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최근 제주를 끝으로 소극장 전국투어라는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1년간 12개 도시를 돌며 66회 공연을  끝냈습니다. 1년간 12개 도시를 돌며 66회의 공연을 하는 동안 2만8000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소극장 공연으로 전국투어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전 좌석을 매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공연으로 기록될만 합니다. 수만석의 좌석을 한번에 매진시키는 것은 아이돌 가수들에게나 해당되려니 하게 마련이죠. 20년 이상 활동해 온 뮤지션들 중 꾸준한 성과를 내며 이같은 기록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뮤지션은 극소수라는 것이 우리 가요계의 현실입니다. 

쉽지 않은 도전을 지속하며 꾸준히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는 가수로는 이적과 함께 김동률이 꼽힙니다. 두 사람은 가요계에서 서로 조응하는 이름입니다. 음악적 스타일이나 성향, 활동방식 모두 확연히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20여년간 구축하고 있다는 점, 지적인 이미지에서 나오는 신뢰감 등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실제 두 사람은 ‘카니발’이라는 팀으로 함께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람회 활동 당시.. 왼쪽이 김동률. /경향신문 우철훈 기자



■데뷔 

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가요계 정서를 주도하던 발라드 가수들의 활약, 그리고 서태지의 등장. 댄스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가 황금기를 만들었던 90년대 중반 이들은 조용히 등장해 대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김동률은 ‘전람회’라는 이름의 듀엣으로 1993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타며 데뷔했고 이적은 ‘패닉’이라는 팀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김동률이 스트링 등 클래시컬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고급스러운 발라드에 천착했다면 이적은 록을 기반으로 펑크, 파격적 리듬 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사진제공 뮤직팜



■창법

두 사람 모두 상당히 유니크한 창법의 소유자입니다. 모창 가수들에 의해 불리는 노래들 중 이들이 부른 노래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중저음부터 폭발적인 고음까지 두루 오가는 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래를 소화합니다. 전형적인 보컬리스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나 이렇게 열창해’ 하는 느낌을 주는 폭발적 테크닉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의 보컬 능력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동률은 특유의 비브라토가 더해진 크림같은 목소리로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합니다. 이적은 마치 성능좋은 초고속열차의 엔진같은 장쾌함과 파워풀한 성량으로 청자를 압도합니다. 




패닉으로 데뷔해 활동하던 1995년/ 경향신문 박재찬기자



■노랫말

이들의 음악적 정수는 서사적이고 시적인 가사입니다. 가슴에 와서 사무치고 폐부를 찌르는 이야기들은 이들의 노래가 오랫동안 불리고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발라드의 틀을 유지하는 김동률의 가사는 사랑과 그리움, 아련함을 담아내는 감성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추억들을 소재로 해 깊은 공감을 끌어내지요. 동시에 진솔하면서도 절제된 표현법을 사용해 그 추억을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로 돋보이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남자 아이돌그룹처럼 여성팬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상대적으로 남성팬층이 많은 이적은 패닉시절부터 파격적인 메시지와 사회비판적인 의미를 담은 가사를 썼습니다. 패닉 이후 솔로 활동에 집중한 2000년대 초중반엔 ‘다행이다’처럼 세련된 발라드를 많이 만들었지만 몇년전 5집부터는 다시 마니악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 공연에서 이적은 이렇게 자신과 김동률의 스타일을 비교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회고조의 가사. 그게 김동률적 세계관이고 정서죠. 반면 저는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농담이 섞이긴 했지만 틀린 말도 아닙니다.

 

여성들의 취향과 감성을 제대로 알고 소통하는 뮤지션의 대표격으로 유희열이 꼽힙니다만 김동률이 이에 못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아마도 2014년 발표한 6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그의 노래를 통해 형상화됐던 화자는 지고지순한 순정을 가진 비련의 주인공 이미지가 강했습니다만 이 앨범에 수록된 ‘어드바이스’ ‘퍼즐’ 등을 들어보면 “어떻게 남자의 탈을 쓰고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진제공 뮤직팜



■공연 

소위 ‘광속 매진’을 기록할만큼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두 뮤지션은 공연 스타일도 상반된 편입니다. 이적은 2004년부터 <적군의 방>이라는 타이틀로 소극장 콘서트를 이어왔습니다. 10여년 동안 그의 소극장 콘서트는 공연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습니다. 혼자서, 때로는 악기를 연주하는 동료 뮤지션 한명하고만 무대에 오를 뿐입니다. 목소리와 악기 한두개의 지극히 단촐한 구성만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방식은 노래의 맨 살을 관객들이 있는 그대로 부비고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반면 몇년에 한번씩, 외국 가수의 내한공연 정도의 빈도로 공연하는 김동률은 수천~1만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공연장에서 웅장하고 장엄한 무대를 선사합니다. 오케스트라와 밴드, 합창단원 등 10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악기와 코러스, 목소리가 빚어내는 호흡은 놀랄만큼 세밀하고 정교합니다. 특히 청중을 사로잡는 것은 조명입니다. 조명도 하나의 악기처럼 악보에 그려진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빛과 소리의 향연을 펼쳐냅니다. 


■활동 스타일 

이적은 뮤지션 뿐 아니라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무한도전>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친화적인 이미지를 더했고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선 아예 연기자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판타지 소설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지요. 활동 영역에 경계를 두지 않는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호기심이라고 하네요. 

김동률은 음반과 무대 외에는 일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라디오에서조차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루시드폴이 새 앨범을 발표하고 홈쇼핑을 통해 쇼케이스를 했을 때 전화연결을 통해 방송에 등장했던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예전에 ‘김동률의 포유’라는 음악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적이 있었으나 자신의 음악적 방향성이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음악을 이야기해야 하는데서 오는 갈등으로 무척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20년 넘게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 뮤지션의 위치를 지켜가고 있는 이들의 음악이 앞으로 대중들에게 어떤 감동과 영감을 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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