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돼지발정제와 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논란의 주역이 됐던 적은 없다. 색즉시공 같은 섹스코미디 영화나 개그 프로그램 등에 간간이 등장해 멋쩍은 웃음을 줬던 이 소재가 선거판을 달구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세계 3대 진미라는 것이 있다. 다들 알다시피 송로버섯이라 불리는 트러플, 캐비어, 푸아그라다. 돼지발정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웬 세계 3대 진미인가 싶겠지만 관련이 있다. 이 3대 진미중에서도 가장 진미라는, 매혹적인 향을 가지고 있는 트러플. 이 트러플에 포함된 성분의 하나가 일종의 돼지발정제다. 수퇘지의 성호르몬과 비슷한 물질이 포함돼 있어 예로부터 트러플을 찾는데는 암퇘지가 이용됐다. 숲속에서 맹렬하게 코를 킁킁거리며 땅을 파헤치는 암퇘지가 찾아내는 것은 바로 트러플이다. 많이 나는 지역이 프랑스 페리고르,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이라고 한다. 재배할 수도 없고 쉽게 찾을 수도 없는데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당 수억원을 호가하며 땅속의 다이아몬드라 불릴만도 하다.


아무튼 이같은 트러플의 성분 때문에 예로부터 최음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루이 15세의 정부인 퐁파두르 부인도 매번 음식에 이 트러플을 사용했다고 한다. 퐁파두르 부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에 또 다른 최음제로 각광받던 식품이 바닐라였다. 이분은 바닐라 역시 자주 음식에 넣었다고 한다. <진짜 세계사 음식이 만든 역사>(21세기 연구회 지음)라는 책에는 멕시코가 원산인 바닐라를 발견한 스페인 사람들이 이것을 ‘꼬투리’를 뜻하는 바이나(vaina)에 축소의 뜻을 지닌 어미를 붙여 바이냐(vainilla)라고 했던데서 바닐라의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또 이 vaina의 어원은 라틴어로 바기나(vagina), 즉 영어로 말할 때 버자이너라고 하니 뭔가 묘한 인연이 있는 것도 같다. 향긋하고 사랑스러운 향을 가진 바닐라. 그런데 영어 단어 바닐라에는 의외의 뜻도 있다. ‘평범한’ 혹은 ‘특별할 것 없는’ 이라는 뜻이다. 내가 이 뜻을 알게 된 것은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때문이다. 이 범상찮은 성적 취향을 가진 그레이가 아나스타샤와 평소에 자신이 즐기던 것과는 다른, ‘비교적 평범한’ 섹스를 하고 난 뒤 ‘바닐라 섹스’를 했다는 표현을 썼다.


너무 다른데로 샜다. 다시 트러플로. 국내에는 전혀 나지 않아 전량을 수입해야 하는, 낯설고 귀한 이 식재료가 지난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청와대가 당시 새누리당 지도부와 오찬을 하면서 식탁에 올렸던 음식이 바로 이 트러플이었기 때문이다. 민심과 떨어진 궁중의 식탁이라는 비난이 끓자 청와대에서 내놓은 딱한 해명은 음식 재료로 조금 쓰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딱하고 말도 안되는데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을 증명한 것이 이런 식의 해명이다. 아니, 그럼 트러플을 재료로 조금 쓰지, 일반적인 볶음이나 찜, 무침처럼 통째로 트러플을 먹는다는 줄 아나. 트러플은 양념이나 향신료처럼 음식에 살짝 넣어 향과 풍미를 돋우는 것이다. 가루를 내다시피 얇게 썰거나 오일, 페스토 등으로 만든 것을 주요리에 곁들이는 것이다. 호텔이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트러플이 들어간 음식은 다들 이처럼 양념으로 쓰인 것들이다. 모르겠다. 통크게 누군가 트러플구이를 드실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이 트러플 요리라고 접할 수 있는 것은 트러플 오일이나 파우더로 풍미를 더한 수프, 파스타, 리조토 정도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트러플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자세히 나온다. 14세기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당시 수도원과 귀족들이 어떻게 트러플을 즐겼는지 알 수 있다. 화려한 지적 유희를 즐기기에 더할나위 없는 작품이다. 국내 번역본엔 송로버섯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소설의 설명에 따르면 송로버섯은 이탈리아 반도에서만 나는 귀물이다. 특히 베네딕트 수도회의 고위 수도자들일 즐기는 고급식품이다. 일반적으로 검은 송로버섯을 알고 있지만 흰 송로버섯이 더 향기롭다고 한다. 송로버섯은 땅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캐기가 무척 어려운데 이 냄새를 맡고 흙을 파서 찾아낼 수 있는 동물은 돼지뿐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문제는 캐내는 즉시 그 자리에서 먹어 버리기 때문에 돼지를 따라가다가 찾은 기미를 보이면 서둘러 돼지를 쫓아버리고 손수 캐내야 한다는데 요즘은 이 때문에 유럽에선 훈련된 개를 송로버섯 찾는데 이용한다고 한다.


송로버섯은 영어로는 트러플(Truffle), 불어로는 트뤼프(Truffe), 이탈리아어로는 타르투포(Tartufo)라고 불린다. 아무래도 프랑스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편이라 그런지 국내에 번역된 책에는 트러플보다 트뤼프라고 번역해 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로시니는 대식가로도 유명한데 그가 제일 사랑한 식재료가 트러플이었다고 한다. 버섯계의 모짜르트라는 별명도 붙였다고 한다. 음악 외에는 대부분 요리하고 음식을 먹는 일에 집착했던 그는 낙천적인 성격이었지만 트러플 때문에 눈물을 쏟은 일화는 유명하다. 칠면조에 트러플을 채운 요리를 들고 뱃놀이를 갔다가 그만 배가 뒤집어져 요리가 물에 빠졌기 때문이다. 벼르고 벼르던 음식이 그렇게 되어버리다니. 그 마음이 어땠을지 느낌이 온다. 그런데 칠면조 속을 트러플로 ‘채운’요리는 얼마나 비싸고 호화로울지 상상이 안된다.


유럽의 고급 레스토랑에는 ‘로시니 스테이크’(투르네도 로시니 라고도 불린다)라는 메뉴도 있다고 한다. 그가 직접 개발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당시 최고의 셰프였던 앙토넹 카렘이 그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필레 미뇽 위에 푸아그라, 트러플이 얹어진,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요리라 할 만하다.


살다보면 맛볼 날도 올까. 글쎄. 웬만해야지, 이런 사치스럽고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은 음식은 궁금하긴 해도 딱히 먹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마구 불러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 향과 맛을 가끔 느껴보고 싶기는 하다. 예전에 트러플 필링이 뿌려진 수프와 파스타를 두어번 먹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그 향과 맛이 맞다면 말이다. 그 요리에 트러플이 개미눈물만큼 들어갔다고 했다.


트러플을 시중에서 직접 사서 요리하는 것은 실용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물론 그렇게 먹을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야 어련히 알아서 먹겠지만. 예전에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던 지드래곤이 자신의 냉장고에 트러플을 덩어리째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트러플을 좋아해서 프라이를 해서 먹는다니 과연 ‘월드 클라스’ 가수답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얇게 슬라이스 한 트러플 필링이나 올리브오일에 절인 페스토, 혹은 트러플 오일이나 트러플 소금 등 가공식품을 구입해 요리에 사용하면 트러플의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요리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하는 마음이 생긴다. 트러플 필링을 사다 볶음 우동 만든 뒤 가쓰오부시 올리는 것처럼 파스타 위에 올려볼까. 얼마나 할까. ‘헉’ 소리부터 나온다. 검색을 해보니 트러플 필링 30g 한 캔에 6만원이 넘는다.


딱히 음식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현장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늘어나는 뱃살을 고민하면서도 야식을 끊지 못해 끙끙대는, 밥 먹으면서도 먹는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 식탐 많은 40대입니다. 책을 읽을 때 음식 묘사가 나오면 눈을 번쩍 뜨곤 했지요. 작가가 묘사한 음식 맛을 떠올리며 입맛을 쩝쩝 다시곤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식이 묘사된 문학작품은 음식 맛을 한참 상상하거나 직접 먹어보고 나서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던 탓에 한번에 죽 읽어낸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독서의 가장 큰 적은 식탐과 호기심이었다고나 할까요. [푸드립]은 ‘food+library’와 ‘food+drip’ 두 가지 뜻을 넣었습니다. 먹거리를 갖고 ‘썰푸는’ 장입니다. 책 속 음식 이야기와 함께 먹거리에 관한 온갖 수다를 떨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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