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얼마전 가야금연주자 정민아씨의 공연에 갔다. 19금 공연이라고 이름붙은 이 공연의 제목은 ‘음담’. 음담패설(淫談悖說)할 때의 음이 아니라 음악(音樂) 할 때의 그 음자를 사용했다. 이름이야 뭐가 됐든 음담패설에 가까운 콘텐츠가 난무했던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불렀던 제일 마지막 노래는 정희라씨의 ‘소세지타령’. 혹시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수년전 슈퍼스타K에 이분이 출연해서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그가 무대에서 불렀던 노래가 ‘소세지타령’. 느낌이 오지 않나. 가사는 그 느낌 그대로다. 혹 19세 미만이시면 건너뛰어 주시길.


‘선텐도 안한 것이 거무스름하고 /버섯도 아닌 것이 갓을 쓰고 / 번데기도 아닌 것이 우유도 나오고 /만지다 안만지면 죽었다 살았다 /요것이 소세지 타령이야’

‘에로가수’로도 불리는 정희라씨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찌감치 스타가 됐다. 그간 발표했던 노래제목들도 바나나송, 조개송 등으로 ‘일관성’이 있다. 그가 말하는 소시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누구나 알만하다. 이처럼 소시지가 성적 은유로 사용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이미 고대 로마때도 그랬다.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삼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당시에 소시지를 먹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기록이 여러 책에 나온다. 성경이 금하는 동물 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교도의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물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성적인 상상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유통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소시지가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에서부터이니 3000년 전부터 소시지를 먹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원래 소시지는 고기를 오래 보존하는 방법의 하나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기를 가공하고 남은 부산물에 소금을 쳐서 창자 등 내장에 넣고 건조시켜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시지의 어원이 소금에 절이다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어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지역별로 소시지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십자군 전쟁 이후라는 기록들이 있다. 위키피디아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에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소시지를 갖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각 지역 특성에 맞게 소시지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후 신대륙 발견과 신항로 개척으로 많은 향신료가 들어왔던 것도 소시지 요리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음식 전문 저술가 헤더 안트 앤더슨이 쓴 <아침 식사의 문화사>라는 책을 보면 유럽 사람들은 소시지 제조 기법을 천년에 걸쳐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는 현재와 같은 형태의 소시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라고 적고 있다.


요즘이야 국내에서도 고기로 만든 정통소시지를 많이 먹고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 정서엔 서양식 소시지보다는 한국화된 수시지가 더 친근한 것 같다. 똘이장군, 천하장사나 이름없이 짙은 주황색 비닐에 빨간 줄이 있던 간식용 소시지는 40대인 내가 어렸을 때도 즐겨 먹었던 건데 지금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같은 40대 이상의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의 소시지는 밀가루 함량이 많은, 둥글고 길쭉한 분홍색 소시지일 것이다. 둥글 넓적하게 썰어 계란물을 묻힌 뒤 기름에 지져내면 그것 이상의 맛있는 반찬이 없었다. 당시 소년중앙, 어깨동무, 보물섬과 같은 어린이 잡지에 실렸던, 신동우 화백이 그렸던 진주햄 광고 만화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회사 근처에도 계란물 묻힌 소시지 반찬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온갖 좋은 반찬과 먹을거리가 있어도 유독 그것만 리필을 시켜 먹게 된다. 도시락 반찬으로도 최고 인기였다. 소시지를 사온 친구가 있으면 다들 갑자기 친한척을 하며 그 책상으로 가서 같이 밥을 먹었다. 그러다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이 있으니 바로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 중고생이던 1980년대에도 시판됐던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는 일종의 부의 상징이었다. 분홍색의 둥글 넓적한 소시지야 종종 싸갔던 것이지만 이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는 좀 산다는 집 애들만 먹었던 반찬이었다. 이 소시지는 분홍색 소시지와 달리 덥석덥석 집어 먹지도 못했다. 도시락 주인 눈치를 슬쩍 살피며 조심스럽게 한개씩 먹어야 했다. 엄마한테 이 소시지 싸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어느날 도시락 반찬 뚜껑을 열었더니 ‘두둥~’. 콩장과 멸치볶음이 담긴 칸막이 너머에 뭔가가 호일에 얌전하게 싸여 있다. 조심스럽게 열어본 호일 속의 주인공은 기름에 반질반질 볶아진, 케첩이 뿌려진 줄줄이 비엔나였다. 친구들의 ‘오오~’하는 탄성을 들으며 으쓱했던 유치찬란한 기억의 한자락이다.


김숨의 단편 <럭키슈퍼>에는 불운으로 점철된 한 가족의 인생이 그려져 있다. 이름은 ‘럭키’이지만 허름하고 보잘 것 없는 구멍가게. 인근에 큰 슈퍼마켓이 생기면서 가뜩이나 장사가 되지 않는 럭키슈퍼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중학생인 화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픈 동생을 돌보고 고등학생인 오빠 뒷바라지에 집안일까지 해내야 하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무료한 가게를 봐야 한다. 삶의 의욕이 없는 무능한 아빠는 매대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유통기한 지난 간장보다 더 존재감 없는, 아니 처치곤란한 존재다. 점점 소멸되어 가는 이 가족의 삶. 어두운 터널처럼 계속되는 ‘나’의 일상에 그나마 현실을 잊게 해 주는 것은 오징어 흡반과 소시지다. 가게의 유일한 단골이 계산한 뒤 놓고간 소시지. 주인공 ‘나’는 팔뚝만큼이나 긴 소시지를 우걱우걱 베어 먹는다. 고작 오징어 다리에 붙은 흡반을 눈치보며 떼어먹던 ‘나’에게 어느날 뚝 떨어진 소시지는 횡재다.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대상이다. 빈한한 살림을 꾸리는 엄마가 오빠를 향해 나타내는 지극한 헌신의 상징 역시 소시지 반찬이다.


안간힘을 써도 하루하루가 버거운 사람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점점 더 주변부로 밀려나는 사람들. 럭키슈퍼의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 주변에도 너무 많다.


소시지, 그것도 밀가루가 잔뜩 들어간 옛날식 소시지를 그저 별미로 먹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도 그걸 고기 대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얼마전에 실감했다. 동네 알뜰 시장에 갔더니 아이 하나는 업고 하나는 걸린, 초라해 보이는 행색의 여성이 옛날식 밀가루 소시지를 잔뜩 사서는 에코백에 차곡차곡 담고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그거 유통기한도 얼마 안남아서 싸게 내놓은건데 그렇게 많이 가져가서 뭐하냐”면서 “요즘 애들 그런거 먹지도 않는다”고 혀를 찼다. 그러자 그는 “냉동실에 얼리면 괜찮다”면서 “고기도 못 먹이는데 이거라도 먹여야죠”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딱히 음식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현장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늘어나는 뱃살을 고민하면서도 야식을 끊지 못해 끙끙대는, 밥 먹으면서도 먹는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 식탐 많은 40대입니다. 책을 읽을 때 음식 묘사가 나오면 눈을 번쩍 뜨곤 했지요. 작가가 묘사한 음식 맛을 떠올리며 입맛을 쩝쩝 다시곤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식이 묘사된 문학작품은 음식 맛을 한참 상상하거나 직접 먹어보고 나서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던 탓에 한번에 죽 읽어낸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독서의 가장 큰 적은 식탐과 호기심이었다고나 할까요. [푸드립]은 ‘food+library’와 ‘food+drip’ 두 가지 뜻을 넣었습니다. 먹거리를 갖고 ‘썰푸는’ 장입니다. 책 속 음식 이야기와 함께 먹거리에 관한 온갖 수다를 떨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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