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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힐링

테제 신한열 수사를 만나다

by 신사임당 2017. 8. 17.

 

 

울타리도 국경도 없다. 직급도 교파도 없다. 어떤 기부금과 후원도 받지 않으며 개인 소유도 없다. 대신 함께 땀 흘려 일하고, 함께 소유한다. 존중과 신뢰로 서로를 끌어안아 세상을 치유하는 공동체.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에 있는 ‘테제’다. 이상적인 공동체에 가까운 이곳을 향해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테제는 1940년 스위스 개신교 집안 출신의 로제 수사가 시작한 초교파적 그리스도교 수행 공동체다.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 구분 없이 세계 30개국에서 온 80여명의 남성 수도자가 함께 산다. 테제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청년들의 ‘성소’가 되면서다. 매주 세계 각지에서 목마르고 배고픈 젊은이 수천명이 이곳을 찾아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모색한다. 하루 3차례 공동기도를 제외하고는 종교적인 강권도 얽매임도 없다. 이곳의 수사들은 그렇게 찾아오는 젊은이들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기도할 뿐이다.

 

김창길 기자 촬영

 

신한열 수사(55)는 이곳의 유일한 한국인 수사다. 지난 6일 그를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지난 4월부터 중국과 대만, 홍콩 등지에 머물며 아시아 젊은이들을 만나 ‘신뢰의 순례’를 이어오던 그는 5일 귀국해 7일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가 테제에 발을 디딘 때는 1988년이었다. 대학(서강대)을 졸업하고 2년간 직장생활을 한 뒤였다. 고교시절 우연한 기회에 봤던 테제에 관한 슬라이드 필름 속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그는 대학에서 한국에 파견된 테제 수사를 처음 만났다. 영문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던 안토니 수사(한국명 안선재)였다. 안토니 수사는 고은 시인의 작품을 영어권에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느님이 바라는 삶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어요. 나고 자라온 환경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지내 보고 싶었지요. 그때 안토니 수사가 테제행을 권했습니다.”

처음엔 3개월간 머물 요량이었지만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종신서약을 했고 어느새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왜 테제의 수사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굳이 말하자면 마음의 평화와 그윽한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테제는 해외에도 수사를 파견하지만 일반적인 선교의 모습처럼 개종을 권하거나 적극적인 포교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신 수사는 “그저 그들과 어울려 함께 산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그냥 사는 거예요. 사소한 도움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 속에서 어울려 함께 사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거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신자를 확보하느냐는 것이 판단기준이 될 순 없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규모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갖고 사회로 스며들어야 합니다.”

흔히 수도원 하면 세속과는 단절된 삶을 생각하기 쉽지만 테제는 중보기도와 곁에 머무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로제 수사가 테제를 시작하게 된 것은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분열하고 반목하는 상황에서 화합과 일치를 위해서였다. 나치 학살을 피해 온 유대인, 종전 후 독일군 포로를 끌어안았던 테제는 현재 난민 신분으로 유럽 땅에 발을 디딘 무슬림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공동기도시간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제목을 놓고 기도합니다. 칠레의 군부 독재에 희생된 사람들, 동티모르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 등 다양하지요.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기도 제목으로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 역시 1980년대의 정치·사회적 소용돌이에서 분리된 삶을 살 수 없었다. 1987년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씨와 같은 하숙집에서 살기도 했던 신 수사는 졸업 후 천주교 매체 ‘생활성서’ 기자로 일하며 사회에서 고통받고 소외돼 있는 이들에게 집중했다. ‘한국 사회에서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지, 프랑스에 머무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안일한 결정 아닐까’ 하는 고민으로 오랫동안 괴로웠다는 그는 “역사의 결실을 만들어낸 많은 이름 없는 희생자들에게 부채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수없이 많은 청년들을 만나는 수도자로서 삶에 가장 중요한 원칙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앎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배척,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먼저 손 내밀고 이해에 나서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테제에 모이는 사람들은 제각각이지만 다들 평생을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그것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한 기적이지요.”


신 수사는 지난 5월 테제 공동체에서의 30년 생활을 담은 <함께 사는 기적>(신앙과지성사)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