령화도 무척 심하고. 이렇게 계속 시간이 가면 어떻게 될까 싶기도 해요.

최주훈=역사를 보면 교회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소멸의 길로 가는 건 아니었어요. 인간의 심성 때문에 종교는 절대 사라질 수 없어요. 종교심이 어느쪽으로 분출되느냐의 차이가 있는거죠. 유럽에선 종교개혁을 거치며 기독교의 종교심이 교회라는 규정된 틀이 아니라 문화로 분출됐습니다. 그게 유럽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가 오래된 곳일수록 문화와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법과 교육에 뿌리내리고 있지요. 지금 한국에도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종교성을 끊어버리지 않은 ‘가나안 성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기존 형태의 종교생활이 아니라 일종의 아카데미 운동, 신앙에 대한 공동체 운동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는거지요.

경향신문 이준헌 기자 촬영

 

다니엘=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최주훈=긍정적이라고 봐요. 종교개혁 당시엔 라틴어 성경만 권위가 인정됐어요.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화형감이었지요. 그런데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것은 목숨을 걸었다는 뜻이에요. 왜 했을까요. 복음이 주는 자유와 해방의 기쁨 때문이었어요. 그전엔 신과 나 사이에 사제가 있었어요. 중간 역할을 하며 성경을 해석해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가야 했지요. 현재로 봤을 땐 목사에게 모든 걸 다 믿고 맡긴다는 건데 이건 종교개혁의 의미에서 봤을 때는 잘못된 거예요. 중간 단계가 필요 없어요. 스스로 성경을 읽고 고민하며 책임적 존재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소통하며 힘을 확장시켜서 책임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 그게 종교개혁 정신이지요.

다니엘=그런 종교개혁 정신이 독일사회와 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도 늘 하셨던 말씀이 자신의 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면서 늘 비판적으로 생각하라고 했어요. 어떤 사안에 대해 항상 내 생각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 서로 토론하고 상대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 그게 독일 교육의 핵심이거든요.

최주훈=종교개혁 사상을 가장 잘 이어받은 사람으로 철학자 헤겔을 꼽을 수 있어요. 그는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기준은 ‘끝까지 질문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 힘이 있으면 근대를 살아가는 사람인거죠. 21세기 한국 교회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이 질문하는 힘, 용기예요.

다니엘=한국 교회 목사님들은 신자들에게 ‘질문하라’는 이야기를 하나요?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웃음). 게다가 한국 교육에도 질문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많잖아요..

최주훈=유교문화 영향 때문인지 예로부터 어른이 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교회에서도 목사가 답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의 삶에 답이 정해져 있진 않은데 자꾸 답을 주려고 하고, 그게 불완전하다보니 헤매고 불신하게 되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루터교 목사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단에 들어가 체포된 뒤 사형을 받은 인물이에요. 목사인데 암살단이라? 본회퍼 입장에선 살인도 죄이지만 히틀러에 찬성하는 것도 죄, 가만히 있으면서 두고 보는 것도 죄였어요. 우리가 살면서 정답과 오답이 완벽히 갈려 있는 것은 없어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되는데 루터는 그 선택의 기준을 제시했어요. 첫번째는 내가 아닌 남에게 유익한건지, 두번째는 선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 마지막은 내가 책임을 달게 질 선택인지 입니다. 우리의 판단이 완벽하지 않지만 예수를 믿는다면 적어도 이런 기준으로 이웃과 미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죠. 그런데 한국 교회에 있는 고민 중 상당수가 교회재산이에요.

/ 이준헌 기자 ifwedont@
/ 이준헌 기자 ifwedont@
다니엘=신자로서 믿음이 중요하지만 행동으로 어떻게 나타나느냐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유럽에선 볼 수 없다가 한국 와서 조금 낯설게 느껴졌던 모습이 거리에서 ‘하나님 안믿으면 지옥간다’고 외치는 사람들이에요.

최주훈=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천국과 지옥은 간단해요.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 천국, 하나님 없는 삶이 지옥이예요.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삶과 죽음의 개념과는 달리 봐야 합니다.

다니엘=독일에는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 큰 장벽이 없어요. 엄마하고 같이 다녔던 성당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반부터 가톨릭 미사를 드리면서 전 오르간을 쳤어요. 같은 공간에서 오전 9시에는 개신교 예배를 드려요. 이를 ‘외쿠메네’, 즉 함께 살아가는 삶의 자리라고 부르는데,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거죠. 그런데 한국은 가만히 보면 개신교와 천주교는 아예 다른 종교라고 구분하는 것 같아요. 이단이라고 주장하며 차별하는 경우도 있고. 왜 그렇게 된건지 궁금해요.

최주훈=개신교든 가톨릭이든 한국 교회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아요. 500년 전에 서로 싸운 것만 기억하지 그 사이에 서로가 변화하고 노력한 것들은 알려고 하지 않아요. 500년전의 가톨릭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요. 개신교 역시 마찬가지고요. 교회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장이 필요합니다. 독일에선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종교개혁에 대한 역사책을 만드는 작업에 함께 참여했어요.

다니엘= 원래 기독교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기독교에 전통 신앙이나 종교가 섞이는 그런 부분도 신기했어요. 일부 교회에서 보면 전통 샤머니즘의 무당 역할을 목사에게서 발견할 수도 있고요. 특별히 더 흥미로운 부분은 좁은 지역에서 굉장히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활속에서 종교간의 갈등이나 배척이 꽤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제사 문제는 종교와 한국의 문화·역사가 갈등을 빚는 사례이기도 하고요. 제 친구가 개신교 신자인 지인에게 법륜 스님의 책을 추천했는데 그 분이 ‘난 기독교 신자라서 스님 책은 안본다’는 반응을 보여서 좀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런 배타적인 부분이 발견되는 개신교 신자들을 종종 볼 수 있거든요. 어떤 대상에 대해 비판하든 긍정하든 배우려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상대를 알아야 그에 대한 의견도 가질 수 있는데 말이죠. ‘이슬람은 테러’다 라고 무조건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비판 전에 그 종교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최주훈=이건 여담인데 코란을 독일어로 가장 먼저 번역한 사람이 바로 루터예요. 당시에 이슬람 세력과 대립하면서 다들 이슬람을 정죄할 때 루터만 ‘일단 저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아야 한다’면서 코란을 번역했어요. 루터는 모르는 채 무턱대고 움직이는 것을 늘 경계했어요.

다니엘=제가 23년 넘게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이번에야 제대로 종교개혁에 대해 공부했어요. 독일에서 있었던 일인데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도 좀 했고요. 제가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독일에서 루터는 종교적인 느낌보다는 표준 독일어의 기초를 만든 인물로 더 와 닿는 것 같아요. 그가 번역한 성경이 현대 독일어의 기초가 됐으니까요. 현대 독일어에서 사용하고 있는 비유적 표현이나 신조어 중 상당수를 루터가 만들었어요. 평소에 자주 쓰는 표현 중 루터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게된 것도 꽤 있거든요.

최주훈=앞서 말했듯 루터는 누구나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꿨어요. 그것을 위해 성서를 번역했고 누구나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을 추구했어요. 그때부터 보편교육이 시작됐지요.

다니엘=결국 종교개혁의 정신이 중요한건데, 신자라면 어떤 삶의 자세가 바람직할까요.

최주훈=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의 일상 한가운데로 들어온 것이에요. 교회가 세상속에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기독교인이라면 내 중심을 이웃에게로 향하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죽여서 남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죠.

다니엘=전 이번에야 비로소 종교개혁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됐어요. 그간의 종교생활이라면 내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축제를 얼마나 화려하게 보내고 있는지 그런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거든요. 본회퍼처럼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선택해야 할 것인지, 저항과 용기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다시 하게 될 것 같아요.

최주훈=종교개혁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동일하게 신적인 가치를 갖고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계급이 없어요. 다 평등하죠. 그 가치를 분명히 알아야 해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도 없어요. 그러므로 권위를 부리는 사람에게 저항해야 하고, 사람의 가치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약자를 끌어올려 섬기는 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삶이어야 합니다.

다니엘=제가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지인이나 팬들 중 이런 분들이 있었어요. ‘다니엘, 가톨릭 신자 아니었어? 그런데 개신교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는거야?’라고요. 이런 작은 부분들이 우리 속에 있는 선입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입견은 쉽게 갖고 금방 커져요. 그리고 그럴수록 본질에서 멀어져가고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돼요. 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서로를 더 배우고 잘 알아가는 것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바라봐줬으면 해요.


최주훈=종교개혁의 역사는 교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정신이 삶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독일을 비롯해 덴마크, 북유럽 등 루터교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일수록 보편적 복지와 인권, 교육 정책등이 잘 구현돼 있어요. 종교개혁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가 현재 한국 개신교가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