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김영희·김태호·나영석 등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스타 PD’다. PD는 무대 밖의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직접 무대에 올라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물론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폭발력이 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스타 PD로 여운혁(50)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처럼 얼굴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다. 순전히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폭발력만으로 그는 ‘전설’ 반열에 올랐다. ‘무릎팍 도사’ ‘라디오스타’ ‘무한도전’ ‘우리 결혼했어요’ ‘놀러와’ 등을 낳고 성공시키며 2000년대 예능왕국 MBC를 만들었다. 리얼버라이어티, 연애버라이어티, 1인 토크쇼, 집단 토크쇼 등 지금은 일반화된 예능프로그램 모델의 토대를 닦고 길을 냈다. ‘썰전’ ‘히든싱어’ ‘마녀사냥’ 등 JTBC 대표 예능의 산파도 그다.
소위 ‘꽃길’만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모험을 감행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2011년, 남부러울 것 없던 ‘정점’에 있던 그는 다들 입을 모아 “망한다”던 종편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2년도 채 되지 않아 JTBC를 종편 예능왕국으로 일궜다. 지난해 초 그는 다시 도전에 나섰다. 이번엔 연예기획사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콘텐츠제작사업부 사장을 맡은 그는 얼마 전 웹 예능 ‘빅픽처’를 성공시키며 새로운 예능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 한남동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우철훈 선임기자 촬영

-‘사장’이라는 직함으로 살아보는 것은 처음일텐데, 지난 1년이 어땠나.
“호칭만 사장이다. 경영을 하는 것은 아니고 계속 프로그램을 만든다. 방송사에 있을 때와 비교해 물리적 제작환경도 그렇고 인력적으로도 많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요인들이 큰 제약이 되거나 주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나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굳이 익숙한 곳을 떠날 필요가 있었을까.
“성공했을 때 보람이 더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방송사로 옮긴다는 것과 연예기획사로 옮긴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가치관에 관한 문제인 것 같다. 내 인생의 목적이 뭘까 생각해 보면 뭐가 되겠다거나 어떤 자리에 올라가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최대한 다양하게 살아보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것. 내겐 그게 제일 중요하다. 물론 그것 때문에 힘들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의식주가 해결되는 조건이라면 다른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방송국의 기득권이 해체되고 콘텐츠 제작의 패러다임이 변화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을 예측했나.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이 산업 자체가 어떻게 될지 예측도 못하겠고 잘 모르겠다. 오히려 모르겠으니까 이렇게도 해보자 하고 결심하게 된 것 같다. JTBC로 옮길 때만 해도 확신은 있었다. 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알아봐 준다는 자신감. 그러니 다른 후배들과 함께 팀을 꾸려 옮길 수 있었다. 당시엔 ‘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높은 연봉 받으며 옮겨다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미스틱으로 옮길 땐 혼자 왔다.
“JTBC로 갈 땐 확신이 있었으니 ‘꼬실’ 수 있었다. 방송사와 비교하면 이곳은 정말 작은 회사 아닌가. 망할 수도 있고(웃음).”
-MBC 입사 당시엔 미래의 이런 모습을 상상했었나.
“그땐 당장 눈앞에 떨어진 프로그램을 잘 만들겠다는 생각에 급급했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했었고, 그러면서 다양성에 대한 욕심, 욕망 같은 게 생기더라. 사실 남들 시선에 맞춰 사는 건 별 의미가 없지 않나.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자전거 페달을 계속 굴리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멈추면 오래 못 살겠구나 하고 말이다. 타고난 성격인 것 같다. 안주하는 것을 못견뎌 하는.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장점일 수도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네이버TV를 통해 웹예능 ‘빅픽처’를 선보였다. 원래 하려던 프로젝트가 엎어진 상황에서 섭외된 출연자들이 알아서 제작비도 충당하고 출연료도 챙겨야 한다는 황당한 상황과 그 해결과정이 방송의 주된 축이었다. 출연자 김종국과 하하가 느끼는 당혹스러움이 화면을 통해 여과없이 전해지며 시작된 낯선 이 프로그램은 밑도 끝도 없는 상황도 기발한 예능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PPL쇼라는 전대미문의 장르도 만들어냈다.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무릎팍도사’처럼 밑도 끝도 없는, 혹은 지극히 뻔한 상황에서 시작돼 발전한 예능프로그램은 그의 주된 특기였다.
-돌발적인 상황까지 예측하고 세밀하게 기획하는 건가.
“난 원래 정교하게 계획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처음에 어떤 생각을 갖고 시작했다가도 중간에 방향전환을 잘 한다.”
-기획 의도만 봤을 땐 반대의견이 많을 수도 있겠다.
“‘무릎팍 도사’도 그랬다. 기획 의도는 ‘일대 일 토크’ 한 줄이다. 얼마나 단순하고 재미가 없겠나.”
-그 의도를 풀어가는 비결이 뭔가.
“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출연자가 어떻게 놀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느냐가 관건이다. 그들이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쪽으로 방향과 포맷을 바꾸는 거다. 내 방식의 정반대에 있는 프로그램이 ‘소사이어티 게임’이다. 그런 프로그램은 연출자의 상당한 고민과 연구가 바탕이 된, 굉장히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런 쪽은 잘 못한다.”
-그래도 항상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었다.
“트렌드를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않는다. 난 트렌드를 못 본다. 뭐가 유행이고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그 이유를 알고 좇으려다 보면 말려들게 된다. 난 내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과 재미에 충실하고 솔직하다. 진짜 웃긴 건지, 내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계속 물어본다.”
-그런 자신감이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힘인가. 
“내 장점 중 하나가 비교를 안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뭘 하는지 잘 모른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 감정과 욕구에 충실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나도 프로그램을 하면서 실패하고 ‘쪽팔렸던’ 적도 많다.”
-‘쪽팔림’ 같은 감정에 초연할 것 같다.
“쪽팔리지만 잘 참는다. 보통, 사람들은 평범하게 노력하면서 남다른 결과나 대접을 바란다. 비범하고 남다른 노력을 해야 적어도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가끔 어떤 노력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나의 ‘남다른 노력’이라고 한다면 쪽팔림을 참는 것이다.”
-일반적인 멘탈로는 쉽지 않다. 비법이 있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나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누군가의 ‘미친 짓’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게 놀림거리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나는 죄를 짓는 게 아니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거다’라고 말이다. 쪽팔림 때문에 뭔가를 못한다는 것은 인생에 후회를 남기게 마련이다. 생각해 봐라. ‘그때 안 했어야 하는데’와 ‘그때 할 걸 그랬어’ 하며 후회하는 사람들. 후자가 훨씬 많다.”
-주로 어떤 쪽에 재미를 느끼나.
“요즘 와서 생각해 보니 군대 가기 전의, 사춘기의 찌질한 남자아이들 정서와 내가 잘 맞는 것 같더라.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뒤에서 낄낄대는, 지극히 평범하면서 하등 쓸데없는 짓만 골라 하고 시시덕거리는 그런 정서 말이다. ‘아는 형님’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딱 그런 정서가 드러난다. ‘무릎팍 도사’만 해도 그렇다. 게스트를 초대해 놓고 던지는 질문들이 정말 찌질했었다. 그런 부분에 대중들이 호응했던 것 같고.”
-현재 기획 중인 것은 뭔가.
“몇 가지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인터뷰 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오늘까지 회의를 마무리하고 내일 녹화에 들어가서도 계획을 바꾸는 편이라 그렇다.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나와는 다른 남들의 생각과 마음에 대한 관심이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지,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는 왜 이렇게도 차이가 있는지가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다.”
-요즘 고민하는 부분은 뭔가.
“인력 문제다. 콘텐츠를 혼자서 만들 수는 없으니까 사람을 뽑아야 한다. 채널에 있는 것과는 환경이 달라 많은 고민이 된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하는데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