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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통신

나이 오십 넘어 시작한 마라톤

by 신사임당 2023. 9. 20.

나이들어가면서 갈수록 자주 찾아오는 허망함

나만 느끼는 건 아니다. 

어차피 개인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대충 데리고 살아야 하는 감정이다. 

뭐하느라 이렇게 아둥바둥 살았나 싶고 

도대체 그동안 뭘 했나 싶고 

100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기나긴 시간을 

어떻게 무료하지 않게, 무용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나 싶다.  

몸은 시들고, 마음도 그에 비례해 더 시들어가고 

특히 지난해부터 난 개인적으로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에 좀 많이 시달렸다 

물론 지금도 근본적인 환경이 크게 변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나름의 쉼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호흡대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 쉼터는 달리기다. 

 

예전에 누군가 달리기의 장점을 설파하며 

신체적인 효과도 있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는데 

더할나위 없이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었다.

허나 그건 특정한 누군가의 경험일 뿐 나와는 별개로 생각했다. 

뛰겠다는 의지와 정신력, 체력을 가진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의 본받을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지난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냥 냅다 혼자서 뛰었냐고? 

그건 아니다. 

냅다 혼자 뛰겠다고 뛰어지는게 말이되나 

그러면 누구나 다 뛰겠지. 

물론 뛰는 것 자체가 대단히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생활패턴, 너무나 굴복하기 쉬운 습관을 잠시 밀쳐내고 

10분이라도 뛰어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 말이다. 

공부와 다이어트를 방법을 몰라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는 것 그것 자체가 너무나 대단하고 힘든 일이다. 

하물며 나처럼 귀차니즘에 항상 굴복하는 의지박약자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겐 10여년전부터 꾸준히 마라톤을 해오던 친구가 있다. 

그전에도 만나면 뛸 것을 종종 권유했었는데 

솔직히 매번 귓등으로도 안들었다. 

그러다 막상 뛰고 싶다는, 뛰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는 같은 성당에 다니는 분들과 함께 마라톤 동호회를 꾸려 

오랫동안 꾸준히 함께 뛰어왔다. 

그 친구가 했던 말은 

마라톤, 달리기는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팀 플레이라고 했다. 

즉 극기의 자세로 뛰는 것이 맞지만 

뜀을 가능하게 

뜀을 지속하게 

뜀을 포기하지 않도록 

너무나 나약한 의지를 지탱하게 붙잡아주는 것은 

함께 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처음 동호회 모임에 나가게 된 것이 지난해 5월. 

예나 지금이나 어디가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동호회에서 만난 분들은 

거창한 전문 스킬을 보여주는 전문 마라토너가 아닌

함께 운동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50, 60대 이웃들이었다. 

나같은 초보자들도 따라해보자는 엄두를 낼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시는 친근한 분들이었다. 

 

첫주에는 얼떨결에 나가서 뛰었고

그 다음주 토요일에는 새벽에 졸려 죽을 것 같았지만 

한번만 나오고 곧바로 빠지면 내 친구가 욕먹을 것 같아 

꾸역꾸역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주는 2번 나오고 말면 쪽팔릴 것 같아서 나갔다. 

그렇게 3번 정도를 연달아 나가보고 

4번째 주말이 되자 

왠지 반드시 나가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 같은게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는 

4번이나 나갔으니 여기서 그만두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다음부터는 어느새 동호회 분들과 좀 편해지고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됐다. 

그 때부터는 나를 동호회로 인도해 준 친구가 나오든 안나오든 

딱히 신경쓰지 않는 상태가 됐다. 

 

마침 동호회에는 나보다 2달 먼저 시작한 10살 많은 언니가 계셨다. 

워낙 성실하고 꾸준하게 하시는 분이셨고

"비슷하게 시작했으니 같이 꾸준히 잘 해보자"며 

나를 챙기고 독려해주셨다. 

덕분에 그렇게 연습을 시작한 뒤 

10킬로미터 대회를 연습삼아 나가보게 됐고 

시작한지 5개월만인 지난해 10월에는 

처음으로 그 언니와 함께 하프코스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함께 하면서 무사히 완주했고 

이후로도 3차례 더 하프를 함께 뛰면서 

1년만에 달리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됐다. 

 

물론 달리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귀찮을 때도 많다. 

더워 죽을것 같고 

숨차서 당장 쓰러질 것 같다.

거기에 굴복해 적당히 뛰다 멈출 때도 있고 

그것을 참고 달리고 나서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는 때도 있다.

하지만 같이 뛰는 분들이 있다는 건 

지금까지 계속 할 수 있도록 해준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되는 건 분명하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 주변에도 달리기를 해볼 것을 권유하게 됐다. 

실제로 함께 뛰는 것이 너무나 필요하고 좋다는 말에는 대부분이 공감한다. 

나처럼 동호회를 만나지 못한 분들 중에는 

앱을 통해 온라인 친구 맺기로 서로를 격려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방법도 나름 좋은 것 같다. 

뭐가 됐든 내가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력은 필요하기 때문일터다. 

한 후배는 그저 혼자 뛴다고 했는데 

그래서 종종 만나면 자기가 그동안 이만큼 뛰었다고 

자랑하면서 기록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정말 그 초강철 의지에 박수와 존경을 진심 보낸다. 

 

대단한 기록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1년간의 달리기는 내게 큰 변화를 주었으니

바로

매주 토요일이면 조금이라도 뛰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몸을 움직이도록 채찍질해주고 있다. 

그래서 출장이나 휴가 등으로 훈련에 참여하지 못할 때는 

현지에서 뛰게 된다. 

경주 보문호,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삿포로 나카지마 공원, 여수 신월동의 해안도로 등은

뜀박질의 추억을 만들어준 아름다운 길들이다.

이 뜀박질이 특히 좋은 것이 

온몸으로 그 곳의 풍경을 만지고 몸으로 느끼면서 

오롯이 그 풍경을 내 몸과 마음에 그대로 담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경주 보문호를 보면서 적당히 산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주변을 뛰어보는 것은 

그곳을 온전히 기억과 마음속에 담아올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그런다. 

무릎 괜찮냐고. 

그리고 평생 운동했던 사람도 아니면서 그 나이에 시작하는게 가능하냐고. 

무릎과 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할 기회를. 

무튼 괜찮다.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이제라도 시작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대회 나가보면 정말 호호 할아버지, 할머니 처럼 보일 정도로 나이드셨는데 

차분히, 조심스럽게 뛰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렇게 나도 늙어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

지난 1년간의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