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씬 스틸러, 명품 조연이란 이름으로 설명되던 배우 유해진이 최근 몇달새 충무로 흥행의 주역으로 섰다. 지난해 <럭키>와 올해 <공조>는 모두 그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7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 두 작품에서 인간미 넘치는 특유의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는데 이 이미지는 그가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tvN)의 ‘참바다’씨의 인간적 매력과 많은 부분이 겹쳐져 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차줌마’ 차승원과 함께 나왔다.

개인적으로 <삼시세끼> 여러 시즌 중 유해진과 차승원이 전라남도의 외딴 섬 만재도에서 꾸몄던 시즌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특히 어른 손보다 컸던 자연산 홍합으로 만들던 홍합미역국, 홍합짬뽕을 보며 얼마나 군침을 흘렸던가.

지난해 <럭키>를 볼 때만 해도 잘 몰랐는데 얼마전 <공조>를 보면서 나는 <삼시세끼>의 ‘참바다’ 유해진을 떠올리게 됐고 그 맛나 보이던 홍합짬뽕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도대체 왜 이런 연상작용이 일어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를 보고난 뒤 만재도의 그 홍합 생각이 강하게 떠올랐고, 아쉬운대로 홍합국물을 먹을 수 있는 대학로 포장마차로 향했다.

[푸드립]5-홍합, 소주 한잔을 부르는 겨울의 유혹

홍합만큼 쉽고 간단하게 맛있는 국물을 내주는 재료가 또 있을까 싶다. 청양고추랑 파 한토막만 넣어 끓여도 하늘로 솟아오를만큼 개운한 국물이 나온다. 아니, 아무것도 안 넣고 홍합만 끓여도 된다.

홍합하면 생각나는 책이 한창훈의 <홍합>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시원하고 개운한 홍합국물의 맛이나 홍합으로 만든 갖은 요리에 대한 묘사는 안 나온다. 여수의 홍합공장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끈끈하고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실제로 한창훈 작가는 1980년대 후반에 몇년간 홍합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홍합공장에서는 잡은 홍합을 삶아 포장해 유럽 등지로 수출한다.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천연색 기름 띠가 뜨거운 홍합 국물을 만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참말로 희한해. 지름 묻은 손을 씻어 봐도 이 국물이 비누보다 훨씬 낫다니께.”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홍합 삶은 물이 기름 때를 저렇게 쉽사리 지워낼 수 있는줄은 몰랐다. 책에서만 봤지 실제로 홍합 삶은 물로 기름때를 지워본 적은 없다. 예전에도 삶은 물로 실험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막상 삶은 물 앞에 서면 “먹을 것도 모자란데” 하며 실험을 번번이 포기했다.

홍합의 맛을 제대로 묘사한 것은 그의 산문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다. 거문도가 고향인 작가는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를 종류별로 이 책에 풀어냈다. 작가의 이야기처럼 포장마차 따끈한 홍합 국물에 소주 한잔은 추운 겨울 강력한 유혹이다. 그는 홍합 요리의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삶는 것을 꼽는다. 깨끗하게 손질하고 물을 넣으면 되는데, 짠 맛이 나오므로 간을 보면서 물을 타면 된다고 한다. 또 너무 오래 끓이지 않아야 한다. 숯불에 홍합을 구워먹기도 하는데 그가 추천하는 또 다른 요리법은 홍합전이다. 밀가루를 입힌 뒤 계란옷을 입히고 튀김가루를 입혀 튀긴다. 굴전 하는 것과 비슷한데 굴과 달리 홍합은 완전히 다 익혀야 한다고 썼다. 날로 먹으면 입이 아리기 때문이다. 그는 홍합전이 어느 전보다도 맛이 뛰어나다고 했다. 된장국을 끓이거나 죽을 쑤어 먹을 때 불끄기 일분 전 양파를 조각내서 넣으면 씹는 맛이 좋다고 한다. 살이 붉은 빛이 도는 것이 암컷이고, 암컷이 더 맛있단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 홍합에 대해 다룬 장 표지에 붙어 있는 설명은 ‘어떤 사내라도 한마디씩 하고 먹는 맛’이라고 되어 있다. 짐작하겠지만 홍합의 생김새 때문이다. 소설 <홍합>에는 홍합의 생김새를 두고 뒤떠드는 사내들의 이야기다.


별 생각 없는데 굳이 주겠다니 인정으로 받는다는 투로 한잔 받아 마시고는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발랑 벌어진 홍합을 솥에서 들고 까먹는데 어느 누구라도 입 다물고 그냥 먹는 이가 없었다.
“참말로 아무리 봐도 똑같이 생겼네”
간밤에 보던 것과 단순 비교하는 측이다.
“어째 이 불쌍한 것을 이렇게 모지랍스럽게 쌂어분다냐. 얌전히 있는 것을 끄집어 올려, 패대기쳐, 불로 쌂어, 빤스 벳겨, 아이고 불쌍한 거.”
측은지심측도 있다.
“제미, 뭐 묵겄다고 쫙 벌리기는. 이이고, 볼가진 공알하고는, 니미, 터럭도 드럽게도 많다.”
이렇듯 세심한 관찰형도 있었다.



원래 우리 바다에서 나던 자연산 홍합과 요즘 흔히 먹는 양식 홍합은 종자가 다르다고 한다. 양식 홍합은 껍데기 안쪽이 진주빛이 난다고 해서 진주담치라고도 불리며 지중해 담치라고도 한다. 한창훈은 책에서 이 외래종이 개화기 때 화물선에 붙어 들어와 퍼진 것으로 추측된다고 썼다. 아무튼 통칭해 홍합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살이 붉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옛 문헌을 보면 홍합에 대해 다양한 이름으로 지칭하고 있다. <본초강목>에서는 홍합을 각채, 동해부인이라고도 했으며, 부인들에게 아주 유익하다고 했다. 미네랄이 풍부해 피부에 좋고 칼슘의 흡수를 높여주는 성분이 들어 있어 갱년기 여성들의 골다공증에도 효능이 좋다는 것이다. 철분도 많아 빈혈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홍합을 담채라고 하면서 말린 것이 사람에게 가장 좋다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말린 홍합에는 글루탐산이나 글리신 등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감칠 맛을 내는 글루탐산 덕분에 홍합을 말려 분말을 낸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조미료가 된다. 찌개나 국, 탕 등의 요리를 할 때 조미료 대신 홍합 가루를 쓰면 거의 라면 수프에 준할 정도로 훌륭한 조미료가 된다. 새우나 표고버섯 분말을 천연 조미료로 쓰는 집도 많은데 홍합 분말에 댈 것이 아닌 것 같다.

홍합 미역국

홍합 미역국

홍합이 맛있긴 한데 문제는 손질하기가 귀찮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냉동코너에 껍질한쪽을 까서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해 놓은 대형 홍합은 요리하긴 편하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시원한 홍합국물을 내는데는 적합하지 않다. 홍합을 무더기로 사서 수초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는 수고를 거쳐야 시원한 홍합국물을 낼 수 있다. 먹고 나면 껍질도 산만큼 쌓인다.

끓여서 국물을 내는 대신 손질한 뒤 그대로 오븐에 넣어 구워먹는 것도 맛있다. 대학로에서 1987년부터 지금까지 30년째 문을 열고 있는 한 레스토랑은 이렇게 구워낸 홍합구이로 유명한 곳이다.


홍합탕

홍합탕

대형마트에 파는 손질된 큼직한 홍합으로는 손님맞이 요리를 냈을 때 꽤 반응이 좋았다. 요리법도 간단하다. 홍합위에 발사믹식초, 마늘으깬 것, 버터를 올려 그대로 오븐에 구우면 된다. 양은 티스푼으로 ‘적당히’. 다 구워낸 뒤 새싹 채소나 파슬리 가루를 살짝 고명으로 얹으면 더 근사하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도 홍합을 정말 많이 먹는다. 레스토랑에도 홍합으로 만든 메뉴가 정말 많다. 특이한 것은 지난해 시칠리아에 갔을 때 홍합을 날 것으로도 먹는 것이었다. 다른 패류는 날 것으로도 먹지만 홍합을 그렇게 먹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았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맛을 못 본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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