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이마에서 쏟아져 내리는 땀방울이 눈으로 스며들며 콧날까지 시큰거렸다. 귓가에 앵앵거리는 날벌레를 훑어내며 땀을 닦는 손이 휘청거린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한 지 30분 되었을 뿐인데 숨이 차올라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선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 하지만 다들 말없이, 쉼없이 발길을 내딛는다. 앞장 선 교무는 “힘들겠지만 자기의 마음이 내는 소리에 집중해보라”고 한다. 마음 속에선 저질 체력을 탓하는 아우성이 들려올 뿐이다. 그래도 지금은 등산로라도 닦여 있지, 그 옛날 열한살짜리 소년 ‘처화’는 이 길을 5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마다 올라가 정성껏 기도를 했다. 그렇게 15분을 더 올라 이른 곳은 널찍히 펼쳐진 삼밭재 마당바위다. 길을 따라 오르던 내내 후텁지근하게 괴롭히던 공기는 희한하게도 삼밭재에 들어서니 선선해졌다. 오전 6시가 채 안된 시간.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멀리 정관평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저마다 바위 자락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들은 원불교식 절차에 따라 일원상서원문과 반야바라밀다심경, 청정주 등을 차례로 독경한 뒤 아침기도를 했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집중하는 시간. “분초도 못 기다리며 헐떡이는 일상이잖아요. 모처럼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네요.”

 

 

 

 지난 28일부터 2박3일간 전남 영광에서 ‘원불교스테이’가 진행됐다. 원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살펴보고 주요 성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기초적인 교리 강의와 염불, 좌선요가, 성지순례, 아침 기도, 법회 등을 두루 체험했다. 회화와 마음일기 쓰기라는 독특한 원불교 훈련법도 경험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영산성지 순례’다. 영산은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원불교에서도 으뜸 성지로 꼽힌다. 교조 소태산 대종사의 생가와 깨달음을 얻은 대각터, 10대 소년이던 시절 기도했던 기도터 삼밭재, 대종사가 제자들과 바다를 막아 이룬 5만여평의 간척 농지 정관평, 원불교 창립관, 영산선학대학교, 그리고 마음공부 훈련도량인 국제마음훈련원 등이 모여 있다. 대각터에 자리잡은 일원탑을 시작으로 2시간 가량 걸어서 한바퀴를 돌아볼 수 있다. 일원탑은 원불교의 상징인 원을 구조물 형태로 만든 것이다. 김원성 교무는 “원이 의미하는 것은 궁극의 진리이자 우리의 마음”이라며 “마음에 집중하고 그 힘을 기르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농지는 초기 원불교의 창립 토대가 된 자산이다. 현재 이곳은 유기농명인으로 지정된 김선수 교무가 농사를 총괄한다. 정관평에서 생산되는 유기농쌀은 맛과 품질에서도 이름나 있다.

 


 참가자 40명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로, 원불교에 대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고 있던 타 종교 신자들이다. 불교신자인 전철호씨(63)는 “불교와 원불교가 막연히 비슷할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종교와 인문학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 동료 8명과 함께 참석한 천주교신자 박준경씨(57)는 “종교가 다르더라도 보편적 가치는 통한다는 점, 서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더 깊이 있고 풍성한 종교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금 알게 됐다”면서 “기성 종교들이 화합과 배려를 말하지만 실제로 그러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밝혔다. 역사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생 조형신씨(24)는 “뚜렷한 종교는 없지만 호기심 때문에 오게 됐다”면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6년전부터 ‘이웃종교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해 왔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협의회 등 7개 종교별로 2박3일씩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원불교와 같은 기간 전북 익산과 김제에서 개신교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오는 4~6일 천도교(강원 홍천 가리산수도원)와 천주교(경북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 11~13일 불교(경기 양평 용문사), 유교(충북 청주향교), 민족종교협의회(충북 영동 국조전)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올해 행사에서 굳이 원불교스테이에 따라 나선 것은 이 프로그램이 가장 빨리 마감되며 높은 인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편 전남 영광은 군단위 작은 지역인데도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만큼 깊은 종교적 의미와 색채가 깃든 곳이다. 원불교를 비롯해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 4대 종교의 성지가 다 몰려있다. 법성면 진내리에는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가 있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불교를 전래한 곳이다. 또 불갑면 모악리의 불갑사는 마라난타가 이곳에 세운 사찰이다. 영광읍 영광성당은 신유박해(1801년) 당시 순교한 신자를 추모하는 순교기념관이 있다. 2010년 광주대교구에서 영광순교자 기념성당으로 지정됐다. 염산면에 있는 염산교회와 야월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194명의 교인 전원이 순교해 세계 교회역사에 기록된 순교지로 꼽히는 곳이다. 영광군은 종교와 힐링프로그램을 엮어 이곳을 테마 관광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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