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지난 1월29일 했던 인터뷰입니다. 



“제가 맨날 슬리퍼만 신다보니…”

고상한 정장에 긴 생머리, 날렵한 하이힐 차림의 라미란에게서 ‘쌍문동 치타여사’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이힐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겸연쩍게 웃는 그의 유머 본능은 이내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는 2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 치타여사로 살았던 지난 6개월을 추억했다. 





-올 겨울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배우 중 하나다. 종영 소감은.

=처음 시작할 땐 감독님이 하도 엄살을 피워서 다들 걱정했다. 잘될까 싶었고. 0회를 본 뒤에는 망했구나 싶었는데 회를 거듭할 수록 사랑받았다. 나에게도 이 작품은 인생작이 될 것 같다. 하는 동안 정말 즐거웠고 사랑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쌍문동 치타여사라는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막상 촬영하려니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 다들 사투리를 쓰는데 나만 표준어를 쓰는 것도 좀 그랬고. 이전에 응답 시리즈가 사투리 쓰는 맛이 살아 있는 작품이라 나만 사투리 안쓰려니 어색하면 어떡하나하고 걱정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 아이들은 사투리를 안쓰니까 아이들에게 얹혀 갈 수 있었다. 

-쌍문동 ‘태티서’의 인기가 엄청나다. 

=순회공연이 120여개 잡혀 있으면 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다(웃음). 

-‘태티서’ 멤버였던 이일화, 김선영씨와의 케미가 아주 좋았다. 

 =전작을 보면서 일화 언니가 많이 외로웠겠다 싶더라. 그런데 이번엔 우리 셋이라 처음부터 언니도 많이 좋아했다. 처음 우리 셋이 만난 날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면서 차마시면서 수다도 많이 떨었다. 우리 사이의 케미가 살아야 작품이 산다 싶어서 우리끼리 많은 시간을 보냈다. 

-쌍문동 치타여사로 설정한 건 누구 아이디어였나. 

 =처음부터 제작진이 그렇게 설정했다. 항상 치타 무늬 들어간 가디건이나 옷을 입으라고 대본에 있었다. 덕분에 의상팀이 애를 먹었다. 재래시장도 엄청 ㅁ낳이 돌아다녔다고 하더라. 그때문에 겨울인데도 여름용 천으로 된 옷을 많이 입고 있었다. 

-그동안 다양한 아줌마 연기를 보여줬는데 이번 치타여사는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난 대본에 충실하려 한다. 대본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살리려 노력하는데 많은 분들이 내가 애드립을 많이 하는 줄 아시더라. 중간에 평상에 앉아 고구마 들고 ‘이거거든’ 하는 장면이나, 여권 이름을 불러줄 때 ‘엄마가 쪽팔려서 그래’라고 했던 것은 모두 대본안에 있는 것이었다. 애드립이라면 중간에 김성균씨를 때리고 발로 밟는 장면 정도? 그리고 아줌마라는 캐릭터가 전형적으로 수다스럽고 우악스러운 것이 대부분인데 그런 뻔한 이미지는 조금이라도 비껴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힘들고 보는 분들도 지겨워질 것 같다. 





-망가지는 장면도 많았다. 너무 내려놓는 건 아닌가 하고 고민했을 법도 한데. 

 =회차를 거듭하면서 정말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웠다. 그래서 감독님한테 이렇게 망가지다가 다른데 가서 할 거 없다고, 어떻게 하냐고 그랬더니 자기 알바 아니라며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라(웃음). 전국노래자랑 장면에서 막상 노래하려니 ‘계란이 왔어요’라는 반주가 나오지 않았나. 그렇게 반주가 나오고 ‘매에에에’하고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런데 ‘입반주에 맞춰 노래를 열심히 부른다’라는 지문이 나온다. 가슴이 덜컹하더라. 이걸 어떻게 하나 하고 진짜 고민 많이 했다. 여권 장면에서도 ‘아들, 미안’ 하는 대사의 지문이 ‘무안한 듯 미안한 웃음’ 이라고 써있었다. 이건 또 어떻게 하나 하고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특히 이 드라마는 대본이 주는 신선함이 강했고 지문의 힘이 아주 컸다. 

-노래자랑 부분은 많은 다른 연기자들이 뒤집어질 정도로 웃긴 장면으로 꼽았다. 

 =난 그 부분이 웃기다고 생각 안했다. 극중 미란이 얼마나 절실하고 떨렸겠나. 5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터라 이번엔 이를 갈고 나온거다. 그러니까 입반주를 하면서까지 절실하게 매달렸지. 하면서도 난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다들 웃겼나보다. 

-엔지가 많이 났겠다 

 =엔지 없었다. 난 거의 엔지가 많이 없다. 

-치타여사와 배우 라미란은 실제로 얼마나 비슷한가. 

 =나와 닮은 부분도 많다. 제작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나의 특징들을 많이 참조한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잘 웃지 않는다. 웃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더 웃겨보라고 정색한다. 퍼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실제로는 치타여사처럼 그렇게 많이 퍼주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에 아들 정환과 덕선이가 맺어지지 못했다. 

 =그러게. 얘가 자꾸 막판에 사천으로 내려가더라. 그 모습 보는데 그렇게 짠하고 눈물이 날 수 없었다. 감독님이 나더러 왜 그렇게 우냐고 했다. 마음이 너무 짠하고 안타까워서 운전 조심하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혼자 속앓이 하고 짝사랑하다 끝난거니까 마음 아프더라.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게 마지막까지 진짜 고백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다. 사실 택이는 바둑밖에 모르고 맨날 약먹고 그러지 않나. 남편감으로는 좋지 않은 것 같다(웃음). 정환이 같은 스타일이 결혼해서 살기에는 행복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내 아들, 내 손가락이니까 많이 서운했다.

-아들 역할하는 배우들과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나. 

 =가족 미팅하기 전에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기대하지 말라고, 진짜 못생겼다고. 그래서 내가 잘생기고 젊은 배우 아니면 안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보자마자 ‘너 외탁했구나’ 했다. 나를 닮은 거다. 나를 닮았으니 못생겼다고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훨씬 매력있다. 못생긴 남자한테 빠지면 약도 없다고 하잖나. 시청자들 중에서도 우리 아들들에게 빠진 분들은 아마 당분간 헤어나오기 힘드실거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뭐였나. 

 =여권 장면은 그동안 전혀 떠올려보지 못했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또 첫화에서 아들에게 서운해하며 방에 들어가 이야기하는 장면도 그 감정이 기억이 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5년전 전국노래자랑에 들깨소녀로 나갔던 것이다. 세명의 케미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으니까. 분장이나 상황이 정말 재미있었다. 

-드라마 <응팔>이 갖는 특별함은 뭘까 

 =근래에 보기 드문 드라마였다. 가족드라마라 하더라도 뒤로 갈수록 가족이 빠지고 배경이 되는편인데 이 드라마는 전면에 가족들의 에피소드가 다뤄졌다. 배우로서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주변인으로 소모되거나 엄마, 이모 등 한정된 역할인데 이건 엄마 아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전원일기 같다고 하신 분들도 있었다. 연세 드신 분들도 좋아하시고. 우리 어머니는 올해 여든인데 이 드라마 끝나면 뭐 보냐고 하시더라. 

-1988년의 쌍문동이 배경인데 실제와는 어떤 것 같나. 

 =난 어린시절을 강원도의 탄광촌 고한에서 보냈다. 중3때 서울로 왔으니 사실 1988년의 내 기억은 서울의 1970년대랑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드라마속 1988년이 훨씬 문화적으로 앞선 느낌이 있다. 세트장의 ‘부유한 우리집’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라미란의 1988년은 어땠나. 

 =중학교 1학년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가 산중턱에 있었다. 눈이 오면 못 갈 정도였다. 중학교 입학할 때 귀를 완전히 파는 숏컷을 했는데 입학식날 귀에 동상이 걸렸었다. 반장갑 끼고 스포츠 가방 메고 남자처럼 껄렁거리며 다녔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남학생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지금 완전히 여자가 된 거다. 

-쌍문동 태티서로 불리는 다른 배우들에 대한 첫인상은 

 =처음 봤을 때 일화 언니가 너무 아름다워서 무지하게 주눅들었다. 선영씨는 나보다 언닌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화면을 보니까 내가 제일 나이들어보이더라. 팔자주름을 펴든지 해야겠다. 

-영화 <히말라야>도 엄청난 흥행을 했다. 

 =어쩌다 보니 드라마와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굉장한 시너지가 나온 것 같다. 이럴 줄 모르고 꾸준히 했던 건데 한꺼번에 우박 쏟아지듯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아 얼떨떨하긴 하다. 

-앞으로 욕심나는 연기가 있다면. 

 =멜로다. 그런데 멜로를 하려면 신경써야 할 게 많다. 아직까지 아무도 멜로로 안 불러주는 걸 보면 이 얼굴로는 힘든 것 같다. 그렇지만 해보지 못한 장르에 도전하는 것은 배우로서 당연한 마음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다시 응답시리즈가 나오면 출연 의사가 있나. 또 한다면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나. 

 =글쎄. 감독님이 새 얼굴을 좋아하셔서 나를 부르진 않으실 것 같다. 성균씨가 전작하고 이번엔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나왔는데 만약 내가 다른 역할로 출연한다면 내 남편찾기를 하고 싶다. 

-굉장히 다작을 하는데 에너지가 항상 넘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정말 행복하다. 그전에 일하는 기간보다 쉬는기간이 많을 때를 생각하면 일을 해도해도 채워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갈증이 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하고 계속 열심히 하는 거다. 그래야 내가 배우로서 숨쉬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물론 너무 나와서 질리는건 아닐까 고민도 됐다. 그런데 작품마다 다른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는건 내가 해야할 노력이다. 너무 많이 했다, 힘들다 이런건 아직 내 입장에선 건방진 소리인 것 같다. 

-다음번에 이어지는 작품이 부담될 것 같다. 

 =부담은 된다. 이번엔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는데 차기작은 많이 달라서 실망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완급을 조절하며 계속 하는 것 아닐까. 배우 라미란이 더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서 필요한 정도만, 그 작품이 원하는 캐릭터로만 보이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응팔> 캐릭터 중 아들이나 딸을 삼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난 딸이 없으니까 덕선이 같은 딸이 있으면 좋겠다. 착하고 밝고 너무 좋다. 물론 더 낳을 건 아니다. 아들은 정봉이 같은 아들이 좋다. 선우같은 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너무 싹싹하고 딸같아서. 택이는 내가 뒷바라지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고. 정환이는 너무 시크하고. 정봉이 정도가 가장 좋겠다. 

-정환이가 결국 맺어지지 못했을 때 따로 위로를 했나. 

 =정환이도 거의 마지막까지 한가닥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혹시 반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 그런데 고백씬을 하고 나서 정환이가 접은 것 같았다. ‘저는 여기가 끝인 것 같아요’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작품 끝나면 정말 끝이다. 거품이 금방 끝나니까 빨리 빠져나오라고 했다. 사실 젊은 배우들이 다들 자기 캐릭터에 많이 빠져 있어서 서운해하고 아파하고 그러더라. 엄청 많이 울었고. 나야 선배이고 여러 작품을 많이 해봤으니까 후배들에게 얼른 수렁에서 빠져나오라고 조언을 했다. ‘이젠 이것을 잊고 다음 작품을 생각해야 할 때다’ 라고. 그리고 너무 작품을 가리지 말라고 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많이 해보라고.

-댓글을 읽는 편인가

 =댓글 읽는 것을 즐긴다. 5000개 달려도 밤새서 다 읽는다. 재미있다. 가끔 반짝거리는 댓글이 있는데 그걸 찾으려고 다 보는거다. 욕하고 악플다는건 그냥 넘겨야지 뭐. 

-쌍문동 떠나면서 끝났는데 그 후 정환이네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 

 =우리가 판교로 갔고 덕선이네도 이후에 왔다. 극중 김성균이 선견지명이 있었다. 우린 아마 판교에서도 떵떵거리며 살지 않을까? 큰 아들도 돈 잘 벌고. 다만 정환이가 사천에서 가끔 올라오면 볼 수 있을텐데… 그 부분이 아쉽다. 정봉이는 만옥이랑 잘 됐을 거고. 사실 정환이가 어떻게 살지 나도 궁금하다. 그런데 판교에서 덕선이네랑 같이 살면 계속 덕선이 얼굴을 볼텐데. 정환이의 마음을 안 뒤에는 엄마로서 덕선이에게 ‘우리 아들 왜 찼냐’고 물어보고 싶긴 하다. 

-예능 출연 요청도 많을 것 같다. 

 =요청이 많은데 정중하게 거절 하고 있다. 연기는 캐릭터로 하는 것이지만 예능은 나 자연인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보니 숨을 데가 없더라. 파급력도 엄청나서 두렵긴 하다. 심지어 진짜 사나이 나가고 난 뒤에 강원도 시골 당구장에서도 어르신들이 알아보시더라. 언젠가 편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할 생각은 있다. 

-배우로서의 꿈은.

 =최대한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 너무 도드라지고 싶지도 않다. 어느 작품이든 있는 듯 없는 듯 잘 스며들며 연기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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