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지면에 <종교와 음식> 연재를 하면서 이런저런 자료와 책을 찾아보게 된다. 최근에 취재하다 발견한 자료에서 ‘승기악이’라는 이름을 만났다. 이게 뭘까.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가 남겼던 문헌에 이 단어가 나온다. 외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승기악이’, ‘가수저라’라는 음식을 언급하고 있다. 외래어를 당시의 말로 표현한, 가차자로 표기한 음식이다. 짐작하겠지만 승기악이는 스키야키, 가수저라는 카스테라다. 그가 “술과 음식을 가지고 서로 즐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고 한 것을 보면 당시 실학자들은 요즘과 같은 식의 푸디였을 것 같다. 적어도 조선 정조 때는 스키야키가 국내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인데 일본 음식 스키야키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조선통신사를 통해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키야키는 누구나 알다시피 일본요리다. 우리식 불고기와 전골 중간쯤이다. 자작한 육수에 갖은 야채와 재료를 넣고 고기를 구워, 사실 이 대목에서 설명이 애매하다. 굽는다? 데친다? 끓인다? 아무튼 고기를 익혀 그냥 먹거나 계란노른자에 찍어먹는 요리다. 야키는 일본어로 고기, 스키는 밭갈 때 쓰는 가래라는 농기구를 일컫는다. 즉 농기구에 구워먹는 데서 유래된 음식이라는 것이다. 에도 시대에 농부들이 밭을 갈고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가래의 금속 부분에 두부나 생선을 구워 먹은 데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또 한편에선 얇게 썬 고기를 일컫는 ‘스키미’로 만들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외교관이 쓴 <맛으로 본 일본>이라는 책에 스키야키에 대한 설명이 좀 나와 있다. “1832년 <고래고기 조리법>에는 스키야키란 오랫동안 써서 잘 닳은 깨끗한 쟁기를 장작불 위에 놓고 거기에 자른 고기를 얹어서 굽는 것을 말한다고 기록되어 있다”(72쪽).


대만 역사학자가 쓴 <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이란 책에서도 에도시대 후기 책인 <요리지남>에 나와 있는 구절을 설명하고 있다. “기러기, 오리 , 청둥오리, 사슴 등의 고기를 먼저 콩으로 만든 간장에 재워두고 사용하지 않는 농기구 가래를 불 위에 올려 달군다. 가래가 달궈지면 유자껍질을 올리고 그 다음 재워둔 고기를 위에 올려 굽는다. 고기가 갈색으로 변하면 먹는다.”


아무튼 에도시대까지 일본에선 육식이 금지됐던터라 고기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 스키야키 요릿집이 처음 생긴 때도 19세기 후반 개항도시 요코하마에서였다. 이후 일본 전역으로, 그리고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현재는 일본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즐기는 요리다. 서빙방법과 재료에 따라 엄청나게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당들도 있고 값싸고 서민적인 곳들도 있다. 만화 짱구만 봐도 짱구네 가족들이 종종 모여 앉아 먹는 음식이 스키야키 아니던가.


1963년 일본 가수 사카모토 규의 노래, 즉 아시아권 음악중 유일하게 빌보드 차트 1등을 차지했던 곡의 제목도 ‘스키야키’였다. 그런데 이 가사를 살펴본 적이 없어 스키야키에 관한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들은 바로는 일본어 노래 제목이 어려워 미국 사람들이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스키야키를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키야키>라는 제목의 일본 영화도 있다. 수감자들이 추억의 음식으로 먹방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를 잔잔히 그렸다. 중간에 스키야키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스키야키 레스토랑으로 도쿄 닌교초에 있는 이마한이 꼽힌다. 블로그 검색만 해봐도 마치 성지순례하듯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글을 남기는데 나이 지긋한 분들이 일본 전통방식으로 요리하며 서빙해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의 고기만 사용해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데 가 본 적이 없어서 설명은 잘 못하겠다. 1895년에 생겼다는 곳이다.


스키야키는 국내에서 다른 일본요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나 친근감은 덜한 편인 것 같다. 불고기나 샤브샤브 등 대략 비슷한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요리가 많아서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오랜 외식 경력에 웬만한 맛집은 찾아다니는 편인데도, 개인적으로 스키야키는 자주 먹는 음식으로 꼽기는 힘들다.


그런 스키야키가 몇달전 검색어에 오르고 뉴스에도 나온 적이 있었다. 바로 최순실 때문이었다. 그가 청와대에 드나들면서 각종 업무를 본 뒤 조리장들에게 자주 해달라고 한 요리가 바로 이 스키야키였다는 것이다.


회사와 가까운 광화문 근처에도 스키야키를 파는 맛집이 있긴 하다. 2006년까지 그래도 제법 갔던 곳인데 그 후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 그 식당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같이 갔던 사람들과도 아무 일 없었다.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배수아의 소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읽었을 때가.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른 이 작품은 서울 부암동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주변에 살고 있는 인간 군상들을 소설, 인터뷰, 보고서 형식 등으로 쓴 것이다. 인물별로 이야기가 끝까지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다. 10명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 특히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빈곤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의 단면들은 씁쓸하고 찜찜하고 우울하다.


부암동 스키야키 식당에서 파는 스키야키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소설 첫 챕터에 나오는 ‘마’다. 국립대학 교수였던 그는 소설의 표현을 빌자면 ‘유식한 밥버러지’다.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친 뒤 이혼을 하고 엄청난 거구인 돈경숙과 결혼해 살고 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 능력을 상실한 마는 돈경숙이 벌어오는 돈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 가쓰오부시로 국물을 낸 스키야키다. 생활능력도 없고 돈도 한 푼 없다. 교통사고로 모든 상황이 달라진 마이지만 식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키야키를 먹고 싶지만 돈이 없는 이들 부부. 그러다 마를 찾아온 전처에게서 돈을 ‘삥’뜯은 돈경숙은 마와 함께 스키야키를 먹으러 간다.


소설의 첫 부분인 이 챕터를 읽고 나면 희한하게도 입맛이 뚝 떨어지고 만다. 마치 내가 마와 돈경숙이 살고 있는 그 집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냥 뚝뚝 떼 놓고 보면 자극적이거나 심한 표현이 없음에도 전체적으로 영상을 생생히 떠올리도록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묘사가 가진 힘이다. 문제는 스키야키를 먹을 때 마다 자꾸 소설의 이 부분이 생각난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우울하게도. 난 이 소설을 읽은 뒤 스키야키를 거의 먹으러 간 적이 없다. 앞서 스키야키가 다른 일본 음식에 비해 덜 친숙하다고 말한 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설을 통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다고나 할까.


궁금하신가. 마와 돈경숙이 사는 집, 그리고 그들의 행색. 이렇다.


‘고양이 오줌 자국이 침대보에 얼룩덜룩했다.’


‘마는 겨드랑이를 슥슥 긁으며 귀찮아 죽겠다는 포즈로 일어나 앉았다. 돈경숙의 말대로 마는 알몸이었고 돈경숙은 속옷바람이었다. 마의 겨드랑이에서는 돈경숙의 사타구니 지린내가 풍겼다.’


‘마의 입가로 마른 침이 진득하게 번져갔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긴장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마가 나타내는 증상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마는 여전히 같은 포즈로 누워 입주변을 더러운 침 덩어리로 떡칠한 채 눈을 반쯤 감고 잠들어 있었다.’


‘돈경숙은 녹이 시커멓게 슨 싱크대 구석에 굴러다니는 행주를 찾아 마의 입술을 사납게 닦았다. 침 덩어리가 검은 얼룩을 남겼다.’


‘마가 머리를 긁자 기름진 비듬이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방구석에서 튀어 나온 고양이가 마의 비듬을 달싹거리면서 핥고 있었다.’


딱히 음식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현장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늘어나는 뱃살을 고민하면서도 야식을 끊지 못해 끙끙대는, 밥 먹으면서도 먹는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 식탐 많은 40대입니다. 책을 읽을 때 음식 묘사가 나오면 눈을 번쩍 뜨곤 했지요. 작가가 묘사한 음식 맛을 떠올리며 입맛을 쩝쩝 다시곤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식이 묘사된 문학작품은 음식 맛을 한참 상상하거나 직접 먹어보고 나서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던 탓에 한번에 죽 읽어낸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독서의 가장 큰 적은 식탐과 호기심이었다고나 할까요. [푸드립]은 ‘food+library’와 ‘food+drip’ 두 가지 뜻을 넣었습니다. 먹거리를 갖고 ‘썰푸는’ 장입니다. 책 속 음식 이야기와 함께 먹거리에 관한 온갖 수다를 떨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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