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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과 탐식

피렌체에서 닭대가리를 맛보다

by 신사임당 2018. 12. 30.




피렌체 하면 뭐가 생각나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두오모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붉은 빛의 아름다운 전경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또 슬픈 사랑의 도시라는 수식이 으레 따라붙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특정한 영화가 주는 잔상과 인상일 뿐, 그런 정보 없이 보면 오히려 지적이고 세련된 풍모가 먼저 다가온다. 이름 모를 골목길과 건물들은 로마처럼 압도적이지 않고 소박하지만 우아한 기품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도시다. 개인적으론 사랑과 관능이 물씬 느껴지는 도시는 베네치아다. 시오노 나나미가 베네치아, 로마, 피렌체를 배경으로 쓴 3부작 소설(주홍빛 베네치아, 은빛 피렌체, 황금빛 로마) 때문이다. 잡으면 한눈에 읽히는 순정만화같은 소설이다. 


 

어디를 가든 항상 음식이 가장 먼저 준비하고 공부하는 대상이다보니 내게 피렌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풍성하고 매혹적이라는 토스카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피렌체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셰프 파베오 피키의 레스토랑은 오래 벼르고 별렀던 곳이다. 몇년전 그의 책 <피렌체를 맛보다>가 국내에 번역된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의 고향과 역사, 사람들, 음식들, 그리고 ‘핫 스팟’에 대해 잔잔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개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책 상당분량을 할애해 피렌체의 전통 음식과 레시피를 설명한다. 피렌체의 흥취가 물씬 느껴졌지만 그래도 맛은 상상이 아닌, 직접 입으로 확인해봐야 한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지역 토스카나주의 주도다. 토스카나 지역의 아름다움과 기품에 대해서는 괴테도 <이탈리아 기행>을 통해 찬양했다. 토스카나 음식의 특징은 재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준비과정도 간결하다. 소스도 많이 쓰지 않는다. 요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재료의 품질과 요리 방식은 깐깐하게 따진다고 한다. 

 


토스카나의 대표적인 요리로 꼽히는 것이 피렌체의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이다. 즉 피렌체식 스테이크. 또 수프보다는 걸쭉하고 죽보다는 묽은 ‘리볼리타’도 알려져 있다. 일명 ‘곱창버거’라고 불리는 피렌체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 ‘람프레돗토’ 빼놓을 수 없다. 람프레돗토는 거리 곳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스테이크를 하는 곳도 많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달오스떼는 ‘한국인의 성원에 힘입어’ 3호점까지 냈다고 한다. 한국인이 가면 15% 할인도 해준다. (대다나다!!!)


 

이런 요리들도 당연히 먹어봐야 겠지만 파베오 피키의 레스토랑은 첫순위였다.

구글을 찾아봤더니 그는 이탈리아 국영TV에서 쇼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해왔던 셰프테이너다. 관련 기사들도 보였다. 

1979년에 그가 피렌체에 문을 연 레스토랑 ‘치브레오’는 오랜 시간 피렌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곳이라고 한다. 치브레오(cibreo)라는 이름으로 레스토랑, 트라토리아, 카페, 그리고 극장식문화공간 4곳이 있다. 레스토랑이 격식을 갖춘 정찬이라면 트라토리아는 그보다는 캐주얼한 식당이라고 한다. 그의 아내는 배우인데 극장식 문화공간을 연 것은 그의 아내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토스카나 전통을 새롭게 창조하고 이어간다는 그런 평가도 어딘가에서 봤다. 홈페이지에는 토스카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변화무쌍한 요리를 선보인다고 되어 있다. 

 


<피렌체메이드인토스카나>라는 사이트를 검색하다 발견한 것은 한 요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집필자도 파비오 피키였다. 이름하여 ‘Stuffed chicken necks’. 사진만으론 뭔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한번 찾아가봐야지 하고 기억 한 구석에만 넣어뒀다 이번 겨울에 떠나기전 용케 기억이 났다. 

 


그의 식당 4곳중에서는 트라토리아 치브레오로 가기로 했다. 레스토랑과 트라토리아는 주방을 공유한다. 재료나 요리의 퀄리티는 그래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물론 그들에게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트라토리아 치브레오로 가기로 했다. 예약을 하려고 보니 예약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식당 4곳이 몰려 있는 곳은 산암브로죠 시장 (Mercato SantAmbrogio) 근처다. 두오모 광장, 시뇨리아 광장, 중앙시장 등이 걸어서 서로 5분 거리 내에 붙어 있다면 산암브로죠 시장은 동쪽으로 좀 떨어져 있다. 중앙시장에서 한 15분 정도 더 걸어가야 한다. 중앙시장이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시장이라면 산암브로죠 시장은 전형적인 동네사람들 시장이다.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오후 1시면 파장분위기다. 12시50에 문을 연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해서 밖에서 20분가량 더 기다렸다. 그 닭대가리 요리가 있을까 궁금했다.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을 내준다. 있다. ‘stuffed chicken neck !!’. 

“이거 어떤가요?”

웨이터에게 물었다. 좋다고 하지, 그럼 별로라고 할까. 메인 디쉬 4개 중 하나인데... 

그래서 또 물었다. 

“토스카나식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애피타이저는 뭐가 좋을까요.”

그러자 웨이터는 치킨 리버 파테를 추천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부 치킨이니 ‘stuffed rabbit’은 어떠냐고. 물론 그것도 먹어보면 좋겠지만 오랫동안 궁금했던 치킨넥을 포기할 순 없어서 원래대로 시키기로 했다. 그러자 웨이터가 다시 설명했다. 

“이거 머리까지 다 나오는거예요.”


토종닭 백숙 먹을 때 닭머리까지 다 삶아져서 나오는 것을 종종 보았던 터라 뭐 특별할 거 있을까 싶었다.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했다. 

 

먼저 치킨리버 파테가 나왔다. 어느 정도 상상하던 맛이다. 파테라는 것이 고기나 여러재료를 으깨서 뭔가에 발라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순대 간 먹을 때 느껴지는 약간의 그런 간 맛과 다른 향신료와 재료맛이 살짝 느껴지는데 텁텁함 없이 무난했다. 빵에 열심히 발라먹고 있는데 드디어 두둥~ 나왔다. 

 

헉!~!  저게 뭔가. 

음... 그야말로, 정말로 닭의 머리가, 머리 뿐 아니라 부리와 벼슬까지 펄펄 살아움직이듯 휘날리며 나온다. 


경우에 따라 혐짤로 느낄 수도 있으므로 주의를 당부한다. 첫눈에 사진을 봐선 뭔지 언뜻 감이 오지 않을 수 있어서 여러 각도에서 찍어봤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요리는 닭 목 부분의 피부가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확장시켜서 그 안에 다양한 재료를 채워넣은 뒤 그대로 익혀서 잘라내 서빙한다. 오징어 순대처럼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징어 순대에서 겉을 둘러싼 오징어는 두께가 0.5미리 이상은 될 정도로 오징어가 느껴지지만 이 닭요리의 겉을 둘러싼 닭 목 껍질은 0.1미리의 지름이 채 될까 말까하다. 속은 송아지고기, 리코타치즈, 파마산치즈, 빵, 계란, 육두구, 후추 등으로 채워진다. 모양이 흩어지지 않으려면 냉각시켜 차가운 상태로 서빙해야 한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피렌체메이드인토스카나>라는 사이트에서 본 레시피다. 그렇지만 실체적으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모양을 보니 조금 이해가 됐다. 

 

마요네즈와 레몬, 올리브유 등으로 만든 상큼한 소스에 찍어 맛보니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은 좋았다. 하지만 눈앞에 당당하게 있는 닭의 머리 앞에선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맛을 느끼고 있는건가. 비위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많이 약해진건가. 

 


넓적하고 둥글게 잘라진 고기를 거의 먹어가는데 웨이터가 와서 물었다. 

 

“어떠신가요”

“음. 맛있어요. 굉장히 exciting한 요리네요.”


그러자 웨이터는 웃으면서 닭 머리를 가리켰다. 

그래서 “이건 먹을 수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그는 세워진 닭의 머리를 옆으로 눕혔다. 

닭 목이 큼직하고 둥글게 확장된 상태로 속이 채워진 모양이 보였다. 

이미 레시피를 봤으면서도 새삼스럽게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 



 

‘아, 저렇게 목을 채워 잘라낸거구나.’

그럼 이건 대충 잘라서 먹더라도 저 닭 벼슬, 저건 어쩔거야.... 

닭벼슬 부분을 가리키며 물어봤다. 


“이건, 이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먹을 수 있나요?”

그러자 웨이터는 살짝 짓궂은 표정으로 말한다. 

“그럼요. 저것도 다 먹을 수 있어요.” 

“어떤 맛인가요?”

 

그러자 웨이터는 활짝 웃으며 말한다. 

“먹을 수 있는거고 먹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먹으려고 시도한 적이 없어요.”

 

저 말을 듣고나니 시도할 의욕이 사라졌다. 포크로 벼슬을 건드려봤는데 포크를 통해 전해지는 촉감, 그 느낌에 왠지 기분이 오싹해왔다. 웬만한 음식은 다 도전해보고 그 맛을 체험해보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이날은 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이 먹으면 비위가 약해지는건가...


아무튼 그 웨이터 다시 와서 물어본다. 시도해 보지 않느냐고.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고 하니 그는 눈을 찡긋한다. "잘 생각했어요"

아니 어쩌라는 거냐고... 

 

레스토랑 치브레오와 트라토리아가 나란히 있다. 그 앞엔 람프레돗토를 파는 푸드트럭이 있어서 기다리는 내내 내장 삶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주 역겹거나 하진 않다. 한국 시장에 가면 순댓집이나 선지해장국집에서 나는 음식냄새와 비슷한 편이다. 사진 오른쪽편에 있는, 즉 왼쪽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산암브로죠 시장과 연결된다. 오른쪽 끝의 건물에는 치브레오 극장식 문화공간과 카페 치브레오가 있다.



앞으로 피렌체에서 치브레오에 가실 분이라면, 혹시 저 메뉴의 닭벼슬 맛이 궁금하시다면 꼭 알려주십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