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파리에 유명한 공동묘지가 있다.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페르 라세즈. 쇼팽을 비롯해 오스카 와일드, 에디트 피아프, 모딜리아니, 이사도라 던컨 등 19세기 이후를 빛냈던 명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명사들의 숫자 면에선 팡테온 성당이 더 압도적이긴 하다. 볼테르, 루소, 에밀 졸라, 위고, 생택쥐페리, 퀴리부인 등등 70명 이상의 위인전 수준 인물이 있는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개별 인물의 면모나 카리스마에서 봤을 때 앞서 말한 묘지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압도적인 곳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이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로시니, 그리고 단테다. 이름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초현실적인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흥분이 밀려온다. 


 


산타크로체 성당은 피렌체 관광 우선 순위에서는 두오모나 우피치미술관 등에 밀리는 편이다. 그 유명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지는 않는 것 같다. 사실 나도 피렌체에 가기 전까지 산타크로체 성당에 그런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오히려 산타크로체 성당이 유명한 것은 스탕달 신드롬의 바로 그 장소이기 때문이다. 

 


스탕달 신드롬은 어떤 예술작품을 보고 강렬한 감동이나 흥분에 빠져 호흡곤란, 현기증 등을 느끼는 증세를 말한다. 말하자면 미술품과 같은 걸작 앞에서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다. 스탕달이 바로 그런 증세를 느꼈던 곳이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이었다. 그래서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스탕달은 이 성당에서 무엇을 봤을까. 그가 보고 강한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작품은 르네상스 화가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라는 작품이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그 작품은 없다. 로마 국립고대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위키백과

 


아무튼 산타크로체 성당을 반드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없던 상태에서 해가 진 피렌체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녔다. 그런데 저 멀찍이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웅장한 무언가가 보였다. 언뜻 봤을 때는 성당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빈 쉔브룬 궁전 정원 언덕에 서 있는 글로리에테처럼 기념 조형물인줄 알았다. 성당 앞에 넓은 광장에는 반짝거리는 장식물로 치장된 노점이 줄지어 있었다. 유럽의 겨울철을 밝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이었다. 마켓을 대충 둘러본 뒤 성당 바깥을 구경하는데 야경이 화려하고 멋졌다. 그 앞 계단에는 관광객, 혹은 놀러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당연히 성당 문은 닫혀 있었고. 노점에서 람프레돗토를 하나 사 먹으면서 성당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상인은 갈릴레이와 미켈란젤로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순간 깜짝 놀라 몇번을 더 물었다. 더 말해 무엇하리. 내일 아침에 꼭 와봐야겠다 싶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봤더니 산타크로체 성당은 프란치스코회의 주요 성당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곳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 바로 옆에 프란치스코회 교육회관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튿날 왔더니 입장료가 8유로다. 

베아트리체 첸치의 그림은 없지만 많은 미술작품이 성당 내부에 전시돼 있었다. 조토의 프레스코화와 도나텔로의 조각작품 등 뛰어난 작품들이 상당하다. 별도로 연결된 채플에는 황금빛이 감도는 회화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상당수는 우피치미술관에서 본 것들이다. 나도 스탕달 신드롬을 느낄만한 작품을 만나야지... 했는데 딱히 그런 상황은 맞이하지 못했다. 내 마음에 너무 많은 먼지가 끼어 있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여기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미술작품이 아닌, 르네상스를 뒤흔들었던 천재들의 무덤? 묘지?가 보고 싶어서였던게 아닌가. 그래 무덤에 집중하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갈릴레이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을 오른 손에 들고 왼손은 공처럼 생긴 원형의 물체 위, 지구본인가? 아무튼 그 위에 올린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에 있는 천체 모양은 그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 4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두 여신은 각기 천문학과 기하학을 상징하는 분들이라고 하는데 별로 친하고 싶지는 않다. (문송합니다)



 

원래 갈릴레이는 사망 당시 이 성당에 정식으로 묻히지 못했다고 한다. 로마 교회가 지지하던 천동설을 거슬렀기 때문에 그가 성당에 묻히는 것에 대해 교황청이 불쾌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묘비도 없이 ‘대충’ 묻혀 있었는데 그가 사망하고 95년이 지난 1737년에야 그의 유해가 성당 내에 미켈란젤로 묘 맞은 편으로 이장됐다는 것이다. 당시 추종자들이 이장 과정에서 갈릴레이의 오른손가락 뼈 3개, 척추뼈, 치아를 각기 1개씩 떼내가는 엽기적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사라졌던 손가락뼈가 2009년 다시 발견됐다는 뉴스가 외신에 나온 적이 있다. 이 뼈는 갈릴레오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단테

 

실제 단테의 유해는 이곳에 없다. 가묘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성당 앞에 단테의 조각상이 있다. 원래 이곳에서 태어났으나 정치적 격랑에 휘말려 20년 가까이 고향을 떠나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죽음을 맞이한 곳도 라벤나에서다. 그래서 그의 진짜 묘는 라벤나에 있다. 뒤늦게 피렌체 사람들이 라벤나에 있는 단테의 묘를 모셔오려 했지만 라벤나에서 거부했다고 한다. 때문에 가묘를 성당안에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단테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신곡>의 작가라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이탈리아인에게 단테의 위상은 단순한 작가가 아니다. 현대 이탈리아어의 근간을 확립한 자긍심을 주는 인물이라고.... 하는 것을 피렌체에 있는 단테 생가 앞을 어슬렁거리다 그곳에서 단체 관광을 하던 무리 틈에 잠시 끼어 가이드가 하는 설명을 ‘도강’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세종대왕 같은 존재인가보다. 

 

단테 생가 . 박물관이 내부에 있다.



로시니 

 

파리에서 임종한 로시니는 단테와는 반대의 경우다. 파리 페르 라세즈에 있던 그의 유해가 나중에 산타크로체로 옮겨졌다. 대신 페르 라세즈에는 그의 빈 무덤이 남아 있다. 음악가로서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작품은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놓고 화살을 쏜 이야기의 오페라 <윌리엄텔>, 그리고 <세비야의 이발사>가 있다. <윌리엄텔>은 사실 서곡밖에 안들어봤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모짜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프리퀄 정도로 보면 될 듯. 

 



로시니 하면 음악가로서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감흥 보다는 미식가로서 그가 보여줬던 면모에 대한 부러움이 앞선다. 바로바로 ‘투르네도 로시니’

라고 하는 세계 최고급 메뉴.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음식이라고 불리는 이 요리는 그가 당대 최고의 요리사였던 마리 앙투안 카렘과 합작해 나온 것인데  쇠고기 안심에 푸아그라, 송로버섯까지 더해졌다. 세계 3대 진미의 2가지에 쇠고기까지 한꺼번에 먹겠다는 탐식의 정점이랄까. 

 

투르네도 로시니/ 위키백과



아무튼 그는 모짜르트에 버금가는 천재적 재능을 갖고 태어났고 스무살 전인 십대때부터 놀라운 재능을 보여줬지만 음악을 만드는 일을 일찌감치 접었다. 대신 음식에 빠져 메뉴도 개발하고 미식가로 명성을 날렸다. 인생 후반기를 파리에 정착해 보낸 이유 역시 프랑스 음식 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천장화를 올려보는 순간 온몸을 압도해오는 아찔함. 이런게 스탕달 신드롬일까 싶은 느낌이었다. 이어 베드로성당의 피에타까지. 미켈란젤로의 천재성, 그 재능이 빚어낸 수많은 작품 중 단 두개를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넉다운이 되고 만다. 로마 곳곳 그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무수한데 하나같이 천재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감탄스러운 것 밖에 없어서 나중엔 좀 무덤덤해지는게 아쉽다. 



 

젊은 시절 피렌체에서 공부하고 지내면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고 성장한 그는 로마에서 로마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다 눈을 감는다. 90세 가까이 살았던 그는 죽기 3, 4일 전까지 작업을 했다고...  그의 시신은 피렌체 시민들이 ‘훔쳐서’ 산타크로체 성당에 모셨다고 한다. 묘비의 흉상아래 세 여신은 회화와 조각, 건축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누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ㅠㅠ


 


마키아벨리  

 


군주론, 모던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처세나 권모술수에 관한 거의 모든 이론에 등장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능수능란한 처세와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인 것 같다. 그의 묘비명이 워낙 유명한지라 유심히 봤다. 하지만 본다고 뭘 알겠나. 까막눈인 것을. 그리고 다른 묘비와 달리 그의 모습이 아닌 여신(?)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이 묘비 중심에 놓인 이유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성당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고 ㅠㅠ, 그래서 단체관광객이 오면 도강이라도 할까 싶어 서성이는데 계속 중국, 이탈리아 단체팀만 있었다. 

 



아무튼 마키아벨리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어떤 찬사도 그 위대한 이름에 합당하지 않다.” 어마어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