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파일284 힐링의 섬 제주, 이제 그 섬을 치유할 때다 짙푸른 바다에 기댄 마을. 구석구석을 감싼 나지막한 검은 돌담 아래 노란 빛이 감도는 선인장 위로 봄볕이 내려앉았다. 제주 서쪽에 자리잡은 월령리다. 국내 유일의 선인장 자생지라는 이곳(올레 14코스)은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일찍이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머물던 곳이다. 최근엔 예능 프로그램 촬영지로도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제주는 수많은 이들에게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곳이다. 공항의 활기, 후덥지근한 공기, 유채꽃으로 뒤덮인 들판과 신선한 숲, 풍성하고 입맛 돋우는 먹거리, 고즈넉한 바다와 해안길을 떠올리게 되는 제주는 여행, 휴식, 힐링, 자연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고 자란, 혹은 그곳을 떠나온 많은 이들에게 고향 제주는 한과 아픔이 응어리진 땅이다... 2018. 3. 26. 기자칼럼/ 그래봤자 꼰대 나는 20세기에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휴가 두 달. 육아휴직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도 없던 때였다. 요즘이야 출산 1~2주 전부터 휴가에 돌입하기도 하지만 그땐 출근길에 양수가 터져서야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두 달밖에 안되는 휴가 기간에서 하루도 허투루 빼먹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출산 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뒤집기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회사로 복귀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무 야만적인 환경이었네요.” “출산하고 고작 두 달 만에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나요?” 동정과 놀라움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자 후배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20세기 출산 경험자’들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떠들어댔다. 사무실에서 담배도 마구 피워대던 시절이었다는 둥, 유세 떤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 야.. 2017. 10. 17. 기자 칼럼/ 헌금과 세금 8월22일자 칼럼임. “교회가 나랏돈 빼먹는 꼴이지요.” 초로의 목사님은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몇번 삼키더니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부터 자신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한 교인이 상당한 액수의 헌금을 하겠다며 그 액수의 몇배나 되는 기부금 증명서 발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기부금 증명서가 있으면 세금이 공제된다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는 설명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평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해 왔지만 새 신자의 면전에 대고 단칼에 거절하기도 민망해 잠시 머뭇거리는 틈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목사님. 다들 그러고 살아요. 예전에 납품했던 한 교회 목사님이 물건값 깎아주면 기부금 증명서 발급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윈윈’해 .. 2017. 9. 8. 음악인형극 선보이는 보헤미안 뮤지션 하림 경향신문 2015년 10월23일자 뮤지션 하림(39)의 이름에서 ‘노마디즘’(유목주의)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산업화된 음악계에서 관행과 관성을 따르는 대신 그는 자신의 음악적 직관에 몸을 맡겨왔다. 지난 10년간 그는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각지를 돌며 현지의 악기와 음악에 빠져 있었다. 국내에 머무르는 때에도 산골을 찾아다니며 현지 아이들, 주민들과 어울려 음악회를 열었고 시인이나 작가, 화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동료들과 무대에 서고 전시회를 열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재능과 음악적 호기심은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에서 실험적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월드뮤직과 오케스트라를 결합시킨 음악극 , 30년대 희극적 대중가요인 만요를 재현한 .. 2015. 10. 22. 칼럼 쓰려야 쓸 수 없는 돈 평소 휘뚜루마뚜루 해치웠던 명절노동의 흔적이 올해 유독 길게 이어지는 건 순전히 믹서 때문이다. 양파며 배, 감자 등을 일일이 갈아 양념을 만들고 전을 부쳐야 하는데 믹서 없이 강판에 갈기를 며칠간 했더니 지금도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추석 며칠 전 고장난 믹서를 버리고 점찍어뒀던 제품 가격을 보니 20만원은 족히 넘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이자 3개월 카드 할부로 사려는데 한도 초과였다. 지난 여름 휴가지 여수에서 식탐을 못 이기고 과도하게 긁어댔던 대가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엄청난 과소비를 했던 건 아니다. 수년 전 낭패를 경험한 뒤 카드한도를 분수에 맞게 줄였던 게 이런 돌발상황의 원인이 됐다. 게다가 유독 지난달에 집안 경조사며 급한 불 꺼야 할 일이 몰렸었다. “그러니까 건강 챙겨. 우리가 몸으.. 2015. 10. 4. 싱어송라이터 이승열 5번째 앨범 싱어송라이터 이승열(45). 국내 가요계 지형에서 그의 좌표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가 구축하는 세계는 뚜렷하다. 음악을 생산하고 구현하는 그의 이름은 예술적 순수성을 의미하는 브랜드가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음악이 양산될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 않다. 이승열이 2년만에 다섯번째 솔로 앨범 를 냈다. 각각 3~4분 정도인 9개의 수록곡엔 변함없는 그의 음악적 갈증과 탐구심이 스며있다. 숨은 감각까지 꿰뚫는 듯한 위력, 한없이 보듬고 싶은 먹먹함이 공존하는 그의 목소리는 세상의 흐름에 아랑곳 않는 그의 세계를 노래한다. 베트남 전통 음악과 록을 결합시켰던 전작 에서 라이브공연장의 현장감과 공간감을 극대화시키는데 주력했다면 이번 앨범에서 그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했다. 10.. 2015. 7. 16. 이전 1 2 3 4 ··· 48 다음