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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스트레이트 김의성 "이 나이대에 찾아온 기회"

by 신사임당 2018. 2. 9.

 

 

MBC의 새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 예고편을 보는 순간 잠시 헷갈렸다. 이것은 야심찬 탐사보도 프로그램인가, 아니면 신개념 시트콤인가. 거침없는 소셜테이너로 꼽히는 배우 김의성과 기자 주진우의 결합. 클리셰와 발연기의 ‘콜라보레이션’에 손발이 오그라들어 없어질 것 같았지만 마음 한편에선 묘한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MBC 재건의 상징적 프로그램이기도 한 ‘스트레이트’는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하나인 그와 주진우 기자가 진행자로 나서며 7명의 보도국 기자들이 주요 사안을 심도 있게 취재해 전달한다.

김의성(52)을 지난 1일 만났다. 덮어놓고 먼저 “이런 발연기가 웬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뭔가 좀 이상하게 웃기는 걸 하고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오래도록 이어질 흑역사가 되리라는 생각은 든다”며 웃었다.


-진행자로 나서게 된 이유는.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다. 친하게 지내던 MBC 구성원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로 위로하며 응원해 왔다. 보도국이 정상화되면서 제대로 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함께 하면 재미있겠다고 이야기하던 차에 진짜 해야 할 상황에 몰린 거다. 조금 주저된 부분도 있긴 했다. 그래도 내가 돕고 거들 수 있으면 해야겠다 싶었다.”

-어떤 면이 마음에 걸린 건가.

“배우로서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자연인으로서 나의 특정한 부분, 혹은 하나의 얼굴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부분이 너무 고착화된다면 배우로서의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고. 하지만 내 결론은 배우라는 것이 내 정체성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배우로서의 삶이 소중한 만큼 자연인인 내 인생도 중요하다. 이 나이대에 이런 멋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과 소신을 자유롭게 개진해 왔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문제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더 자유롭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본다. 배우이기 전에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다. 그 권리가 활성화될 때 사회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처음 트위터를 시작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물론 내게도 문제는 많았다. 소위 ‘사이다’라고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을 돌이켜보니 반성이 되더라. 대중들의 반응이 주는 자극에 중독되어 조금 더 강한 자극, 조금 더 강한 표현을 찾기도 했다.”

-말 한마디가 확대·재생산되거나 때로는 왜곡되면서 불편함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배우라는 이유로,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에 내 의견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된다. 그 때문에 그런 불편함은 치러야 할 일종의 세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진의가 전달되거나 대중들과 뜻을 나눈다기보다는 특정한 부분이 왜곡된 방식으로 급속히 소비되면서 실망스러웠다. 그러다보니 최근 1년간은 자연스럽게 트위터와 멀어졌다.”

-서구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유명인들, 특히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이 왠지 제약 받아 왔다.

“옳은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 자체가 무결해야 한다는 그런 이상한 분위기가 유독 우리 사회에서 강했다. 그런 식으로 얽어매면 누구도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있잖은가. 그런데 이걸 국가권력이 개입해 남용하고 앞장서 프레임을 만들어왔다는 것이 속상하고 통탄할 노릇이다. 내가 공자님이어야만 공자님 말씀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이상하고 비뚤어졌고 부족한 점도 많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옳은 소리도 할 수 있는 거다.”

-자연인 김의성은 어떤 사람인가.

“주변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적당한 미덕과 단점이 있고, 부끄러운 과거도 있고.”

-고아성처럼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후배 배우들과도 친구처럼 지낸다.

“나이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다. 태어나는 순서에 따라 뭔가가 결정된다는 건 좀 이상하고 불합리하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는 기본적으로 친구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은 내가 거친 막말을 해서 좋다고 한다. 소위 ‘팩트 폭력’이라는 것도 잘 하고 막 대하기도 한다. 맷집 없는 친구들은 날 멀리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어디 한 번 해봐라’ 이러는 것 같다.”


한때 한국영화는 배우 이경영이 출연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분류됐다. 지금은 김의성이 나오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 분류될 만큼 그는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다. 주로 강렬한 악역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는 그는 1987년 극단 한강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그의 주연 데뷔작. 1990년대만 해도 그는 유약하고 지적인, 혹은 감성적인 이미지로 촉망 받던 배우였다.

-강한 악역 이미지가 쌓이는 것이 고민스럽지는 않나.

“그럴 수도 있지만 득이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 이미지를 뒤집어서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자산이 되는 거고, 그것을 활용하려는 감독들을 만나 새롭고 재미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강철비’ ‘1987’ 등 최근작은 악역이 아니었다.

“조만간 개봉하는 ‘골든 슬럼버’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아주 매력있는 역할이다.”

-이부영 역할을 한 ‘1987’ 촬영은 어땠나

“내 젊은 시절의 추억과 강하게 얽혀 있는 작품이다보니 꼭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처럼 사명감이나 역사의식을 갖고 임한 건 아니다. 개런티도 제대로 달라고 했다.”

-많은 시나리오가 올텐데 주로 어떤 작품들을 거절하나.

“안일하고 게으른 캐스팅이다. ‘부산행’ 이후 그런 제안이 물밀듯 들어왔다. 쉽게 말해 ‘왜 이 많은 돈을 쓰면서까지 나를 캐스팅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배역이다. 부지런히 찾아보면 훨씬 잘할 수 있는 숨겨진 배우들이 있는데, 그런 노력 대신 손쉽게 이미지에 기대는 역할들 말이다.”

배우로서 황금기라 할 만한 서른다섯부터 마흔다섯 살까지의 그의 시간엔 필모그래피가 없다. 연기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영화계를 떠나 10여년간 베트남에서 드라마 제작사업을 했다. 그가 연기에 복귀한 것은 2011년 홍상수 감독의 ‘북촌 방향’을 통해서다.

-홍 감독이 잊고 있던 연기 열정을 되살린 건가.

“인생의 방향이 바뀔 때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돼 작용하게 마련이다. 2010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 일단 사업이 너무 어려워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론 아버지가 암투병 중이셨다. 주변에 안 좋은 일도 많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에 홍 감독님의 ‘북촌방향’을 찍게 됐다. 연기를 다시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저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다. 감독님은 ‘한국 배우 중에 너 같은 스타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밥은 먹고 살 거다’라며 다시 배우를 하라고 하시더라. 막연히 그렇게 있었는데 몇 달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재미있게 살아라’는 유언을 남기시면서. 그 말씀을 곱씹다 다시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영화학도 시절에 내 작품(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봤던 중견감독들이 꽤 많더라.”

-배우로서 황금기를 놓친 아쉬움이 많이 들었겠다.

“지금은 나이 때문에 할 수 없는 재미있는 경험과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다. 아마 내가 쉼없이 연기를 한 30년차 배우라고 한다면 지금처럼 재미있고 행복한 생활은 아닐 것 같다.”

-30대 때 연기를 대하던 마음과 지금은 많이 다를 것 같다.

“그 시절엔 연기를 한다는 자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 작품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함께 했던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나를 보면 뒤늦게 데뷔한 7년차 늦깎이 배우인 것 같다. 이 나이인데도 조금씩 연기가 늘고 있는 것,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다. ‘글줄 읽은 것 같은 나쁜 놈’ 이미지로 일종의 틈새시장도 개척하고 있는 것 같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나.

“전혀 아니다. 그땐 막연히 성공한 삶을 꿈꿨던 것 같다.”

-어떤 학생이었나.

“한마디로 공부는 잘하는데 재수없는 성격이었다. 건방지고 얄미운 구석도 많고. 역사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성적이 너무 잘 나왔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이다)”

-듣고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애착을 갖는 캐릭터가 ‘소수의견’의 홍재덕 검사다. 실제로 그 캐릭터는 내 본성과 가장 많이 닮았다. 내가 제일 잘난 줄 알고 나밖에 모르고, 내 인생을 합리화하려는 그 성격이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한때 고시를 볼까도 생각했으니, 여차하면 요 근래 뉴스를 장식하는 사람들의 궤적과 비슷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경계하고 돌아보려 노력한다. 물론 내 게으름에 지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 옛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나더러 사람됐다고 한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