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똥통신

영화 1987 역사의 재구성

by 신사임당 2017. 12. 17.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1987이 개봉된다. 이 영화의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에겐 새로운 감흥을 줄 것이고 겪지 않았던 세대들에게도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 그것을 바탕으로 한 만큼 이 영화를 통해 우리의 뜨거운 역사를 다시 새겨봤으면 좋겠다.

 

나역시 이 시절에 중학생에 불과했던터라, 그때의 사건들은 그저 불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보는 듯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본 뒤 그 때의 뉴스와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영화속에 그려진 캐릭터들과 그 모델이 된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1987년이 낯설 젊은 세대들이라면 극중 캐릭터와 실제 인물을 연결시켜보는 것이 쉬울 것 같다.  

 

먼저  1987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실제 보도다.  1987년 1월 16일 동아일보 사회면 

이 정도 사이즈는 사회면 사이드 톱이다. 왜 1면 톱이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당시 보도지침이라는 것이 있던 엄혹한 시대였던만큼 이 사이즈의 보도는 어마무시한 용기였고 실제로 그런 파급력을 가져왔다. 이 보도에 그 유명한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소도 웃을 치안본부의 해명이 나온다. 이 기사의 맨 아랫단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물고문 특종 기사. 경찰의 공식 발표를 넘어서 전모를 밝힌 기사였다.  1월19일자.

 

박종철 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 박처장

 

이 캐릭터의모델은 박처원 전 치안감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가 고문 책임 및 은폐 등으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를 받았던 뉴스다. 

 1987년 9월21일 MBC 뉴스    이 리포트를 한 기자는 신경민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화장 동의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부쳤던 서울지검 최검사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이던 최환 검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물론 최검사가 있었기에 1987년의 완성은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이라는 조직이 적극적으로 경찰이 감춘 것을 밝혀냈던, 정의의 사도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검찰도 진상을 축소하고 은폐했다. 어디선가 폭로가 나오거나 하면 마지못해 수사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경찰의 구미에 맞게 2명의 수사관으로 마무리지으려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가 없었으면 그대로 축소한채로 마무리될 뻔했다.

 

이같은 내용의 전말과 함께 당시 수사실태가 다시 정치권에서 거론됐던 것은 2015년이다. 현재 대법관이 된 박상옥 후보자를 두고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면서 당시 검찰 수사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축소하고 은폐했던 것이 환기됐다. 보온병 폭탄 발언으로 유명한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 당시 최환 겸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박종철 고문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였다. 이 팀에 박상옥 대법관도 막내 검사로 있었다. 그런데 그 수사가 결국 부실이었다. 고문 경관이 더 있었음을 밝혀낸 것은 이 수사팀이 한 것이 아니라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압에 맞서 부검을 성사한 것은 최환 검사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동안 세간에는 안상수 검사로 알려지며 스타 검사가 됐고 정치인으로도 꽃길을 걸었다. 왜 그렇게 알려졌을까... 싶다. 이 기사만 봐도 그렇다. 그가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의, 2011년 기사다. 안상수, 박종철 기념관 찾은 까닭은.  

 

아무튼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최환 검사가 jtbc와 인터뷰를 한다. 안상수의 발언이 과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다 말할 수 없지만' 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마 주인공이 뒤바뀌어 수십년간 세간에 알려졌던 것에 대한 속상함 이 왜 없었겠나 싶다. 인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당연히 든다. 당시 안상수 검사는 선배인 최검사가 시키는대로 했던 것 뿐인데 마치 자기가 그 주역이었던것처럼 영화를 누렸고 최환 검사는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었던 셈이니 말이다.

 

이 사안은  2007년 오마이뉴스가  영화 속 설경구가 연기했던 김정남 전 교육문화수석을 인터뷰한 기사에 자세히 나온다.

 

박종철 부검 주역은 최환

 

영화 속 김정남

 

실제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종철은 경찰로부터 선배였던 박종운의 행방을 추궁당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 선배였던 박종운의 현재 모습이 어떤지는 2015년 한겨레에 실렸던 칼럼을 통해 알 수 있다. 박종철, 박종운, 박상옥

 

고문 은폐의 진실이 밝혀지는데는 교도관의 역할도 컸다. 역사적 사실로는 당시 교도관이던 한재동씨가 이부영씨가 쓴 편지를 전 교도관이던 전병용씨에게 전달해서 김정남씨에게 닿도록 했다. 영화에서 유해진이 맡은 교도관 한병용은 아마도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조합해서 만든 것 같다.

영화 속 한병용 

 

그리고 영등포 교도소 교도관으로 재직했던 한재동씨(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교도관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알렸던 재야인사 이부영을 연기한 김의성  

 

지난해 정계은퇴 회견을 하는 이부영 전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리고 박종철의 시신을 처음 봤던 당시 중앙대 병원 내과의사 오연상.  현재 흑석동에서 오연상 내과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주로 당뇨쪽이 전문이신 듯 하다. 병원 블로그에 원장님 소개  나와 있다... 

 

흐지부지 묻힐뻔한 사건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세상에 공표됐다. 그해 5월 이 사실을 명동성당에서 폭로했던 김승훈 신부.... 영화에선 정인기 배우가 이를 연기했는데 스틸사진이 없다. 

실제 김승훈 신부.(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분의 선종 10주기를 추모하는 기사.   내 이름 필요하면 갖다 써

결국 이것이 물꼬가 되어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치안본부장으로 나왔던 분...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배우 우현씨가 연기했다.

사건으로 경질됐던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1988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재미있는 것은 배우 우현씨다. 1987년 뜨거웠던 6월을 보여주는 이 유명한 사진에 그가 있다. (사진출처는 위키)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있는 이가 현재 민주당 우상호 의원, 그리고 태극기를 들고 왼쪽 옆에 서 있는 이가 바로 당시 연대 신학과에 재학중이던 우현씨다. 오른쪽에 비통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는 우현씨의 과 동기였던 배우 안내상. 

 

그리고 안기부장을 연기한 문성근

 

실제 모델 장세동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리고 알려져있다시피 박종철 이한열 두 열사는 여진구, 강동원 두 배우가 연기했다. 

1987년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주인공들의 삶을 엮은 것이다. 6월항쟁 20주년을 맞은 2007년 당시 사건의 전말을  정리한 기사다. 

박종철 사망사건의 전말  상

박종철 사망사건의 전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